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승자는 노무현·김대중이다. 승자 독식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현주소가 기념관 건립이다. 조만간 역사왜곡처벌법과 국립묘지 파묘법도 만들어진단다. 이제 이승만·박정희 전직 대통령의 시신이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파헤쳐질 날이 머지않았다.

전직 대통령 기념관을 두고 말들이 많다. 형평성의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념관이 김해와 서울 종로구 원서동 두 곳에서 정부 지원금으로 건립되면서 불거졌다.

지난달 말,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는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 2014년부터 공사에 들어간 지 6년 만이다. 노 전 대통령의 유품과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었던 ‘추모의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전시관을 건립한 것이다.

이 건립 사업에는 국비 60억 원, 특별교부금 15억 원, 경남도비 18억 원, 김해시비 47억 원, 노무현재단 18억 원 등 총 158억 원이 들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사업비가 불어나 노무현재단 추산 예산은 총 215억 원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수백억 원을 들여 거의 비슷한 성격의 ‘노무현 시민센터’ 건립을 진행하면서 언론으로부터 중복 사업 논란이 제기되었다. 이렇게 되자 김해시는 전시관 이름을 재빨리 ‘김해 깨어 있는 시민문화체험전시관’으로 바꾸었다. 다른 혐의도 아니고, 부정부패·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투신하여 삶을 마감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에 ‘깨어 있는 시민문화체험전시관’이란 명칭을 부여하는 것을 양식 있는 시민들은 어떤 논리로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해 9월 4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 건립부지에서 열린 기공식에서 참석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한명숙 전 총리,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정세균 의원, 김영종 종로구청장,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이기명 노무현재단 고문,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9월 4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 건립부지에서 열린 기공식에서 참석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한명숙 전 총리,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정세균 의원, 김영종 종로구청장,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이기명 노무현재단 고문,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사진 연합뉴스).

 

중복 논란 피하려 문패 바꿔 단 김해시

게다가 다른 전직 대통령 기념관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해시는 조례까지 제정하여 이 전시관 운영을 다른 곳에 위탁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놨다. 전시관 건립 초기부터 직간접으로 관여해 온 노무현 재단에 전시관을 위탁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상 ‘노무현 기념관’이지만 예산 중복 지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름만 바꿔 달았다는 비판을 제기한 곳은 야당인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실이다. 요약하자면 노무현재단은 정부 지원을 받아 서울과 김해 두 곳에서 기념관을 짓고 있었는데, 언론이 중복 논란을 제기하며 이의를 제기하자 김해시가 재빨리 문패를 바꿔달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재단은 현재 서울 종로구(원서동108-4), 창덕궁 옆부분에 2021년 5월 개관을 목표로 ‘노무현 시민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창덕궁의 조망권을 3층 카페테리아에서 즐기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112억 원 규모의 특별건축모금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시민센터 건립후원’ 사이트에는 유시민 이사장 명의로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서울 종로에 건립될 노무현 시민센터는 시민의 힘을 키우고, 미래 세대에 노무현 정신을 전할 민주시민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면서 “적지 않은 기금이 필요한 프로젝트입니다. 보다 많은 시민 참여로 완성해야 의미가 더 커지는 일이기도 합니다”라며 기금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곽상도 의원실의 발표에 의하면 노무현재단이 지난해 4월 ‘노무현 시민센터 건축 비용으로 사용하겠다’며 행정안전부에 112억원 기부금 모집계획서를 제출했다. 이 중 건축비로 100억원, 나머지 12억원은 홍보비 등에 쓸 계획이라고 신고했다.

노무현 시민센터의 총 건축비는 220억 원이다. 국고보조금 45억 원을 뺀 175억 원 중 일부를 모금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노무현재단의 자산 총액은 현금·예금 180여억 원과 토지·건물 등을 포함하여 452억 원이나 된다. 그간 적립한 재단 자금만으로도 충분히 건축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112억 원의 기부금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재단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7월 열린 임시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특별모금 없이도 그간 적립된 후원금으로 노무현센터 건축이 가능하다’는 보고가 올라온 바 있다.

국민일보 보도에 의하면 노무현재단의 특별모금은 이해찬 전 이사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2016년 재단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이 전 이사장은 “공사가 들어갈 때쯤 특별모금을 준비해야 한다”며 “기금을 얼마 정도 남겨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지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기념관 복 터진 김대중 전 대통령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 기념관 실태는 어떤가? 기념관에 관한 한 김대중 대통령은 복 터진 사람이다. 우선 서울 마포구 신촌로4길 5-26(동교동 178-9)에는 김대중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2003년 1월 16일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아태평화재단 건물과 소장 도서, 개인 사료 및 대통령 관련 자료를 기증받아 2003년 11월 3일 개관했다.

2005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상금의 일부인 3억 원을 도서관 발전 기금으로 기부한 것을 계기로 ‘김대중 평화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이와 함께 ‘김대중 도서관 후원회’도 결성되었다.

이 도서관 외에 서울 연세대 캠퍼스(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78-9)에도 김대중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다. 연세대 소속 기념도서관인 김대중 도서관은 2003년 아태평화재단(전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연세대에 기증하여 김대중 도서관이란 이름으로 공식 개관했다.

이밖에도 2005년 광주에 문을 연 지상 4층, 지하 1층에 연면적 1만 1,966평 규모의 김대중 컨벤션 센터가 있다. 이 센터는 2013년 6월 3,000석 규모의 다목적홀과 19개의 중소회의실을 증축한 제2센터를 개관하여 총 전시면적 1만 2,027㎡, 회의실 면적 4,313㎡를 갖추게 되었다.

목포에는 2013년 개관한 목포의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이 서 있고, 고양시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의 전원주택 단지에 있던 김대중 대통령 사저를 리모델링하여 내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문화재로 재조성하고 있다. 고양시는 지난 3월 예산 25억 원을 들여 이를 매입했다. 이곳은 김 전 대통령이 1996년부터 청와대로 거처를 옮기기 직전인 1998년 2월까지 집을 짓고 2년 정도 거주했던 곳이다.

전직 대통령으로 재직했으면서도 국가로부터, 혹은 국민으로부터 뜨거운 성원을 받아 곳곳에 기념관·도서관·컨벤션센터가 지어지는 복 터진 ‘전직’들의 이면에는 문전박대, 외면, 역사 지우기를 당하는 지지리도 복 없는 대통령들도 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어디에도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기리는 기념관이나 그의 이름이 붙은 도서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 동숭동 근처에 ‘이화장’이란 이름만 존재할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은 기념·도서관이란 명칭으로 서울 상암동에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이 기념·도서관은 기형 변태의 전형이었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약속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그의 재임 중 건립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서울 중심가가 아닌,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 북단의 상암동(마포 월드컵로 386)에 입지가 정해졌다.

‘쓰레기 매립장의 추억’ 어린 난지도 앞에 박정희 기념관

재단 측이 그곳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행정부의 강권에 의해 “상암동 서울시 부지의 땅에 지으려면 짓고, 아니면 말고” 식의 최후통첩이었다. 지금이야 난지도가 안정이 되어 환경이니 생태니 하는 말이 나돌지만, 그 시절은 ‘쓰레기 매립장’ 난지도의 추억이 생생할 때다. 이 정도 가혹한 입지에 설마 기념관 짓겠나 하여 내놓은 카드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측은 수락했다.

그리하여 이곳에 건물이 지어졌는데 박정희 기념·도서관은 건물은 재단 소유지만, 토지는 서울시 소유다. 언제 무슨 일로 서울시와 재단 간에 토지·건물 소유권 논란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난 2017년 재단 측은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을 맞아 기념관 내부에 세우려 했던 박정희 동상은 서울시의 반대로 추진조차 해보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재단은 당초 기념·도서관 경내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기로 하고, 이날 기증 증서만 받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시의회가 “적폐 청산에 나선 현시점에 역사적 논란이 큰 인물에 대한 동상이 건립돼서는 안 된다”며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 측도 “서울시 소유의 토지 위애 동상을 세우려면 반드시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나섰다.

동상을 세우려면 미술 전문가와 역사학자 등으로 이뤄진 시 공공미술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례를 근거로 서울시가 브레이크를 걸고 나서자 박정희기념관 측은 동상 건립 의사를 접었다. 논란이 되는 문제는 피해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퇴임 후 실형을 선고받아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딴 기념관, 혹은 도서관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실정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승자는 노무현·김대중이다. 승자 독식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현주소가 기념관 건립이다. 조만간 역사왜곡처벌법과 국립묘지 파묘법도 만들어진단다. 이제 이승만·박정희 전직 대통령의 시신이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파헤쳐질 날이 머지않았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