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세력의 일당 독재와 감시 부재가 박원순 사태의 원인
노무현 들먹이지만 ‘탐욕’ ‘정치 쇼’ ‘지역주의’ 등 정반대로 가버린 문재인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박원순의 자살은 검찰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노무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죽음에 온정적인 대중 정서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덮어버리고 나아가 상황을 반전시켜 영웅도 될 수 있다는 노무현 모델의 반복이다.

노무현 하면 나는 그가 벌인 ‘언론과의 전쟁’이 먼저 생각난다. 누구나 자기가 놓인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라 그 시기 언론사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은 특히 비판 언론을 적(敵)으로 간주하고 언론에 대한 소송과 고소, 중재 신청을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공무원들에게 댓글을 달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막판에는 정부 부처 기자실에 ‘대못 질’을 했다. 그 해악이 얼마나 심했는지 임기가 끝난 뒤 ‘노무현 정부 언론탄압 백서’가 언론단체 주도로 간행될 정도였다. 그래서 그가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1위’라는 조사 결과(2014년 한국갤럽)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당시 노무현은 언론에 억울함과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을 것이고 그 시기에 언론도 잘못한 게 없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민주국가의 최고 권력자는 언론의 자유에 대해 다른 자세를 갖고 있어야 했다. 지금처럼 ‘한국 언론은 정권의 치어리더(응원단장)’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만드는 게 그가 꿈꾸던 언론 세상이었나. 민주화 세력의 정권이라는 노무현 문재인 시대의 최대 모순이다. 

하지만 노무현의 공과를 언론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노무현에게도 분명 장점과 업적이 있었으나 여기서는 그의 권력 욕구에 대해 말하고 싶다. 노무현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청계천 사업과 LG 파주공장 건립을 선뜻 지원했다고 한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 주자들이자 잠재적 정적인 그들을 경계할 수도 있었으나 적극 밀어주는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마법에 걸린 나라’ 2007년)

또한 노무현의 2005년 5월 ‘대연정’ 제안은 설익은 정치적 승부수임에 틀림없었으나 이 때 그가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한 것 등을 보면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국가적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권력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초탈한 일면을 느끼게 한다. 한미 FTA, 이라크 파병, 제주해군기지 추진 등 좌파 진영의 반대를 거스른 그의 업적들이 이런 자세에서 나왔을 것이다.

노무현의 맥을 이었다는 의미에서 ‘참여정부 시즌2’로 불리는 문재인 정권과 비교해 보자. 현 정권은 “아직도 배고프다”며 끝 모르는 권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를 장악해 특히 여권 인사와 관련된 사건에서 ‘편파 판정’을 일상화하더니 각종 선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선관위와, 헌법에 독립성이 보장된 감사원까지 낙하산을 내려 보내는 철두철미함을 보였다. 공정과 정의를 수호하는 헌법기관의 철저한 무력화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의 선거 공작과 저열한 검찰 장악은 이 정권의 권력 욕구가 어디까지 부패하고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야당에 대한 허위 공격은 이벤트 효과를 위해 ‘비대위원장에 취임하는 날’(김병준)이나 ‘공천이 확정된 날’(김기현)에 딱 맞춰 이뤄졌다. 노무현과 정반대여도 이렇게 대조적일 수가 없다.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에서 여당 출신들이 전체의 80,90%를 독식할 때부터 이들의 타락은 예고된 것이었으나 언론의 관심 범위에서 비껴나 있는 탓에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행정, 사법, 지방권력에 교육감 권력까지 모두 손에 쥔 그들에게 지난 4월 총선은 완결 편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총선에 사활을 걸었다. 총선을 앞두고 별도의 아동수당 40만 원씩을, 총 400만 명의 유권자에게 선거 이틀 전에 뿌렸다. 65세 이상 52만 명에게도 27만원 씩 선(先) 지급으로 총선 직전 나눠줬다. 대통령은 재난지원금에 대해 국회 통과를 기다릴 것 없이 신청부터 받으라고 선거 전날 지시했다. 현금 살포의 위력은 컸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의 전화위복 행운까지 더해져 얻은 국회의원 176석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그들에게 장악됐다. 놀라운 것은 그 이후에도 그치지 않는 탐욕이다. 국회 상임위원장 독점을 둘러싼 여당의 추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현재 권력의 정점에 있는 문재인은 어느새 반드시 그의 지시를 이행해야 할 ‘최고 존엄’이 됐다.

사람들은 노무현과 문재인 정권이 비슷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으나 실은 많이 다르다. 앞서 언급한 ‘권력 욕구’ 이외에도 문재인 정부의 특기인 ‘정치 쇼’만 해도 그렇다. 노무현은 민생 탐방을 다니라는 참모들의 건의에 “실질적인 민생 대책이 중요하지 그런 대책 없이 민생 탐방이나 다니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고 단호히 거부했다. 현 정부는 탁현민 같은 소위 전문가를 기용해 대통령을 질병관리본부에 ‘갈비찜 밥차’를 딸려 보내고, 6.25 70주년 행사를 뜬금없이 한 밤중에 개최하는 등 오늘도 쇼를 계속 중이다.

노무현의 정치 슬로건이었던 지역주의 타파 문제에 대해서도 정반대다. 문재인 정권의 호남 지역에 대한 끈질긴 구애는 좌파 유권자와 호남 만 확실히 잡으면 20년, 50년 장기집권도 가능하다는 ‘필승 조’ 만들기를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지역주의다. 권력보다는 국가이익, 정치 쇼 거부, 지역주의 청산 등 큰 틀의 노무현 유산은 간 데 없는데 어째서 문재인이 ‘노무현 시즌2’인가. 

민주화 운동을 앞세운 그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민주화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비판의 회초리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성역’ 속에 살아오면서 이제는 권력에 빠져 취해버린 그들이다. 절대 권력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권력을 추구한다. 박원순 사태도 이런 왜곡된 구조에서 나왔을 것이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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