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페미니스트 자처한 현직 서울시장...성추행으로 형사고소되자 극단적 선택
80년대 여성인권 변호사 활동하며 오늘날 주류된 시민단체들 설립...'시민운동 1세대'
2011년 서울시장 당선으로 대한민국 시민단체 전성시대 열어
2017년 文정부 출범한 뒤 2018년 서울시장 3선에 성공...최장수 서울시장이기도
참여연대, 정의연 등 권력의 중심으로...성추문과 각종 비리 의혹 불거져
韓 시민사회의 상징적 인물인 朴도 '미투' 못 피해가

10일 숨진 채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래 내리 3선에 성공한 첫 서울시장으로 국내 ‘시민운동 1세대’로 손꼽혀왔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권력의 정점에 오른 주요 시민단체 거의 모두가 수십년전부터 여성인권 변호사로 왕성히 활동해온 그의 손을 거쳤다.

1980년대부터 시민운동가로 전면에 나선 박원순

박 시장은 1956년 경상남도 창녕의 농가에서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1975년 5월 서울대 사회계열 1학년 재학 당시 학생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적당했다. 1979년 단국대 사학과에 재입학한 그는 1980년 제22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1982년부터 대구지검 검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1년 만에 검사복을 벗고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박 시장은 인권변호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1984년 故조영래 변호사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시민운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는 부천경찰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1986),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1986), 월간 ‘말’지 보도지침 사건(1986),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 등을 도맡아 여성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박 시장은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을 이끈 박헌영의 사생아인 원경스님과 함께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여기에는 초대 이사장을 지낸 박 시장 외로도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역사문제연구소는 좌경화된 수정주의 역사관을 전파시킨 곳으로 오늘날 역사교과서 문제를 논의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박 시장은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멤버로 활동했으며, 1994년 참여연대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참여연대는 재벌감시와 사법개혁 등을 목표로 내걸고 소액주주 운동, 국회의원 낙선운동,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1인 시위 등을 벌여왔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박 시장은 시민운동 초창기부터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전신으로 1992년 결성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여러 여성운동 단체들과 긴밀히 연대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 이효재 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 신필균 녹색교통운동 이사장, 이김현숙 장공기념사업회 이사, 남윤인순 혁신과통합 공동대표, 조현옥 살림정치 공동대표 등 여성계 주요 인사들이 참여연대 임원진과 그의 선거대책위원회 등에 포진할 정도였다.

국내 여성단체들은 박 시장의 이같은 활동들을 인정해 그에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주기도 했다.

박 시장은 1993년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변호를 맡게 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법률 소송으로 서울대 우모 조교가 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며 고발한 사건이다. 그는 이종걸, 최은순 변호사와 함께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해 6년간의 법적 공방을 벌인 끝에 교수가 우모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승소판결을 이끌어냈다.

또한 박 시장은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국제법정의 공동검사로 나서는 등 위안부 단체 활동을 적극 지원해왔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으로 대한민국 시민단체 전성시대 열렸다

박 시장은 2002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1% 나눔 운동’ 등 국내의 기부 및 나눔문화 확산에 앞장섰다.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대기업 등으로부터 거액을 기부 받아 아름다운재단의 자체 활동은 물론 연계된 여러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그는 2006년 설립한 희망제작소를 통해 정책 대안을 제시하며 전국 시민단체들이 해당 지자체와 벌일 사업모델을 선구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80년대 운동권 인사들이 1987년 민주화 이후 주축이 돼 만든 시민단체들은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으로 전성기를 맞게 된다. 좌파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환경, 노동, 청년, 젠더 등의 영역에서 활동하다 막대한 예산을 운용하는 서울시정에 상근, 또는 비상근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의 예산 지원으로 숱한 사업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제 식구 챙기기가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가면서까지 일자리를 나눠 갖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의연 사태는 서울시가 해마다 정의연의 사업에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지원까지 해온 것으로 드러나면서 각종 의혹으로 번지고 있는 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2년 7월 1일 오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 여성주간 개막행사에서 윤미향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대표에게 서울시 여성상 대상을 수여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2년 7월 1일 오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 여성주간 개막행사에서 윤미향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대표에게 서울시 여성상 대상을 수여하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달 10일 국민의당이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제3섹터라 할 수 있는 시민단체가 어용이 됐다”며 “시민단체들이 착란 상태에 빠졌다. 아예 저쪽에 붙어서 그들보다 더 해먹고 있다. (여권과 시민단체의) 거대한 블록이 형성돼 견제할 세력이 없어졌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박 시장이 최장수 서울시장으로 3,180여일을 보내며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도 거론되는 동안 참여연대 등 여러 시민단체 출신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수현 전 정책실장, 김상조 현 정책실장, 김연명 사회수석비서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 등 모두가 박 시장이 만든 참여연대 출신이다.

이외로 각 부처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어공’과 국회 입성에 성공한 이들로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박 시장의 손을 거쳤거나 초창기부터 박 시장과 긴밀히 연대해온 시민단체 출신들의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주류 시민단체 출신들의 권력화 가운데 박원순의 극단적 선택은...   

박 시장은 2011년, 2014년, 2018년 3번 연속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첫 3선 서울시장이자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인 그는 과거 여성인권 변호사로 널리 이름을 알리며 시민운동 1세대로 상징적 역할을 다 해왔다. 이런 그가 전직 비서를 비롯한 여러 여성들을 성추행했다는 '미투 의혹'으로 지난 8일 형사고소되고 9일 오전 11시경 성북동 관사 인근 CCTV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인 뒤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자 한국 사회 전체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권력이 된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이번 정권 들어 잊을만하면 성추문과 각종 비리 등으로 들춰지던 차에 현직 서울시장인 박 시장의 죽음은 향후 정치권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영역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김진기 기자 mybeatl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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