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구상'대로 남북 합의등 법제화 '쐐기' 시도할수도
종전선언·평화체제, 과거 北 핵개발 기만으로 무산된 사항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북한 정권이 국제적 고립과 수백만 주민 희생을 감수하고서도 고집해 온 '핵' 폐기를 위한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문재인 정권이 '한반도 종전(終戰) 선언'과 이른바 '평화 체제 구축'을 당사국 간 논의 테이블에 올릴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스스로 "북한 정권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고 공언한 데 이어 사실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통일'을 외면하는 한반도 평화론을 거듭 설파해 온 바 있다. 4월말·5월 중으로 각각 점쳐지는 남북·미북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확인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건너뛴 채 '북한 김정은 체제 보장'을 위한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14일 조선일보 등에 따르면 4월말 남북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기로 한 남북 정상회담에서 6·25전쟁 종전 선언과 평화 체제 구축 문제가 본격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비핵화를 실천한다면 6·25 휴전(休戰) 당사국(미국·중국·한국·북한)들이 함께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맺자는 식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 논의가 동시 진행 중인 만큼 비핵화 논의를 위한 정상회담과 동시에, 한반도 종전 선언을 위한 다자회담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문제를 북한 정권과 먼저 논의한 뒤 미국과 중국도 참여토록 '중재'하겠다는 구상으로 알려졌다. 

과거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경제협력 같은 낮은 단계에서 시작해 종전 선언을 포함한 평화 체제 문제는 나중에 결과물로 다루는 방식이었으나, 청와대는 이번에 곧바로 비핵화와 정전협정의 종전협정 전환 문제를 남북 정상회담 의제로 올리려는 분위기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독일에서 발표했던 '베를린 구상'을 현실화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 구상에는 '남북 합의의 법제화'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처럼 앞으로 전개될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 내용도 담겨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남북 합의의 법제화"나 "평화의 제도화" 등을 언급한 것의 연장선으로, 청와대에서는 남북 정상회담 합의가 도출될 경우 조약처럼 국회 비준을 추진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북한 체제 안위 보장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쐐기를 박겠다는 구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언이나 법조항 만으로 실질적 평화가 보장된다고 볼 수도 없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문제는 북핵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2005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10·4 선언'에도 수 차례 포함됐지만, 북한의 비핵화 약속 파기로 번번이 무산된 내용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2005년 '9·19 공동성명'에는 미·중·일·러와 남북이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평화 체제에 관한 협상을 시작한다고 돼 있지만 이듬해인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진척을 보지 못했다. 

정권 말기인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10·4 정상 선언'에도 "한반도 종전 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정권교체 등을 이유로 무산됐고, 2009년 5월 북한은 보란듯이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을 검토하는 것은 미북 대화에서 비핵화 절차가 진행될 것을 염두에 둔 것 같다"며 "그러나 비핵화 없는 종전 선언은 알맹이 없는 허무한 구호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편 기적적으로 북한 비핵화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북한식 사회주의'와의 공존 가능여부는 또 다른 난제로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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