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평화의 올리브 가지를 내민 진짜 이유는?
-2017년 6차 핵실험 직후 안보리 결의 연이어 통과...北 ‘제2의 심각한 위기’ 도래
-1990년대 北의 ‘위장 평화공세’에 속았던 한국
-對北 최대압박 지속하며 북한의 변화 이끌어야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3월 9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백악관을 방문하여 김정은의 북핵 포기를 전제로 미북(美北) 정상회담을 하자는 메시지를 전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5월까지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즉각 수락했다. 극적인 반전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인한 미북간 대립은 극에 달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불렀고, 김정은은 트럼프를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미국은 한반도주변에 전략자산 배치를 강화하면서 최악의 경우 선제공격 가능성과 김정은 정권의 교체설까지 흘렸다. 당장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6차에 걸친 핵실험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으로 워싱턴을 사정권에 넣게 되는 김정은도 이제는 협상을 통해 최대의 보상을 받아낼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김정은이 평화의 올리브 가지를 내민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정권이 맞이한 ‘제2의 심각한 위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10번에 걸친 제재결의를 받았으나 잘 버텨냈다. 그러나 제6차 핵실험 직후인 작년 9월 11일 안보리 결의 제2375호 제재의 결과는 타격이 컸다. 석탄, 수산물, 섬유제품과 같은 주요품목의 수출이 금지되었다. 그동안 북한의 대외무역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중국이 트럼프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압박 때문에 유엔안보리 제재에 성실하게 동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에 나와 있던 북한식당이나 기업체가 문을 닫고 철수하였다.

연간 30억 달러 수준이던 북한의 수출액이 작년 16.5억 달러로 급감하였다. 북한이 11월 29일 화성-15형 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12월 23일 안보리 결의 제2397호를 채택하였다. 북한에 대한 유류공급을 대폭 제한하고, 해외근로자를 2년 내 전원 귀환시키도록 결의하였다. 작년 12월과 금년 1월의 북한의 월별수출액은 1년 전에 비하여 80퍼센트 이상 줄어들었다.

금년 연간 수출액이 5억 달러 이하로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단둥의 북중(北中)무역이 얼어붙었고, 돈주들 간에는 ‘태풍 전야의 고요’라고 숨을 죽이고 있다. 장마당의 일반생필품 거래도 이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4월부터는 최악의 보릿고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권이 바로 무너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패가 만연한 사회구조는 더욱 취약해진다.

트럼프 정부의 주도로 강화된 국제제재가 북한정권을 제2의 위기로 몰아넣은 것이다. 코피작전과 같은 정밀타격이 이루어질 경우 김정은의 안전이 위험해 진다는 악몽도 작용하였다. 김정은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라는 약한 고리를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남북 양측 간의 비밀접촉을 통하여 북한의 위기탈출을 위한 행보가 이어졌다. 금년 1월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받아서 남북간 준비회담을 열어,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2월 9일 평창올림픽에 참가하여 평화공세를 펼쳤다. 김정은은 임신한 여동생 김여정과 천안함 폭침의 책임자인 김영철 등을 파견하여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였다. 이렇게 열차 달리듯 이어진 결과가 트럼프의 미북 정상회담 수락이었다.

김정은 정권이 다급했기에 그동안의 입장을 바꿔 북핵포기를 위한 미북정상회담을 제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정은이 언급하는 ‘선대의 유언’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의미한다. 북한의 핵을 포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까지 포함하는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고 북한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핵을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미동맹해체와 미군철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급박해서 이전처럼 입장료를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협상과정에서 얼마든지 의제를 분리하는 살라미 전술로 질질 끌 수도 있다. 그리되면 막바지 단계에 이른 핵미사일 개발을 완성시킬 시간을 버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25년간 전임자들의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최대한 압박(maximum pressure)를 계속해왔던 것이다. 정확한 처방이다. 전임자들은 폭탄이 자신의 손안에서 터지기 전에 후임자에게 넘길 수 있었지만, 트럼프는 그의 손안에서 폭탄이 터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가 북핵 폐기의 합의가 나오기 전에는 ‘최대한 압박’을 지속하겠다는 조건을 강조한 것은 당연하다. 북한의 거듭되는 속임수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했던 틸러슨 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후임에 대북 강경파인 폼페이오 중앙정보국 CIA국장을 지명했다. 

그러면 북한정권이 제1차 위기를 어떻게 넘겼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제1차 위기는 1989년 6월부터 시작된 동유럽 공산권의 도미노 붕괴와 소련의 해체로 일어났다. 종주국 소련의 원조는 단절되었고, 중국도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심각한 압박 속에서 한국과의 수교가 우선하였다. 북한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그 결과 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의 길을 택하지 않고서도 김일성-김정은 정권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북한정권의 위장 평화공세에 한국이 넘어간 것이다. 1991년 12월 13일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와 12월 말 합의한 남북 비핵화선언을 김일성-김정일은 준수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김일성은 기본합의서 서명 전날 연형묵 총리에게 무슨 양보를 하더라도 타결하라고 훈령을 내렸고, 북한 측의 큰 양보로 합의문을 타결하였다.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의 증언에 의하면, 서명을 마친 북한대표단을 헬리콥터로 평양으로 귀환시켜 목란관에서 성대한 환영만찬을 베풀었다. 김일성은 감격하여 “동무들 덕분에 조국이 살았다”고 높이 치하하였다.

한국 대표단은 그동안 요구하던 주장을 합의문에 거의 반영시키게 되어 대만족하였고, 곧 남북관계가 발전하여 평화통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였다. 김일성-김정은이 이를 휴지조각으로 생각할 것이라고는, 그리고 비핵화 약속을 버리고 핵을 개발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북한 정보에 어두웠던 한국의 대표단이 허를 찔린 것이다. 김일성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는 손오공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 대표단이 북한의 심각한 위기의 실체와 냉전해체의 국제정세를 더 정확하게 파악했더라면, 북한을 더 압박해서 개혁개방으로 나가도록 마구 흔들었어야 했었다.

결과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하여 대북(對北)공세를 멈춤으로써 북한의 독재정권이 무사히 제1차 위기를 넘기게 하였다. 오히려 외부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폭압정치를 강화하여 정권을 유지하였다. 20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굶어죽고, 수십만 명이 강제수용소에서 고통 받게 하였다. 그 후에도 클린턴을 비롯한 미국 대통령들은 북한정권의 벼랑끝 전술에 말려 북한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우를 반복하였다.

이제 트럼프라는 임자가 나섰으니 북한정권이 속임수를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도 호락호락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북한의 제2의 위기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여 최대압박을 풀지 말고 진정성 있는 협상을 이끌어야 한다.

북한은 군사력 이외에 체제 자체는 오래전에 실패하였다. 이 기회에 북한 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를 이루어야 한다. 북한정권이 끝까지 버티면서 속임수를 쓴다면 강제적 수단도 필요하다. 섣부른 타협으로 북한이 다시 제2의 위기를 넘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 북한정권에 미리 탈출구를 열어주지 말고 끈질기게 끌고 당기면 북한사회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ㆍ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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