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학생의 주장만을 근거로 류석춘 교수 발언을 '성희롱 발언'으로 간주
교육당국, 류 교수처럼 기존의 고루한 상식에 도전하거나 진리 발굴하려는 사람에게 가차없이 가혹한 채찍 휘둘러
대학사회는 약육강식과 조직논리가 득세하고 후진국형 고등교육이 지배...'바른 말'하면 징계와 승진 탈락도
류 교수에 대한 징계는 대학사회를 흔들고 교수들을 길들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어..."침묵하거나 수수방관해선 안 돼"

한정희 대구대학교 교수
한정희 대구대학교 교수

한국사회에서 대학교수는 선망받는 직업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2018 한국의 직업정보>에 따르면 대학교수는 2위 안과의사를 누르고 직업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으로 꼽힌다. 소득은 의사에 못 미치지만 긴 방학을 자기계발에 쓸 수 있고, 출퇴근이 자유로우며, 사회적 평판과 영향력이 인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교수들이 구성하는 대학사회를 <상아탑>이라고 부르며, 각박한 세상의 현실에서 약간 비켜 있는 지식과 양심의 보루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서양에서 시작된 근대 대학의 이념이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인다. 한국도 이제 선진국이 아니던가? 그러나 <학문의 자유>와 <자율적 전문성>, 그리고 <양심의 보루>라는 상아탑의 명분은 대한민국 대학사회의 현실과는 너무나 괴리가 큰 이상일 뿐이다.

연세대학교 류석춘 교수가 강의시간에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 성희롱 사건으로 비화되어 지난 5월 5일 대학당국으로부터 정직 1개월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류 교수는 강의 중에 “궁금하면 한번 해 볼래요?”라는 질문을 여학생에게 던졌는데 이것이 ‘성매매 권유’에 해당하므로 성적 수치심을 일으켰다고 연세대 측은 주장하였다. 류 교수는 “(성매매가 아니라) 해당 연구를 한번 해 볼 용의가 있느냐?”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하였다.

류 교수는 “궁금하면 매춘부를 한번 해 볼래요?” 라고 질문하지 않았다. 따라서 류 교수의 발언을 징계 근거로 삼으려면 엄밀한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도 연세대학교 측은 그러한 입증 대신 해당 학생이 성평등센터로 연락했고 성인지사건으로 처리하는 데 동의했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강행하였다. 류 교수는 해당 강의의 녹취록을 근거로 들어 자신의 발언이 학생들에 의해 ‘성매매 권유로 생각’되거나 ‘성희롱 발언’으로 간주된 적이 없고, 자신의 발언에 대한 충격으로 이후의 수업분위기가 ‘웅성웅성’ 해지지도 없다고 반박하였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발언이 징계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지난 2018년 이른바 ‘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대학에서도 몇몇 교수가 징계되거나 기소되었지만 류 교수의 경우처럼 성희롱임이 명확하지 않은 단 한마디의 말, 그것도 ‘강의 내용’이 문제된 적은 없었다. ‘미투’ 사례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동안 지속된 ‘권력관계 하의 강제 성추행’이 문제였으며, 그나마 많은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대학당국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 사실 필자가 학생이던 시절에도 수많은 학내 성추문이 있었으며 교수로 재직중인 요즘도 대학가의 성추문이 들려오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만 하더라도 2018년 ‘미투’ 당시 어느 60대 교수가 수년 전 여학생 몸을 더듬은 사실이 게시판에 폭로되어 조용히 보직을 사퇴하였고, 10여 년 전에는 모 교수가 학과 여학생과 사귀다가 그 여학생의 남자친구와 연구실에서 대판 싸운 일이 알려져 한 한기 강의를 접은 적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도 징계를 받지는 않았고, 모두 쉬쉬하며 감싸주었다. 혹시 나중에 자신이 그런 일을 겪을 때에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서로 간의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셈이다. 이것이 언론에 보도된 ‘미투 솜방망이’의 실체이다.

그런데 비루한 특권의식에 물든 교수사회와 이를 이용하여 대학교수들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는 교육당국은 류석춘 교수같이 기존의 고루한 상식에 도전하거나 깨어있는 진리를 발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가차없이 가혹한 채찍을 휘두른다. 교육당국과 대학본부는 외부 세력의 정치적 압력이나 사회적 편가르기로부터 학문의 자유와 지성의 냉철함을 보호하는데 주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녀사냥에 목마른 대중의 광기에 부응하여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희생양을 바칠 자세가 되어 있다. 법적인 사실관계보다 여론의 눈치보기에 더 충실한 사법부도 이러한 불의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상아탑과 교육현장의 민낯이다.

대학사회의 내부는 대한민국의 어느 직장 못지않게 약육강식과 조직논리가 득세하고 있으며 이로인해 후진국형 고등교육이 대학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학내 문제로 바른 말을 했다가 그 후부터 강제 수업배정, 학과장 임용 배제, 징벌적 감사와 징계, 승진 탈락이라는 18세기적 교권유린을 당하고 있지만 교육부, 시민단체, 인권 변호사 등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망받는 직업인 교수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내 갑질과 교권 유린 정도는 달게 삼켜야 하는 쓴 약이라는 것이다. 교수회마저도 대학당국의 갑질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여기고 있다. 이런 대학사회에서 어떻게 학문의 자유와 양심의 수호를 논하겠는가?

반면, 부패와 내로남불을 일삼으며 정치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처세에 능한 교수들에게는 대한민국의 대학이야말로 정말 좋은 직장이다. 작년에 있었던 ‘조국 사태’를 보라. 대학교수로서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자녀의 부정입학을 기획한 사실에 대하여 정치적 대중은 물론 같은 대학교수들까지 나서서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 양심에 도전하며 ‘피해자’라고 강변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국가도 기본이 되어있지 않고, 대학마저도 기본이 되어있지 않다.

필자는 한국의 대학에 13년을 재직하며 한국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학이 연구와 교육의 기본도 갖추지 못하면서 국제적 연구성과가 나오기를 바란다면 이야말로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일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토지조사사업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왔다. 한국이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을 제치고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비밀에 한걸음 한걸음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고 정말 좋은 나라를 만들어 후손들에 물려주고 싶다면 일단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 출발은 인정할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단단하게 기본을 갖추는 일이다.

류석춘 교수에 대한 징계는 대학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대학사회의 기본을 흔들고 교수들을 길들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침묵하거나 수수방관할 일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하고, 지적받은 것은 재평가하여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한정희 대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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