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우파 정당은 왜 총선에서 대패했나?
공천도 실패했고, 이슈도 없고, 방법도 타락한 선거
선거조작 의혹은 의혹대로, 선거 패배에 대한 반성은 반성대로 치열하게 대처해야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의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당신의 자유의 값어치는 얼마나 되나?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우파정당인 야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패했다. 도저히 질 수 없는 상황에서 망할 짓들만 골라서했다. 선거전에서 야당은 현 정권의 실정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과 실망과 분노와 낙담과 정부여당의 폭주에 대하여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선거 이슈로 삼지 못했다. 그 이유는 모른다. 선거에 임해서 야당이 꼭 해야 할 일들은 죽어라 하지 않았다. 무슨 큰 약점이 잡힌 사람들로 보였다. 본격적인 선거전에 앞두고, 후보 공천과정에서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비민주적 공천을 했다. 일부러 져주기 위해 하는 공천 같았다. 그럴 리가 있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보였다. 욕심 없이 한다는 공천의 결과를 보면서 무슨 욕심을 저렇게 드러내시나 의심을 했다. 여당을 상대로 하는 후보 공천이 아니라 마치 자당의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공천으로 보였다. 그 때문인지 지난 3년간 현 정부여당의 행태를 날카롭게 비판해온 많은 인사들이 공천에서 배제 당했다. 공천 심사과정에서 수모를 주고 내쫓은 경우도 있었다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야당에 저주를 퍼붓던 사람들을 전략공천하거나 더 유리한 환경 경선을 치르게 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우한코로나사태 때문에 야당이 선거전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갔다하지만, 얼마든지 핵심을 파악하고 다르게 대응할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편으로는 자기당 후보를 제명시키면서 작은 해프닝을 전국적 사건으로 키워 버렸다. 반대로 상대당 후보의 진짜 막말들 앞에서는 도량이 넓은 척, 젊잖은 척, 애써 못 본 척했다. 이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비겁하게도 자신들이 제명했던 후보에게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부 여당의 재난지원금 퍼주기 정책 때문에 패배했다고 했다. 그러나 야당 지도부는 더 많이 퍼준다고 했지 않았는가? 야당이 무슨 힘이 있다고 여당보다 더 준다고 약속을 한단 말인가? 이것을 국민들이 믿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선거전을 치르면서 정부여당이 무엇을 잘못했고, 그들이 여당과 무엇이 다른지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우리가 잘못했으니 한번만 더 밀어달라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밀어야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논란을 만든 자당의 후보를 제거하면서, 우리의 손발을 자르니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했다. 마치 구청장선거도 안 해본 사람들 같았다. 치열함도 비장함도 없었다. 이런 사람들이 전쟁을 이끌었으니 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이끌었다는 표현에 대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라는 축제를 두고 죽고 사는 전쟁과 비교했다고 막말이라고 공격할까 두렵다. 

돈으로 매표하는 타락한 선거

정부여당이 퍼주기 정책을 발표하자 지자체장들도 경쟁적으로 퍼주기를 선언했다. 그러자 야당이 영입한 선대위원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300만 대학생들 전원에게 100만원씩 특별재난장학금을 준다고 했다. 먹힐 리가 없었다. 주려면 우파답게 준다고 했어야 했다. 주더라도 반드시 지원을 받아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주고, 졸업 후 돈을 벌면 낮은 이자를 더해서 상환해야한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좌파, 우파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국민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돕는 방법이 우파다워야 했다. 어려운 국민들도 그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늘 상기하면서 지원을 요청해야한다. 받지 않아도 될 국민들에게 주는 것은 정작 지원받아야할 국민들의 몫을 빼앗는 것이고, 또 이를 갚아야할 다음 세대들의 피와 땀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보다는 여야 모두가 경쟁적으로 현금을 퍼주려고 했다. 돈으로 표를 사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어보였다. 우리 국민들 수준이 그 정도라며 폄하하면서 스스로도 더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도대체 왜 야당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당의 퍼주기 정책에 따라가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퍼주기 틀에 갇혀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금까지 경험한 선거 중 가장 타락한 선거였다고 생각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퍼주기 경쟁에 들어간 것 같다. 얼마나 더 나라를 거덜 내고서야 퍼주기 경쟁이 끝날지 걱정이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면 우파도 좌파정책을 써야한다는 말도 나왔다. 좌파 정당과 다름없이 무턱대고 무상으로 현금 퍼주기를 하겠다는 말인가? 여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인가? 헌법에서 자유를 없애겠다는 말인가? 선거에서 졌으니 상대 당의 정책을 따라가야 한다면 야당은 왜 존재하는가? 과연 정강정책이 있는 당인가? 선거에서 그저 여당이 하는 대로 어설프게 퍼주기 경쟁을 따라하다 망했다는 생각은 못하고,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 거기에 적응해서 좌파정당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퍼주고, 모든 정책에서 더 좌클릭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그냥 여당에 입당하라고 권하고 싶다. 어쨌든 우파정당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고쳐서 성숙한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데, 선거에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더 좌클릭을 못해서 패배한 것처럼 변명만 늘어놓는다. 정말 좌파 정당의 20년 집권, 50년 집권이 현실화될지 모른다. 그러나 좌파정권이 주사파 운동권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나라를 이 정도로 망쳐놓았는데 오래 갈 리가 있는가?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나라 경제가 지금보다 더 망가지고 나면, 정권이 바뀌어도 나빠진 경제가 회복되는데 한 세대는 족히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5년’이 우리에게도 ‘잃어버릴 25년’이 될 수도 있다. 아시아의 그리스, 아시아의 아르헨티나라고 조롱당하는 날이 올까 걱정이다. 우리는 이미 그길로 들어섰다. 개헌을 제외하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의석 180석을 가진 거대 여당이 등장했다. 선거 후 보름도 지나지 않아서 여당에서 나오는 얘기는 다름 아닌 개헌 얘기이다. 대통령 중임제 개헌과 토지공개념 개헌을 들고 나왔다. 정부여당의 정책 실패로 부동산 값이 폭등하자 이를 핑계로 사회주의 개헌을 하자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토지 소유를 폐지한다’는 전략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얘기이다.

선거 부정 의혹과 선거 패배에 대한 반성은 별개 문제

선거부정으로 인하여 선거에서 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사전투표와 당일투표의 결과의 분포가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아무리 봐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전투표의 결과가 예전 총선이나 당일투표 결과와 유사한 분포를 나타냈다면 적어도 야당이 최소한 35석은 더 얻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몇몇 지역에서 재검표와 함께 조사가 이루어진다하니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질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163대 84라는 결과에서 79석이라는 차이에서 부정이 없었다 하더라도 야당이 패배한 선거이다. 따라서 지금의 선거부정이라는 이슈를 핑계로 자칫 처절하게 반성하고, 책임을 묻고, 패배를 정리를 할 기회를 놓치고, 그냥 어물쩍 넘어가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네 번의 선거에서 연속 패배하고도 이에 대해 남 탓만 하고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다음 선거도 이제는 익숙해진 패배를 반복할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이번 선거의 패배에서도 반성을 하지 못한다면, 2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이라는 다음 선거에서도 또 가망이 없다고 본다. 부정선거 논란은, 의혹을 제기하고 선관위에 증거보존과 재검표와 시스템 확인을 요청한 후보 개인과 단체의 판단에 맡기고, 당은 당대로 쇄신의 길을 가야한다. 국민에게 아부하는 방향으로 쇄신이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뜻이 좌파정당을 더 많이 지지했으니 야당도 따라서 좌파정책을 채택한다는 야당의원들이 있다. 이는 야당이 영원히 죽어서 좌파정당의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주는 일이 된다. 포퓰리즘 정당이 마구 퍼주는 복지정책을 실시하여 국민들이 공짜 복지에 한번 길들여지게 되면, 땀 흘려 일하는 것과 노력에는 응분의 댓가가 따른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또 공짜 복지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하고, 풍요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다. 모든 국민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몰락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도대체 왜 지난 3년간의 수많은 경제정책에서의 실정들과 외교적 참사와 국민들의 자존심 훼손과 안보불안 등을 보고도, 또 될 공수처법 통과를 위한 선거법 개정 야합, 울산시장선거 부정개입사건,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사건, 정권 세력들의 부정부패, 조국사태가 말해주는 그들의 수많은 거짓과 위선과 사기 행각, 진영을 갈라 6.25 이후 가장 극심한 진영 간 갈등으로 몰아넣고, 국민통합은 커녕 일부러 갈등을 조장하여 이를 통치에 이용하는 모습을 봄에도 불구하고, 왜 여당을 지지하게 되었을까? 

지난 몇 년 동안 아파트값이 크게 올랐다. 아파트값의 폭등은 이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실패의 결과이다. 그러면 국민들은 도저히 내 생애에는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정부여당을 비난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항상 이론적으로, 예상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아파트값 폭등에 국민들은, 정부보다 부동산 소유자를 대변하는 듯이 보이는 야당을 더 증오하게 된다. 그리고 정부여당에서 쏟아져 나오는 퍼주기 정책에 그들이 노예가 되는 줄도 모르고 감읍하며 열광한다. “수령님 품안에서 부러움이 없어라”고 외치는 북한 주민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어 간다. 국민들을 개돼지로 만드는 기술은 날로 발전해간다.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들 

우리는 지금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움을 누리는 때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난 70여년의 노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3050클럽(인구 5천만 명 이상에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이상 국가)인 7개의 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굶주림이란 단어는 오래 전에 사라졌고, 북한을 제외하고는 세계 여러 나라들을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세계의 어떤 관광지에 가도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외국에 가면 배낭여행을 나와 자유를 만끽하는 수 많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외국의 백화점에 가면 가장 비싼 가전제품은 국산임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외국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삼성휴대폰이다. 이런 유복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말하면, ‘청춘이라 몹시 아픈’ 젊은이들과 전혀 공감을 못하는 꼰대라는 소리 듣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는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빨리 찾아온 행운인가? 경쟁 속에서 열심히 노력해야만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벌써 지쳤을까? 집의 위치와 크기, 먹는 저녁 식사의 질, 자녀 학교의 위광, 자동차의 브랜드와 크기 심지어 건강과 더불어 자신의 몸매와 피부상태까지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게 하는 현대 경쟁사회에 지쳤을까?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들과도 경쟁하고, 로봇과도 경쟁하고, 인공지능(AI)과도 경쟁해야한다. 그래서 온통 주변의 경쟁 상대들 속에서 고독과 무력감을 느끼나? 계속해서 경쟁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불안이 싹텄을까?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쓴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개인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으면 고독과 불안의 공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대에 와서 인간들의 경제적,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고독와 무력감을 강화시켰다’고 했다. 자유로부터 얻게 된 짐을 극복할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없으면,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전체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정치체제에 복종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고독을 피해 종교를 찾거나 독재자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다. 인간은 권력에 복종함으로써 고독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한다. 자유를 헌납하고 평화를 보장받는다. 이것이 바로 노예의 평화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조건 없이 마구 퍼주겠다고 하는 정치가들을 많이 보았다. 특히 재난지원금이라는 핑계가 있으니 기회도 좋았다. 어차피 국민들의 세금이거나, 미래에 후손들이 갚아야 할 돈이고, 정치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 아니니 마음껏 인심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댓가 없이 공짜로 주는 사람이 어디 있나? 무엇을 받게 되면 나는 무엇을 내어 주어야 하나? 아마도 우리의 자유를 상당부분 내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유를 포기하고 받는 돈은 나의 자식들이 평생을 일해서 갚아야할 바로 그 돈이라는 것을 왜 모르시나?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들, 자유를 거부하는 사람들, 자유를 삭제하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당신은 과연 당신의 자유를 얼마를 받고 팔 수 있는 지 생각해 보셨는가? 자유의 값어치를 아시는가?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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