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혁명 과업’을 이루는 데에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던 ‘평양의 최고 엘리트’의 민낯...태영호, 그도 평범한 ‘아버지’였다
틀면 나오는 수돗물에 내 명의로 된 은행 통장과 체크카드...대한민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평범한 일상은 태영호에게 ‘감사’ 그 자체
“북한 동포를 해방하고 무한히 뻗어 나아갈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만세!”...나와 내 후손의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이 때, 태영호의 신간을 선물해 보자

1
태영호 전(前)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그의 베스트셀러 《3층 서기실의 암호》 이후 2년만에 《태영호의 서울생활》로 돌아왔다.(이미지=도서출판 기파랑 제공)

“나는 두 애를 다 평양외국어학원에 넣는 데에 성공했다. 그런데 한 가지를 이루면 더 큰 욕심을 갖게 된다고, 영국 같은 선진국에 데리고 나가 공부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려고 노력했다. 막상 영국에서 애들을 공부시키고 보니 그 다음은 자유를 주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가운 얼굴로 냉정하게 대응할 것만 같은 외모를 가진 태영호(태구민) 전(前)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최고지도자 동지’와 ‘위대한 혁명 과업’을 이루기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자신의 혈육마저도 당(黨)과 국가에 모두 바칠 수 있을 것만 같은 ‘평양의 최고 엘리트’ 태영호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평범한 아버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지난 2018년, 그의 베스트셀러 《3층 서기실의 암호》를 통해 비이성적인데다가 잔혹한 북한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린 전(前)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태영호 씨가 2020년 신작(新作) 《태영호의 서울생활》로 돌아왔다.

남한에서 본 북한 이야기이자 북한 출신의 눈에 비친 남한 이야기—《3층 서기실의 암호》가 베일에 싸여 있는 김 씨 일가의 비사(秘史)를 중심으로 평야의 ‘북한 최고사령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다룬 작품이라면, 이 책은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코너에 연재해 태 전 공사의 글들을 모은 것으로 태 씨가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고 난 이후 3년 6개월 여 간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그가 경험한 여러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평양 사람 태영호’가 ‘서울 사람 태영호’로 바뀌어 나아가는 과정이 이 책 안에 모두 담긴 것이다.

1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사진=연합뉴스)

“12년 동안 유럽에서 외교관으로 생활하면서 점심 초대를 받았을 때 외국인들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계산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2016년 12월 국정원 안가에서 나오면서 제일 먼저 주민등록증과 은행 계좌를 만들었다. 한국에 온 지 5개월 만이었고,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절차였다. 은행 직원이 하라는 대로 여러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사인하니 얼마 후 은행 통장과 체크카드가 나왔다. 그날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고 카드로 결제해 보니 그제야 평생 가져보고 싶었던 은행 카드가 생겼다는 것이 실감났다.”

한 장, 또 한 장, 그가 말해주는 ‘좌충우돌’ 서울 생활 이야기를 읽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매일 겪는 그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난 해방 73주년 만세! 나라를 새로 세운 건국 70주년 대한민국 만세! 북한 동포를 해방하고 무한히 뻗어 나아갈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만세!”—지난 201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일에 ‘북한 엘리트 출신’ 태영호는 그의 새 조국 대한민국의 영광을 기리는 ‘만세’를 외쳤다. 북한에서도 최고 엘리트 계급에 속하는 외교관이었음에도 서울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그 무엇도 평양에서는 누릴 수 없었기에, 태 전 공사는 ‘틀면 나오는’ 수돗물에도 대한민국의 시민권자가 됐음에 ‘감사’를 느꼈으리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다는 것—한때 ‘헬조선(朝鮮)’(한국에서의 삶을 ‘지옥’에 빗대 이르는 말) 말이 유행했음을 상기해 볼 때, 지금 당장의 삶이 고단하다는 이유로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최근 부쩍 늘어난 것 같다.

하지만 태영호의 신작 《태영호의 서울생활》를 읽고 나면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비관하고 폄훼했던 모든 이들이 생각을 달리 하게 될 것이다. 타자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객관화된 ‘나’의 본모습과 마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평양 사람이자 서울 사람’ 태영호의 눈을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과 북한—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맞게 될 미래가 ‘평양’이 돼서는 안 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미래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이 때에, 동료에게, 자녀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태영호의 서울생활》을 선물해 보자. ‘평양 사람이자 서울 사람’ 태영호가 옮긴 가벼운 발걸음들은 우리 마음 속의 깊은 발자국으로 남게 될 것이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