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기사를 읽다가 한국의 사회학자가 쓴 이탈리아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자 급증에 대한 의견을 읽다가 그 사회학자의 매우 단선적인 시각에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아울러 내가 예전 유학 시절 영국 사회로부터 받았던 인상이 기억났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그 사회학자는 이탈리아에서 높은 사망자 수는 공공의료 예산 감소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하며, 마크롱 정부의 보건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유럽의 좌파 학자들은 대개 그런 시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한국 보다 공공의료 비중이 훨씬 높다. 그 사회학자가 살고 있는 프랑스뿐 아니라 내가 4년을 살았던 영국 역시 의료의 주축은 사회주의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영국의 정치인들 (주로 하원의원들)이 TV 토론에 나와서 논쟁하는 주제 중 단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NHS, 바로 그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이다. 영국인들이 BBC 만큼이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 social institution이기도 하지만, 워낙 그 운영에 막대한 국가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영국인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상당 부문 시장화 되어 있는 한국 의료를 일생동안 체험한 나에겐 영국의 NHS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보였다. 그 악명 높은 비효율성의 NHS를 볼 때마다 나에게 떠오른 것은 마찬가지 수준으로 국가 주도로 사회주의화되어 있는, 그리고 비효율성의 극치를 달리는 한국의 공교육 체계였다. 둘 다 정확히 비슷한 정도로 국가 예산의 물먹는 하마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 영역 (민간 의료나 사교육)에 비교해 만족성이 높지 못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만족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당초 시장에 아웃소싱할 수 있는 영역을 끌어안고 ‘국가가 제공해야 한다’는 환상과 고집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 외연을 무한 확장해왔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도 많은 보건 학자들은 NHS의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무상 급식 이래로 공교육의 예산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왔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집단은 누구일까? 한 줌도 안되는 우파 학자들은 그 중심이 못된다. 그보다는 많은 수의 국민들, 바로 자신의 눈으로 경쟁력 떨어지는 서비스를 경험한 의료와 교육 서비스 이용자들이 그 반대 세력의 중심이며, 이들을 등에 업은 우파 정치인들이 바로 그 반대 목소리를 내는 주역들일 것이다. 적어도 영국에선 그랬다. 그래서 토론장에서 만나기만 하면 노동당과 보수당의 정치인들은, 내가 보기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 같은 패턴으로 논쟁했다. 노동당은 NHS에 대한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고 외치고, 보수당은 (그 당위성에는 원론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긴축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정책 집행에 있어서는, 영국의 재정 정책은 모두 알다시피 악명 높은 긴축재정을 2010년대에 지속했었다. 그럼 영국 의료는 노동당 정치인들이 비판하는 데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왔는가?

위의 이탈리아 감염 사망자 수에 대한 유럽의 좌파적 견해를 소개한 사회학자가 보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금을 더 부과하거나 통화량 증가를 야기시키는 방식 대신 긴축 재정을 쓴 영국 보수당의 정책은 결국 경제 상황의 호전을 불러왔고 이는 결국 고질적인 NHS의 재정 악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내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예전 보수당 재정 장관이었던 George Osborne이 2016년 초 의회에서 2010년 보수당 정권이 들어선 이래로 얼마나 경제상황이 좋아졌는지를 조목조목 발표하던 모습이었다. 그 장면의 백미는 바로 NHS의 재정 상황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애당초 영국에서 보수당이 긴축 재정에 나섰던 이유는 이전 노동당 내각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NHS 재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던 것에서 비롯했다. 그 발표를 보면서 한동안 영국에서 노동당이 보수당을 이기긴 힘들거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좌파 정책으로 공공영역이 방만하게 운영되어온 남유럽 국가 중의 하나이다. 오래전 읽었던 움베르트 에코의 책에서 이탈리아 공공영역의 비효율성이 어느정도 인지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부분이 기억난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역경 속에서 이탈리아 공공 의료의 무능성은 더 이상 우스꽝스럽지 않은 참담하고 슬픈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그 사회학자가 주장하듯 공공의료에 국가가 예산 지원을 하지 않은 긴축재정의 결과가 아니다. 반대로, 이탈리아에선 George Osborne이 보여준 공공부문 개혁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탈리아의 정치력의 수준, 이탈리아 국민들의 정치적 시각의 편향성이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남 얘기가 아니다. 그나마 한국은 의료 부문에서 공공의료의 비효율성을 걱정해야할 만큼 비중이 높진 않다. 하지만 한국은 German 혹은 Norman 계열의 (작은 타운 마다 market street가 지명에 남아 있는) 유럽 국가들처럼 역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시장의 역사가 길지도 않고 시장 친화성도 현격히 떨어진다. 자본 (capital)의 의미와 중요성을 아직 철학적으로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회다. 어줍짢게 유럽의 복지정책 따라 한다고 공공영역의 몸집만 키우다가는 그 밑빠진 독에 물을 제대로 붓지 못할 때 어떤 참담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지금의 이탈리아가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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