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관리하는 안전의 허점- 개인의 사생활 보호는 부차적이다?
원천적 인권 보호의 국가 책무는 어디로-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 국민의 권리 무시
개인의 가치는 자유가 보호될 때 가장 가치로움 마스크 가격까지 통제하겠다는 정부는 결국 시장의 역풍 초래할 것-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조윤희 부산 금성교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교 교사

스스로 안전을 관리하라는 안내 문자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쏟아진다. 쉴새 없이 울려대는 문자의 안전 알림은 확진자의 경로를 공개한다. 무섭다.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는 어디로 간 것인지. 안전의 책임이 ‘개인’이어야 한다는 정치인의 발언을 들으니 허망하기까지 하다. 개인이 중요하다면서 개인의 자유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나라가 되어 간다. 

소름 끼치는 개인의 사생활 억압

지금과 같은 국가의 위난 상태에서 국민 개개인이 감염 확진자의 동선을 스스로 조심하고 확인하라는 배려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안전을 개인이 책임지라고 하기 전에, 동선 정도가 아니라 그 개인의 안전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인권 보호’ 차원의 원천적 국가의 책무부터 제대로 해야 했지 않을까 싶다. 마스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는 정도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확진자 한명 한명이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고 판단하여 유치원부터 대학교의 개학까지 미루는 전대미문의 결단을 할 결기였다면, 그 이전에 수차례나 감염자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올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했다는 비판을 정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헌법적 책무를 지니는 것이다. 미리 막을 것을 제때 하지 못하고 왜 재난을 키웠는지, 지금 국민들은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것이다. 

그림1. 헌법이 보장하는 안전권과 환경권.
그림1. 헌법이 보장하는 안전권과 환경권.

본시 예방을 철저히 하게 되면 그로 인해 벌어지게 되었을지도 모를 재난이 얼마나 사전에 잘 방비 되었는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도 지금의 상황은 일을 이렇게 키워 엄청난 재난이 일어나게 해놓고, 미봉책의 수습으로 실책을 만회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실정이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실정 정도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안전권과 환경권을 침해하는 치명적 위법행위라고 생각한다. 이 책임은 누가 져야 옳은 것인지. 혹은 인권의 의미를 가르치며 어떻게 다루어줘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로베스피에르의 우유'로부터의 경고를 잊었는가

마스크 대란은 지금 이 시간에도 현재 진행형이고, 확진자가 엄청나게 급증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자들에게 철퇴를 내리겠다고 한다. 인간의 목숨으로 장난질 치는 악마쯤으로 몰아가며 마스크의 가격을 통제하기만 하면 정부의 역할을 다하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과연 그럴까?

18세기 프랑스 혁명 직후, ‘모든 프랑스 아이의 우유 마실 권리’를 선언한 로베스피에르는 우유가 서민들에게 공급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우유 가격을 내리도록 지시했다. 성장기 아이들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영양이 풍부한 우유를 마음껏 먹도록 배려하겠다는 ‘착한 의도’를 반영한 정책이었다. 물론 시장의 고려는 전혀 없는 그의 머릿속 ‘선한 의도’가 정책으로 튀어나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선의에도 불구하고 로베스피에르가 애초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우유값은 천정부지로 폭등했고 급기야 우유값을 강압적으로 내리도록 지시하기 전보다 더욱 비싸졌다. 결국 우유는 아예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황까지 되어버리게 된 것이다. 

처음 단기적인 효과는 있었다고 한다. 악명높았던 로베스피에르의 명령은 공포심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유 가격 하락의 효과는 얼마 가지 못했다. 우유를 싸게 팔도록 가격을 정해 놓으니 비싼 건초값을 견딜 수 없는 농민들은 우유를 생산할 젖소를 도축해 쇠고기 시장으로 팔아치웠고, 그러니 우유의 생산은 중단된 것이었다. 누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생산을 하겠는가. 팔수록 손해인 생산을 할 생산자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시장의 진실이다.

그 다음 로베스피에르가 한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건초 가격의 하락을 ‘명령’했다. 비싸게 건초를 파는 농민을 억압해서 싼 건초 가격을 내리면 다시 싼 우유가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건초 인건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초를 생산하느니 농민은 생산된 건초를 다 태워버리는 쪽을 택했다. 건초는 태워졌고, 젖소는 도축되었다. 손해를 볼 바에야 차라리 팔지 않겠다는 농민들의 절박한 선택의 결과였다. 비싼 우유를 팔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지경이 되어버리자 우유는 암시장에서만 거래가 되었고, 귀족과 부르주아만이 먹을 수 있는 고가의 음식이 되어버렸다. 결국 우유 가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비싸졌다. 저소득층은커녕 중산층조차 우유를 사 먹을 수 없게 되었고 귀족의 음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약자를 돕겠다는 누군가의 착한 선택이 약자들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고약한 결과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이것이 로베스피에르의 우유가 보여주는 역설이다.마스크 값을 강제로 통제하면 국민들이 착한(?) 가격으로 마스크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어내는 정부의 정책이 참으로 로베스피에르의 우유값 만큼이나 어리석다.마스크는 점점 더 자취를 감출 것이다.

마스크 5부제? 공산주의를 향한 고속도로

지금 마스크를 구입 하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다. 배당제로 일주일 한번 연도별로 요일까지 정해서 구입해야 하는 모습이 꼭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이다.재난 사태라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자위하고 싶은 것이라면 온 국민을 재난에 빠뜨린 원인 제공자가 누군지부터 자백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림 2. 마스크 구입 요령
그림 2. 마스크 구입 요령

개인이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진작 초기에 나왔어야 했고, 그 원칙은 시종일관 지켜져야 했다. 정부가 자신들의 책무를 태만했으면서 이제 서야 시장이 아닌 정부의 강제 속에 꼼짝 못 하게 묶어놓은 채 거기다 개인의 역할을 강조한다면 주체로서의 개인은 결국 희화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장이 만능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개입하여 통제하면 할수록 그 또한 정답은 될 수 없다. 도리어 그러한 정책은 시장이 아닌 개인이 선행을 한다거나 자신이 가진 자원들을 공유하려는 기회마저 차단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마스크의 사재기’처럼 미리 사전에 구입한 재화(마스크나 소독약)가 다시 값이 오르지 않을 수도 있고, 언제까지 고가에 거래될지도 알 수 없기때문에 그러한 사재기는 리스크를 감수한 개인의 선택인 셈이다.

그림3. 인간 내면의 본성 안에 천사를 설명한 핑커의 명저
그림3. 인간 내면의 본성 안에 천사를 설명한 핑커의 명저

개인의 선택의 결과로 시중 가격보다 비싸게 팔아 이득을 챙기는 개인을 굳이 악마로 몰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개인의 내면에 잠재된 선한 천사가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한편으로는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이 마스크와 소독약의 대란 시대에 정부가 선택할 최선이어야 했었다는 것이다. 우습게도 우리나라 시장에서 두 배의 시중 가격을 주고 마스크를 쓸어 담아 사재기한 중국에서는 오히려 마스크가 부족하지 않다는 역설이 이러한 시장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

정부는 인간의 폭력성 대신 그 내면의 선한 천사가 작동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면 안 된다는 것인지. 국가의 역할은 개인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으로서만 작동되어야 할 것이라 믿는다. 시장의 자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정부는 더 큰 마스크 대란을 부를 뿐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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