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도로 포장된 '상법·자본시장법·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은 '국가의 기업 지배'
국민연금이 개입한 대한항공, 주가는 오히려 하락...기업 가치 올리지도 못해
文 정부의 버킷 리스트였던 '증세와 최저임금 인상', 현실에선 의도와 정반대로 작용
정책 실패는 곧 경제적 손실로 이어져...일자리로 환산하면 약 21만개 일자리 증발
경영권 침해하는 규제 강화의 연속...기업은 자사주 매입 반복할 수밖에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정부는 1월 20일 법무부, 금융위원회 등 공동 보도 자료를 통해 '공정경제를 뒷받침할 상법·자본시장법·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의 국무회의 의결'을 공지했다. 시행령 개정으로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통한 경영진에 대한 견제기능이 강화되어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정부 설명대로 하면 이번 시행령 개정은 ‘기업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미사여구의 나열로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경쟁력이 높아질 수는 없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의 ‘사전 정지작업’으로 읽힌다.   

O 국민연금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가 기업가치를 제고시켰는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기업가치를 높이는가? 2019년 초, 국민연금의 한진 칼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복기(復棋)해보자. 국민연금이 ‘한진 칼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행사’ 결정을 내리자 한진그룹은 대응차원에서 주주친화정책을 내놓았다. 한진그룹은 ‘경영계획공시’를 통해 향후 영업이익을 매년 17%씩 늘리고 2023년에는 배당성향을 50%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초미의 관심 대상인 대한항공 소유의 송현동 부지 매각의사를 밝혔다. 

증권시장은 ‘주가상승’ 형태로 한진그룹의 경영개선계획에 화답했다. 주주친화정책이 주주가치(주가)를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가치’를 올렸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배당을 늘리고 유휴자산을 매각해 현금흐름을 개선시키면 주가는 당연히 오른다. 그 혜택은 현재의 주주에게 돌아간다. 미래의 자원을 미리 끌어다 주가를 올렸다면 미래주주에게 돌아갈 몫은 없다. 한진칼을 압박해 대한항공 주가를 끌어올렸다면, 국민연금은 ‘주주행동주의’자가 된 것이다. ‘주주행동주의’는 자본시장규율을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주주행동주의의 선봉에 서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경영권개입과 투자대상 기업의 기업가치 제고 간에 체계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하는가? 그렇다고 믿었다면 순진한 발상이거나 정책오만이다. 국민연금의 빈번한 경영권 개입은 오히려 투자기업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기업가치를 하락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역발상’ 차원에서 정부의 국민연금을 통한 민간기업 경영 개입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대한항공은 2019년 4월 19일에 최고가 41,650원을 찍고 그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만약 2019년 초반 국민연금의 적극적 의결 행사로 대한항공의 기업가치가 제고되었다면, 그 이후 대한항공의 주가는 완만하나마 상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항공 주가는 2.8만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은 아니다. 

O 문재인 정부 들어 저성장이 고착화 된 이유

2018년은 문재인 정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이다. 주지하디시피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에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말에 그들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 2개를 채웠다. 하나는 ‘증세’이고 다른 하나는 ‘최저임금 인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 인상을 ‘부자증세’로 비틀면서까지 증세를 실현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올렸고, 소득세 최고세율을 42%로 인상했다. 최저임금도 전년대비 16.7%로 두 자리 수 인상했다. 

‘버킷 리스트’를 2017년에 채웠으므로 한국경제는 날개를 달은 셈이다. 2018년에 한국경제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렸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내심 한국경제는 ‘순풍에 돛을 단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한국의 2018년 경제 성장률(2.7%)은 미국 경제성장률(2.9%)보다 0.2% 낮다. 미국의 경제규모는 우리보다 12배 크다. IMF외환위기, 메르스 사태 등 외부요인에 의하지 않고 정상적인 상태에서 미국보다 성장률이 낮은 것은 처음이다. 급기야 2019년 1/4분기에는 전(前)분기 대비 마이너스 0.4% 역성장을 했다. 그 후유증으로 2019년의 성장률은 2.0%에 그쳤다. 2019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2.0%는 미국(2.3%)보다 0.3% 낮은 수준이다. 연속 2년 미국보다 느리게 성장했고 성장률 격차가 0.2%에서 0.3%로 벌진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O 정책실패에 따른 ‘경제적 손실’ 추정 

2018, 2019년 2년 동안 우리 경제가 저성장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기업의 투자’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는 반증인 것이다. 

정책실패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추정해 보자. 정책실패은 종국적으로 성장률 저하로 귀착된다. 2018년을 기준으로 경제적 손실을 추정해 보자. 2018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893조원이다. 각종 정책실패로 “더 성장할 수 있었지만 ‘명목 국내총생산의 1%’가 유실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금액으로 표시하면 약 18조원이다. 

‘노동소득분배율’은 한 나라에서 한 해 생산 활동으로 발생한 소득 가운데 자본을 제외한 노동에 배분되는 몫을 가리킨다. 급여, 즉 피용자보수를 국민소득(NI)으로 나눈 값이다. 2018년 노동소득 분배율은 63.8%이다. 통상 ‘국내총생산’은 분배 측면에서 계측한 ‘국민소득’보다 상당 정도 크다. 보수적으로 판단해 국민소득이 국내총생산의 70%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1% 성장률 하락의 기회손실’로 인한 국민소득 감소분은 명목치로 18조원의 0.7배인 12.6조원이다. 12.6조원의 약 64%(63.8%)가 피용자 보수로 분배되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월급으로 지불할 수 있었던 12.6조원의 60%인 7.5조이 증발한 것이다. 7.5조원의 기회손실은 ‘연봉 4,000천만원 짜리 18만7천 5백(7.5/0.4)개의 일자리’에 해당한다. 연봉을 3천 5백으로 낮추면 약 21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O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의 쟁점과 문제점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간섭주의 함정에 빠져있다. ‘국가 대 시장’의 관계에서 정부는 ‘기업의 투명하고 책임 있는 경영을 유도’하기에 충분한 지식과 수단을 갖고 있다고 근거 없이 간주한다. 반면 정부의 대척점에 위치한 기업은 정부의 감독이 소홀하면 일탈을 일삼는 탐욕스런 존재로 의제된다. 하지만 현실은 “정부가 전지전능할 수 없으며 정부의 감독이 시장규율보다 경제적으로 더 소망스런 상태를 가져 온다”고 단언할 수 없다. 오히려 현실은 그 반대일 수 있다. 기업 간에는 경쟁이 존재하지만 정부는 독점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목적하는 것은 ‘국민연금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경영권 영향 목적’의 범위를 좁힌 것이다. 임원 선·해임 등에 대한 주주제안 등 ‘영향력’ 행사는 그대로 인정하지만 “이사해임청구·위법행위유지청구, 보편적 지배구조 개선 및 배당 관련 주주활동은 경영권 영향목적”으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지배구조 개선 노력의 일환’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정관변경을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것’에서 제외하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폭거이다. 자본시장법 제 147조 1항은, 주식 보유목적이 주식 발행인의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의 범위로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 이사회 등 회사의 기관과 관련된 정관의 변경 등을 말한다”로 명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행령이 상위법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것이다. 정관변경을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정관변경 시도가 수시로 일어날 것이며 그만큼 기관투자자의 경영간섭이 늘어날 것이다. 집중투표제 시행을 보편적 지배구조 개선의 일환으로 보면, 집중투표제 도입도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 것이 된다. 

국민연금이 ‘사전에 공개한 원칙에 따라’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주주제안을 하는 경우, 이는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게 되면 당해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를 막을 마땅한 수단이 없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에 영향을 받는 기관투자자들이 국민연금과 함께 공동으로 의결권 행사를 하면 해당 상장사는 집중투표제 도입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집중투표제 도입이 ‘지배구조 개선’에 부합한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집중투표제 도입이 지배구조 개선일 수는 없다. 만약 외국계 헤지 펀드가 집중투표제를 이용할 경우, 경영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 

시행령이 발효되면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에 따른 정관 변경은 경영권 영향 밖으로 인정되어 정관변경이 용이해 진다. 이는 자본시장 발전과 질서를 확립해야 하는 금융위원회가 그 역할과 책임을 국민연금에 '백지위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기반한 기업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의결권 행사를 용이하게 하는 사전정지 작업으로 읽힌다. 이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O 에필로그

한국적 현실에서 경영권 공격과 방어 간에는 ‘동등무기 원칙’(equal footing)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경영권 방어차원에서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은 제도 조차 도입되지 않고 있다. 자사주 매입이 고작이다. 직접적인 자기주식 매수뿐만 아니라 자기주식 신탁을 통한 간접적인 자기주식 매수까지 포함할 경우, 기업들이 자기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데 쓴 돈은 2017년 8조 1,000억 원이다. 최근 기업들의 배당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 역시 외부로부터의 경영권 위협이 높아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들의 침체된 설비투자가 국내경기 회복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주식 매수와 배당 확대는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금융당국은 스튜디어십 코드(SC)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SC code는 획기적인 제도적 고안물인가. 아니다. SC code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에게 부과되는 기존의 신인의무(fiduciary duty)와 구분하기 위해 ‘스튜어드십 책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채택했을 뿐 종래의 기관투자자에게 요구했던 ‘신인의무’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스튜디어십 코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방치 내지 조장한 기관투자자들의 ‘자기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SC 도입은 공적연·기금 보다 민간 기관투자가에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 

금융시장 규율차원에서 행동주의 펀드를 백안시 할 필요는 없다. 행동주의펀드는 전(全)국민이 강제 가입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기업을 타겟으로 삼아도 주주의 권리로 행동할 뿐, 그 배후에 국가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적 연·기금으로서의 국민연금은 다르다 그 뒤에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가 있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다. 

국민연금은 여전히 기금운용위원회에 현직 장관이 위원장으로 참여하는 등 독립성 없는 구조로, 산하 위원회 구성도 비중립적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에 날개를 달아주는 자본시장 시행령 개정은 그 자체가 독선적인 것이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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