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첫발 내디뎌 동남아시아, 미국, 그리고 중국 지난 뒤 호주까지 이어지는 발자취
공직생활 중 접한 외국문화 상세히 소개하면서 외교관으로서 챙겨온 날카로운 식견 제시
‘전범 추모’ 일본의 역사왜곡 경계해야...그러나 ‘공룡국가’ 일본 경제력 인정하고 대응해야
조선족 택시기사마저 ‘세계 1위’ 외치는 중국의 전체주의와 자신감...對中외교 신중하게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예스24

1990년대 후반 주일 한국대사관 홍보공사 등을 지낸 전직(前職) 외교관 황현탁씨가 소회와 염원을 담아 전 세계 여행담을 엮어낸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가 출간됐다. 저자는 다사다난한 공직 생활 중 자연히 접한 외국문화를 상세히 소개하면서도, 바로 외교관이기에 일찍이 챙겨온 국제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식견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저자의 발자취는 일본에서 첫발을 내디뎌 동남아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그리고 중국을 지난 뒤 마지막 호주까지 이어진다.

여행을 떠난 저자의 발걸음은 오래전부터 작정해 둔 길인 듯 거침이 없다. 외교관으로서의 사명에 벗어나 볼 것은 제대로 보자는 감상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특히 일본에 관해서 저자는 일제강점기 시대라는 그 역사적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와 그 내부에 설치된 전쟁박물관 유슈칸(遊就館)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설립 취지는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가추도시설 모습을 띤다. 그러나 실상 종교시설과 같아 2차 세계대전 전범(戰犯) 939명이 합사돼 이들을 위한 추모가 열리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다른 국가와 민족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보다는 국가를 위해 희생된 동족을 기리고 찬미하는 게 중심”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유슈칸에는 “전쟁은 청나라나 러시아, 미국 때문이고, 아시아 각국을 서구로부터 해방시키거나 외세로부터 아시아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운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오로지 일본인의 입장에서 애국심을 고취하고 희생정신을 기려 자라나는 미래세대에 역사왜곡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공룡국가’ 일본이 자랑하는 경제적 위상을 인정하며, 배타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지혜를 짜내야 극일(克日)을 이룰 수 있다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이외에도 저자는 오랜 역사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국에 대한 경험과 소양을 드러낸다. 그들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힌 전체주의 사고, 조선족 택시기사마저 “10년 내 미국을 이긴다”고 말할 만큼 ‘세계 1위’가 되고자 하는 민족적 열망 등에 대한 일화를 곁들여서. 이와 반대로 폐가, 폐허로 변한 잿더미 건물 속에서도 걱정 없이 살아가는 필리핀, 대형 카지노의 화려한 불빛이 밤을 지배하는 도박과 환락의 도시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이 저자의 담담한 문체로 묘사된다.

저자는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나 영남대 법정대학을 졸업한 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이후 국정홍보처 홍보기획국장과 주일본 한국대사관 홍보공사 등을 역임했으며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원장도 지냈다. 지금은 은퇴해 글을 쓰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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