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TPP 복귀, 한미 FTA 흔들..한국, 美와의 고리 끊어질 수 있어
북핵 문제에서도 양국은 엇박자...대한민국 위기로 치달을 수도

 

오랜 세월 한국 외교의 핵심 축이었던 한미(韓美) 경제·안보 동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28일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부 장관의 말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TPP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복귀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TPP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이 된 후 미국을 TPP에서 탈퇴 시켰다. 그 입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국은 일본, 호주 등이 참여하는 TPP에 가입이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현재 미국과 FTA 재협상 국면에 있다. 미국 정부는 한미 FTA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공정 무역 회의에서 “한·미 FTA를 공정하게 재협상하거나 완전히 폐기하겠다”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최악의 경우 한미 FTA가 폐기된다면 일본과 호주는 미국과 경제 동맹을 강화하는 반면 한국은 그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국가들 사이에서 경제적 외톨이로 전락할 수 있다. 미국의 신(新) 아시아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이 빠져버리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된다.

미국은 경제 동맹과 안보동맹을 따로 하지 않고 하나로 묶어왔다. 백악관이 작년 12월에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그런 미국의 입장을 확인 시켜준다. 미국은 이 전략에서 “강한 경제가 미국 국민을 보호하고, 우리 삶의 방식을 떠받치며, 미국의 힘을 지속시킨다”며 경제와 안보가 함께 가는 것임을 강조했다. (“A strong economy protects the American people, supports our way of life, and sustains American power.”) 미국이 FTA를 체결한 첫번째 국가가 이스라엘이고, 두번째가 요르단이라는 사실은 FTA가 경제 동맹을 넘어 안보동맹을 의미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은 지난 1월 한국산 태양광 모듈과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고, 17일에는 미 상부부가 한국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일본 철강제품은 고율 관세 리스트에서 빠져있었다.

한편 현재 한미 관계는 북핵문제 등 한반도 외교안보 현안을 둘러싸고도 삐걱거리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선(先) ‘비핵화’를 못 박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선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올바른 조건에서만 북한과 대화 하겠다”고 밝힌 직후 미 정부 관계자들은 일제히 북한과의 (올바른) 대화 조건은 ‘비핵화’라고 설명하고 나섰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지난 23일 발표한 사상 최대 규모의 대북 제재를 상시시키며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의 영구적 비핵화를 위해 100% 전념하고 있다는 점을 전 세계 국가와 기업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27일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적절한 조건에서만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날 발언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의 조건은 비핵화이며 우리의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 첫날부터 우리가 말해왔던 대북 정책은 ‘최대 압박’과 ‘한반도 비핵화’였다”고 덧붙였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28일 문재인 정부와 여권에서 띄우는 미북 대화와 관련 "비핵화로 표현된 목표가 없는,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벌기용 대화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못박았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연일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7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국에서 열린 군축회의(CD)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조치를 모색하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에 대한 지지와 관심을 부탁한다”며 비핵화가 전제된 대화가 아닌 비핵화로 갈 수 있도록 ‘대화’를 먼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6일 류옌둥(劉延東)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의 접견에서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또한 “대통령이 나가라고 하면 주한미군도 나가야 한다”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보좌관의 27일 워싱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의 발언은 한.미간의 안보동맹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신 아시아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은 6.25 전쟁 이후 미국을 위시한 해양세력과 함께 자유진영의 최전방 전선을 담당해 왔다. 북한 핵문제를 핵심 변수로 생각하는 미국이 TPP에 복귀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구하는 가운데 한국이 경제와 외교안보 양면에서 미국 주도의 질서에서 이탈한다면 그동안 대한민국이 지켜온 정체성이 흔들리고 자칫 상상하기도 힘든 국가적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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