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복 받은 세대다. 같은 숫자가 연달아 오는 해는 천 년에 한 번 뿐이다. 1010년이 왔었고 3030년이 올 것이다. 그러니까 2020은 대체로 우주적인 숫자다. 생각만큼 이를 축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적어도 2020년이 2000년보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막상 2020년의 풍경은 황량하다. 특히 대한민국이 그렇다. 갈등만발이다. 젊은 놈은 늙은 놈이 싫고 오른 쪽에 있는 놈은 왼쪽에 있는 놈이 밉다. 영남은 호남이 호남이라서 싫고 호남은 영남이 영남이라서 짜증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부러워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시기하고 질투한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예수가 하듯 대해야 하는데 기생충 보듯 한다. 동서남북이 다 파벌이고 분쟁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대서양 건너 미국도 그 판이라는 사실이다. 그 나라도 남북전쟁 이후 최고의 국민 불화 상태라고 한다. 원래는 베트남 전쟁이 그 자리였는데 전쟁을 밀어낼 만큼 작금의 대립은 격렬하다. 울밑에 선 봉선화도 아니고 이런 걸 위로랍시고 받아들여야 하는 신세가 처량하다. 2020년은 대한민국의 위기인 동시에 한 문명의 위기다. 70년을 넘게 버텨온 한반도 최초의 자유주의문명이 바람 앞에 촛불이다. 수천 년 간 대륙문명의 변두리로 살아온 나라였다. 어쩌다 운이 좋아 해양문명의 세례를 받고 공업工業과 통상通商의 시대를 운영했던 것이 지난 70년 대한민국의 역사다. 망상에 가까운 민족주의와 친중 사대주의로의 회귀가 기승을 부리는 현재는 문명의 변곡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안 망하고 버티기 경쟁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독재 권력의 한계 수명이 대략 70년이다. 가장 오래 버틴 소비에트 러시아를 비롯해서 타이완 국민당 그리고 멕시코 제도혁명당이 70년을 조금 넘게 버텼다. 그 뒤를 중국 공산당과 북한 공산당이 기록 갱신을 위해 쫒고 있다. 독재라지만 결이 조금씩 다르다. 타이완과 멕시코는 정당독재지만 소비에트 러시아와 중국은 정당인 동시에 공산주의라는 문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매우 특이한 존재다. 정당이자 김가金家왕조인 동시에 공산문명이다(여기서 문명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측면을 의미). 그러나 이 생존의 문제에서 대한민국 역시 자유롭지 못한다. 북한이 먼저 망하느냐 남한이 먼저 망하냐는 문제에서 이제껏 대한민국은 대체로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2017년부터는 상황이 바뀌었다. 철없고 뇌 없는 좌익 정권이 들어선 지금, 그리고 그 정권이 머릿속의 낡아빠진 이상을 하나하나 실현해나가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 역시 바닥을 향해 맹렬하게 침몰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망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2022년을 넘기는 싸움은 올 4월부터 본격이다. 총선을 망치는 순간 잠정적으로 망한 상태가 되며 이후는 파산절차를 밟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반도에는 이미 망한 나라와 곧 망할 정권만 있게 된다.

사라졌던 나라는 또 사라질 수 있다

폴란드는 123년 동안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였다. 한때 10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국토 면적을 자랑했던 동북 유럽의 강국이 1795년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분할로 하루아침에 ‘없는’ 나라가 됐다. 폴란드가 다시 자기 이름을 찾은 게 1918년이다. 자기 힘으로 찾은 게 아니었다. 동맹국이 항복하면서 얻은 결과였다. 독립의 세월은 짧았다. 1939년 독일과 소련이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폴란드를 다시 나눠 가졌다. 21년 만의 두 번째 멸망이다. 국가라는 게 당사자들의 의지만 있다고 영속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조선은 1910년에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35년 만에, 역시 자력이 아닌 침략자들이 항복하면서 살아났고 새 이름을 얻었다. 폴란드와 아주 비슷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두 번째 멸망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나라가 앞으로도 오래토록 번영 혹은 생존할 수 있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그게 다가 아니다. 모든 나라의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국가의 수명을 가진다.

결기(決氣)는 자유우파의 마지막 자존심

버티고 살아야 이기는 건 국가만의 할 일이 아니다. 개인도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야 복수도 하고 적들의 몰락을 즐길 수 있다. 오래 살기 위해서, 건강하기 위해서는 많이 웃어야 한다. 웃으며 사는 건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해준다. 원래 자유우파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낙관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다. 여기서 끝? 오래 살고 웃기만 했다고 인생이 다 ‘뷰티풀’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신념에 투철하고 결기가 있으며 그것이 훼손당했다고 혹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할 때 기꺼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장수長壽고 해학이고 죄다 ‘꽝’이다. 민주주의는 보통 민주주의 때문에 망한다. 민주주의는 너무나 쉽게 우중愚衆민주주의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알 턱없는 것을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우려하고 고민한 끝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희생하지 않는다면 장수는 단지 생물학적인 특혜일 뿐 사회학적으로는 무의미하다. 필요할 때 나를 던지는 자세, 이게 자유우파의 자존심이자 가장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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