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서 北김정은 피고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변론...변호인단, “재판부의 용기 있는 결정”
6·25 정전협정 체결 후 송환돼야 했을 국군포로 5~7만, 北이 억류하고 노동을 강제해 국제법 위반...‘국군포로’들의 ‘한 맺힌 70년’
원고 측, “돈 몇 푼 받겠다는 것 아냐...포로 송환을 거부하고 ‘국군포로’ 억류한 北에 책임 묻는 것이 이번 재판의 핵심”

서울중앙지방법원.(사진=박순종 기자)

‘43호’—그것은 북한에서 그들에게 이름 대신 붙여진 이름이었다.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후, ‘김일성교시43호’에 따라 지난 1953년 9월 북한 ‘내무성건설대(內務省建設隊)에 강제로 편입돼 탄광 등지에서의 노동을 강제당한 ‘국군포로’들을 이르러 북한에서 불렀던 별칭이다. 70년 한 맺힌 ‘43호’ 1명이 21일 대한민국 법정에 섰다. 이날 북한 김정은을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첫 공개 변론에 원고 측으로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한 명의 원고는 건강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아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다.

기자들 앞에 선 탈북 ‘국군포로’ 한 씨(85)는 “돈 몇 푼을 더 받기 위해 소송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미 국가로부터 50년 동안 ‘고생했다’고 다 보상 받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변호인단 측은 이번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핵심은 포로 송환을 거부하고 이들을 억류한 북한에 책임을 묻는 동시에 우리 국민들에게 ‘국군포로’ 문제를 알리는 데에 있는 것이며 ‘강제노동’ 부분은 재판 내용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한 씨 등 탈북 ‘국군포로’ 2명은 북한의 수괴 김정은을 피고로 해 지난 2016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사진=연합뉴스)

변호인단 측은 또 북한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국군포로’들이 최하위 계층으로 분류돼 어려운 나날을 이어온 것은 물론, 심지어 어느 자식은 아버지가 ‘국군포로’인 사실이 알려지자 자살을 해 버린 사례도 있었다며 ‘국군포로’들이 북한에서 겪어야만 했던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 씨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 1953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내무성건설대’를 조직했다. 북한 측은 ‘국군포로’들을 ‘내무성건설대’에 편입시켜 무급 노동을 강제했다. 이들은 대부분 탄광으로 배치됐다. 그로부터 3년여가 경과한 1956년 8월13일, 북한은 ‘내무성건설대’를 해체했지만, 그렇다고 ‘국군포로’들을 본국인 대한민국으로 돌려보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하던 탄광 등 기존에 배치된 노역장에 그대로 남아 북한 사회로 강제 편입 당해야만 했다. 이후 북한은 이들에게 명목상의 급여를 지급하기는 했지만, 최하위 계층으로 분류된 ‘국군포로’들은 북한 사회에서 갖은 멸시를 견디며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박선영 물망초재단 이사장은 “당시 북한 당국은 ‘남조선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일어나라’며 국군 포로들을 일으켜 세우고는 일어선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쏘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박 이사장은 “기관총을 쏜 후 다시 ‘남조선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일어나라’고 했다고 하니, 어느 ‘국군포로’가 일어날 수 있었겠가”하고 물으며, 북한에 남은 ‘국군포로’들을 ‘자발적 북한 귀순’으로 처리한 북한 당국의 인권유린 행태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렇게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의 숫자는 최소 5만명, 최대 7만명에 이른다고 원고 측 변호인단은 덧붙였다.

이번에는 탈북 ‘국군포로’의 처지에 있는 김 씨가 기자들 앞에 섰다. 김 씨는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동료 한 씨를 응원하기 위해 재판장을 찾았다. 그는 브로커의 중개로 중국 다롄(大連)을 통해 조국으로 돌아왔다. 김 씨는 7번 탈북을 시도해 8번째에 성공했다고 하니, 그가 조국으로 되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칠전팔기’의 ‘북한 탈출기’였다.

김 씨는 조국으로 돌아온 이후의 삶을 ‘낙원’에 빗대며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을 감사히 여긴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조국을 그리워하다가 많은 탄광에서 돌아간(죽은) 사람들이 많은데, 생활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조국의 품에 안기려고 하다가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북한에 남기고 온 동료 ‘국군포로’들이 겪고 있을 굶주림과 빈약한 생활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박선영 이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총 80여명의 탈북 ‘국군포로’들 가운데 2020년 1월 현재 23명만이 생존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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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 등 원고 측 변호인단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박순종 기자)

한편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9단독 김도현 부장판사는 이날 열린 한 씨 외 1명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첫 변론을 심리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 3년이 넘어 처음으로 정식 재판이 열린 것이다. 앞서 재판부는 네 차례의 비공개 변론준비기일을 가졌다. 피고인 북한 김정은의 재판 참석이 불가능하다는 제약 조건이 있었지만, 재판부는 피고 측에 민사소송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시송달’ 결정을 내리고 재판을 속행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원고 측 변호인단은 “재판부의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재판에서,  강제 노동에 대한 손해배상과 관련해, 당시에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아니었던 김정은에게 그 상속책임을 얼마나 물을 수 있는지 원고 측 변호인단에 법리적 해석을 요청했다. 김 부장판사는 또 ‘국군포로’ 억류가 불법이라는 국제법적 기준에 대해서도 명확한 근거 자료를 제출할 것 또한 요청하는 한편, ‘국군포로’가 북한에서 노동을 강제당했다는 일반적인 사실 외에, 원고 2명이 북한에서 그러한 노동을 실제로 강제당했다는 직접적인 증거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앞서 변론준비기일이 4회 진행되는 동안 한 씨 등이 북한에서 노동을 강제당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국가정보원에 요청했지만, 국가정보원은 이제까지 관련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어서 재판부에 입증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원고 변호인 측은 이같은 국가정보원의 행태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눈치보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며, ‘정보공개청구’와 더불어 관련된 소송을 별도로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한 씨 등이 북한에서 노동을 강제당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탈북 ‘국군포로’ 생존자 20여명을 직접 증인으로 세울 계획도 분명히 했다.

물망초재단의 박선영 이사장은 “이번 소송은 판례를 남기기 위해 진행하는 ‘리딩케이스’(leading case)”라며 이번 소송에서 이길 경우 추가적인 소송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첫 공개 변론에 앞서 물망초재단은 관련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재판을 북한 김정은 피고로 세운 첫 사례라며 ‘역사적인 재판’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3월24일로 예정됐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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