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당 차이잉원 총통, 817만표 획득해 득표율 57%로 국민당 한궈위 후보에 대승
대만 국민들, ‘홍콩 민주화 시위’와 ‘왕리창 폭로 사건’ 접하며 대중 안보 경각심 키워...차이 총통의 연임에 큰 영향
지난 2019년 3월 여론조사...對中 관계에서 ‘국가 안보 중시’는 회답이 58%로, ‘경제 이익 중시’ 회답 한참 앞지르기도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11일 2020 대만 총통 선거 결과 득표율 57%로 817만표를 획득하며 연임에 성공했다.(사진=연합뉴스)

여당인 민주진보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11일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며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2016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대만 총통에 당선된 차이 총통은 이번 선거에서 ‘사상 최다 득표’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토요일(11일) 치러진 ‘2020 대만 총통 선거’ 결과, 차이 총통은 득표수 817만표, 득표율 57%로 대승을 거뒀다. 차이 총통은 지난 2016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대만 총통에 당선됐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사상 최다 득표’로 연임에 성공하면서 다시 한 번 신화를 쓴 것이다. 반면 상대편 후보로 나선 중국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현(現) 가오슝시(市) 시장은 552만표(38%)를 획득하는 데에 그쳤다. 한 후보는 총통 선거 결과 발표 후 차이 총통에게 전화를 걸어 결과를 깨끗이 승복했다.

차이 총통은 당선 소감에서 “민주주의적 대만과 민주적으로 선출된 우리 정부가 결코 위협과 협박에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중국 당국이 알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의 자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 받을 때 대만 국민들이 오히려 우리의 투지를 더욱 크게 외치리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지난해 6월부터 민주화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홍콩 시민들을 의식해 “홍콩 친구들도 (선거 결과에) 기쁨을 느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총통 선거의 화두는 ‘반중’(反中) 대 ‘친중’(親中)이었다. 그간 대만 경제는 중국 경제에 크게 의존해 왔지만 대만 국민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주권 수호’와 ‘경제적 이익’ 사이의 선택의 기로에서 ‘주권’을 택했다.

대만 국민들이 이같은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지난해 6월 본격적으로 시작된 홍콩에서의 ‘민주화 시위’가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 받을 당시, 공산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공존한다고 하는 ‘1국가2체제’(소위 ‘일국양제’)의 슬로건 아래, 홍콩에 대해 ‘고도의 자치권’과 ‘자유’를 보장한 중국이었다. 그러나 지난 20년 간 중국이 홍콩에서 벌인 일은 ‘친중(親中) 인사 심기’를 통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반중(反中) 인사 납치와 고문’ 등 자유·민주 세력에 대한 탄압이었다. 이같은 중국의 행태에 크게 반발한 홍콩 시민들은 지난해 6월 궐기한 이래 반 년 넘게 대중(對中) 투쟁을 이어오고 있으며, 대만 국민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봐 왔다.

지난해 11월, 왕리창은 자신이 중국의 스파이로 활동해 왔다며 활동 내용을 폭로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사진=영국 BBC)
지난해 11월, 왕리창은 자신이 중국의 스파이로 활동해 왔다며 활동 내용을 폭로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사진=영국 BBC)

여기에 더해 지난해 11월, 자신이 ‘중국 스파이’였다고 주장한 왕리창(王力强·가명)은 호주 정부 당국에 망명을 요청하며, 중국이 홍콩·대만·호주 등지에서 중국이 벌여온 활동들을 폭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은 왕리창을 회유해 보려고도 했고 그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왕리창을 협박하기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왕리창의 폭로 내용 가운데 이번에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의 상대로 나온 국민당 한궈위 후보에 관한 것도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왕리창의 폭로 내용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대만 지방선거 당시 중국공산당은 한궈위 당시 가오슝시(市) 시장 후보에게 거액의 선거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차이잉원 총통은 유세 기간 동안 이번 선거를 “민주적이며 자유로운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선거”로 규정하고 한궈위 후보를 몰아붙였다. 한 후보는 차이 총통이 ‘반중’ 감정을 이용해 선거를 치르려 한다며 반론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홍콩에서 일어난 일련의 ‘반중·민주화’ 시위들과 ‘왕리창 폭로’ 사건을 접한 대만 국민들은 중국의 ‘침투’에 새삼 경각심을 갖게 됐다. 이는 곧 ‘반중’(反中) 노선을 확실히 한 차이잉원 총통에 대한 높은 지지율로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통 선거’를 고시하기 직전인 2019년 12월10일 대만의 민영방송 TVBS가 자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이미 대만 국민의 51%가 차이 총통을 지지한다고 답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차이 총통의 맞수로 나온 한 후보보다 22%포인트(p.) 높은 수치였다. 이보다 앞선 2019년 3월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대중(對中) 관계에 있어서 ‘국가 안보를 중시한다’는 회답이 58%에 이르며 ‘경제 이익을 우선한다’는 회답을 27%포인트 앞서기도 했다.

중국이 임의로 설정한 해상 방어서 개념인 ‘제1도련선’과 ‘제2도련선’의 경계.(이미지=한국해양안보포럼)

대만 국민들의 높은 ‘반중 감정’ 뿐 아니라,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중국 경제 하강 국면으로 들어선 점도 이번에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차이 총통의 연임 성공의 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에 일감을 주던 미국 기업들이 그 조달처를 대만으로 옮겼고, 중국에 진출해 있던 대만 기업들도 속속 자국으로 돌아왔다. 이같은 흐름 속에서 대만 경제는 2019년 한 해 2.6% 성장했다.

강력한 ‘반중’ 노선을 견지하는 차이잉원 총통이 연임에 성공과 함께 대만의 ‘중국 이탈’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전통의 맹방인 미국과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질 전망이다. ‘친중’ 성향의 국민당 한궈위 후보가 당설될 경우 중국이 임의로 해상 방어선 개념으로 설정한 제1도련선이 무너지며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도 경고등이 켜질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11일(미국 현지시간) 연임에 성공한 차이잉원 총통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대만의 탄탄한 민주주의 체계의 힘을 다시 한 번 증명한 데 대해 대만 국민들에게도 축하를 보낸다”며 “대만은 자유시장 경제, 활발한 시민사회와 연동된 민주주의 채계 덕분에 인도-태평양 지역의 모범이자 세계의 공익을 위한 세력이 됐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차이잉원 총통의 투표 장면에서 NHK 국제방송의 중국 내 송출을 끊었다.(사진=일본 NHK)

한편 중국은 차이 총통의 연임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대만 총통 선거 이튿날인 12일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총통 선거와 관련한 향후 정세 전망에 대한 기자들의 질의에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며 “대만의 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든지 전 세계에서 단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기본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겅솽 대변인은 또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을 고수하며 대만 독립과 ‘두 개의 중국’, ‘별개의 중국과 대만’에 반대하는 입장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 당국은 11일 대만 총통 선거 관련 보도를 진행하던 일본 NHK 국제방송의 실시간 방송 가운데 차이잉원 총통이 투표하는 모습이 나오자 수 초 동안 방송을 끊으며 해당 방송을 시청하던 중국 국민들이 차이 총통의 투표 장면을 볼 수 없게 하기도 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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