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vs 미일동맹 힘대결서 대한민국 '투명국가'전락시킨 文정부...4.15 총선은 정체성 변곡점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기해년(己亥年)이 가고 경자년(庚子)의 새 아침이 밝았지만, 결코 개운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새해는 아니다.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나 2020년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판가름할 ‘운명의 한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금년은 안보와 외교는 물론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도 분수령적인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4월 15일에 치러지는 총선의 결과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좌성향 정책들이 힘을 받을 수도 있고 힘이 빠질 수도 있다. 거기에 따라 한국의 경제와 정치는 죽음의 늪을 빠져 나올 수도 있고 반대로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더욱 높아질 신냉전의 파고(波高)

국제정세부터가 그렇다. 금년에는 대국굴기(大國崛起)와 강군굴기(强軍崛起)를 앞세운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면서 그리고 군사적 초강대국으로의 복귀를 위해 절치부심하는 러시아가 미국과 나토(NATO)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편을 들면서 아시아와 유럽에서 신냉전 대결구도가 한층 더 격렬해질 전망이다. 현재 중국은 군사, 경제, 기술, 정보, 사이버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맹추격중이며, 핵군사력, 우주개발, 신개념 첨단 무기개발 등에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벌인다.

중국의 주변국들이 중국으로부터 느끼는 압박의 강도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미래의 중국을 예상함에 있어서는 경제적 상호의존을 존중하고 국제규범을 준수하는 책임있는 일원이 될 것이라는 그로티우스(Yugo Grotius)적 예상도 있고, 힘을 가진 나라는 반드시 힘을 휘두르게 되어있기에 중국 역시 힘을 앞세우고 패권을 추구할 것이라는 홉스(Thomas Hobbes)적 예상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중국의 행태를 종합하건대 그로티우스적인 중국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20년은 한국에게 있어 중국이 ‘엄중한 미래 위협’으로 각인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도 최강 핵강대국 지위에 집착하고 있다. 경제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대통령의 ‘우주방어계획(SDI)’을 돌파하는 핵구사력을 건설하겠다고 나섰다가 경제붕괴와 연방해체라는 비운을 맞이했던 구 소련의 사례에 비춰보면, 별로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2019년 8월 핵군축 역사에서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되었던 중거리핵폐기조약(1988 INFT)은 파기되었고, 세계는 미·러·중이 주도하고 북한, 이란 등 후발 핵개발국들이 가세하는 새로운 핵경쟁 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한국의 핵위상은 더욱 더 작아질 것이다.

심상치 않은 한미동맹 파열음

한미동맹의 병세(病勢)도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반 동안 문재인 정부의 통북(通北)·친중(親中) 정책으로 인해 한미동맹의 결속력이 느슨해졌음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지금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북한을 공동주적으로 보지 않으며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을 거부하는 한국이 과연 우리의 동맹국인가”라고 묻고 있다. 이런 중에 문재인 정부는 동맹의 결속력을 유지시키는 마지막 보루일 수 있는 현 전작권-엽합사 체제를 해체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전작권이 분리되고 연합사가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이 되는 미래연합군사령부로 대체되면 한미동맹이 “전쟁이 나도 미군을 보내지 않는 동맹”으로 변질될 것으로 우려하지만, 청와대나 국방부가 경청하고 있다는 흔적은 없다.

한미동맹의 이완에는 미국 요인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트럼프 행정부가 신고립주의에 기초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기존의 동맹체제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을 뿌리치고 미국 중심적 질서를 유지한다는 기존의 목표를 고수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가는곳마다 ‘미국 국익 우선’ 원칙에 의거하여 동맹국 스스로가 안보 책임과 경비 부담을 떠안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그동안 자유세계의 리더로서의 행해온 희생적인 세계경찰 역할을 포기하거나 줄이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에게 과도한 부담을 안긴다는 이유로 파리기후협약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고, 지난 5년간 동맹이 되어 ‘이슬람국가(IS)’와 싸웠던 쿠르드족 민병대와 결별하고 북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켰다. 한국, 일본, 나토 등 동맹국들에게 급격한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한꺼번에 5배 이상의 증액을 요구함에 따라 현재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은 난항(難航) 중이다.

Nobody로 전락한 한국, 물건너 간 북핵 해결

미·중 간 신냉전이 심화되고 중·러·북 결속이 강화되면서 그리고 아베의 일본이 대일본주의를 앞세우고 전후(戰後)청산과 군사적 부흥을 꾀하여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하면서 아시아에서는 북·중·러 구(舊)사회주의 블록과 미일동맹 간 세찬 힘대결이 펼쳐지고 있지만, 이 경쟁 구도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거의 실종된 상태다. 미국에서 보면 중국편 같고 중국에서 보면 여전히 미국편으로 보이는 존재가 현재의 한국이다. 문재인 정부가 한일 지소미아(GSOMIA)파기를 시도함으로써 한미동맹, 한일관계, 한·미·일 안보공조 등도 크게 동요했다. 하지만, 북한이나 중국으로부터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한국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북한의 하대(下待)와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신냉전 구도 속에서 중국이라는 든든한 체제 보장자와 러시아라는 지지세력을 얻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

이렇듯 한국은 서방세계와의 외교·안보 협력체계가 붕괴되는 상태에서 구사회주의 블록으로부터 심하게 압박받는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2020년을 맞고 있다. 한국이 이런 식으로 ‘투명국가’ 대접을 받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통북·친중·탈미·반일’이라는 좌파적 수정주의를 고수함에 따라 빚어진 현상이지만, 지난 70년 동안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공조’ 틀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생존·번영해온 한국에게 있어 과연 이 기조가 현명한 선택일까?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금년 중에는 외교·안보 쪽에서부터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큰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새로운 북핵 위기를 점치고 있다. 무슨 용어나 표현을 사용하든 기본적으로 북한이 원하고 시진핑·문재인 정부가 성원 또는 묵인하는 북핵 해법은 북한의 일정 수준 핵무력 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해주면서 제반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것이고, 미국은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전제하는 해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양 입장 간의 절충은 결코 쉽지 않다. 미·북 간 협상이 교착된 상태에서 북한은 연말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 “조만간 새로운 전략무기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이 어떤 전략무기를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한반도에 새로운 먹구름이 몰려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변곡점 맞이할 수 있는 국가정체성

2020년은 국내정치적으로도 엄중한 기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와 집권세력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헌법 개정, 입법, 제도 신설 등을 시도해왔다. ‘4+1 협상’이라는 초법적 국회운영 행태도 보여주었고 공수처 신설과 같은 초헌법적 입법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4·15 총선은 극심한 분열 속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곡학아세(曲學阿世), 진영논리, 가짜뉴스 등이 난무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좌우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권자 국민이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희망과 절망’ 등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할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 문재인 정부와 집권 세력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 체제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변곡점을 맞이할 수 있다. 진실로, 2020년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한 해가 될 이유들은 수두룩하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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