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철저하게 마주선다는 것이 ‘아카데미즘’의 전부라는 이 교수의 신조는 일본의 온화하고 너그러운 아카데미즘의 세계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영훈 교수와 공동 집필한 분들의 우국의 마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편집자 주] 이 글은 다쿠쇼쿠대학(拓植大學) 학사 고문으로 활동 중인 와타나베 도시오(渡邊利夫) 교수가 2019년 11월28일 일본 산케이신문을 통해 공개한 글이다. 와타나베 교수는 게이오대학 경제학부 출신으로 쓰쿠바대학, 도쿄공업대학, 다이쇼쿠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평분업, 압축성장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창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동아시아 경제권이 급성장해 미래에는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했다. 와타나베 교수가 일본어판 《반일종족주의》를 읽은 후 적은 소감을 번역·소개한다.

한국에 대한 이해에 전기를 가져다준 저서

일본어판 《반일종족주의》의 표지.(이미지=아마존재팬 도서 정보)

이영훈 편저(編著), 《반일종족주의》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일본어판도 출판과 동시에 판(版)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어쩌면 한국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일본인의 한국 이해에 전기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느낀 소감을 적어본다.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 위안부, 소위 ‘징용공’ 등의 문제로 가끔 분출하는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보고 있노라면 합리를 넘어 뭔가 보다 깊은 곳에 있는 ‘원초적’ 정념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전제주의나 공포정치의 북한에 대한 한국 국민의 심정 내지는 감정도 평균적 일본인인 나의 이해를 넘어선다.

나는 전에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혈족적 민족주의’라고 불러왔지만, 이 책에 의하면 민족주의라기보다 아주 먼 옛날에 연원을 둔 보다 원시적인 ‘종족주의’에서 유래하는 것 같다.

영어의 ‘nation’, 독일어의 ‘volk’가 일본에 도입돼 이것이 ‘민족’(民族)이라는 말로 번역돼 일반화된 것은 메이지(明治) 시대 중기다. 이 시대에 ‘국어’와 ‘국민’을 창출하고, 일본을 하나의 민족으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근대 주권국가로서의 사회통합을 시도하려는 욕구가 그때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민족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낸 것 같다.

잡지 〈태양〉의 편집주간 다카야마 조규(高山樗牛)의 번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날조(捏造)의 재생산을 멈추게 할 연구

이영훈 교수에 의하면, ‘조선민족’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일본 통치시대의 일이고, 일본에 의한 억압과 차별 속에서 태어난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조선의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민족의식과 크게 차이 나는 점은 그것이 친족의 확대 형태로서 구현되었다는 점에 있다고 한다.

내가 조선의 민족주의를 ‘혈족적 민족주의’로 부른 것도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혈족은 거슬러 올라가 고조선의 왕 단군에까지 이른다.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민족의식’이다.

와타나베 교수가 산케이산문에 기고한 《반일종족주의》 독후감. 와타나베 교수는 “자택 근처에 렌탈한 원룸 맨션 한 칸에서 독서와 집필의 단조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보내온 이 책을 보면서 그 충격적인 언설에 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이미지=산케이신문 캡처)

조선인, 특히 지배계급 양반에 있어서 이러한 관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강한 것이었던 것 같다. 일대의 가계도인 ‘족보’(族譜)의 장대한 확대 버전, 이것이 ‘조선민족’이다. 그 관념은 ‘새로운 양반’으로 등장한 현대 한국의 진보좌파 엘리트의 사상을 얽어매고 독도, 위안부, 징용공이라는, 가공의, 새로운 날조의 기억을 국민에게 각인시킴으로서 견고한 것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 이후 상식을 넘어선 반일 원한의 뿌리는 상당히 깊은 것 같다. 이영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은 전체에 몰아적(沒我的)으로 포섭되고 집단의 목표와 지도자를 몰개성적으로 수용합니다. 이러한 집단이 종족입니다. 이러한 집단을 단위로 한 정치가 ‘종족주의’입니다. 저는 한국의 정치는 이러한 종족주의의 특징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이러한 한국의 정치문화가 대외적으로 일본과의 관계에 이르면 아주 강한 민족주의로 분출합니다.”

“반일종족주의는 1960년대부터 서서히 성숙하고 1980년대에 이르러 폭발했습니다. 자율의 시대에 이르러 물질주의가 꽃 피운 때와 같은 시기였습니다. 반일종족주의에 편승하여 한국의 역사학계는 수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책이 고백한 몇 가지 예는 그 일부에 불과합니다. 거짓은 또 반일종족주의를 강화했습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정신문화는 그 악순환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의 정신문화는 서서히 낮은 수준으로 전락되었습니다.”

‘운명의 반도(半島)’라는 표현이 내 머리를 스쳐간다. 이 반도에서 올바른 역사인식에 도달하려고 격투하는 지식인의 문명비판은 참으로 가혹하다. 이 교수는 한국경제사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한국고문서학회를 세운 경제사의 본격적인 연구자이다. 보수파의 논객이기도 하다.

그의 언설(言說)은 참으로 과감하다. 발로 뛰는 ‘현장 조사연구’(field work)에 의한 각지의 자료수집에 기초한 철저한 실증이 이(李) 교수 연구의 진수이다.

우국의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와타나베 도시오 교수의 저서 《개발경제학입문》(2010) 표지.(이미지=아마존재팬 도서 정보)

조선 토지의 4할이 일본 통치시대에 토지조사사업을 통해서 수탈되었다는 기존의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通說), 그리고 현재 중·고등학생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거의 대부분에 그렇게 쓰여 있는 사실이 근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여 심한 반발을 산 연구자가 이영훈 교수다. 토지조사사업은 총독부의 토지행정을 공정화하고 소유권을 확정하기 위한 획기적인 시도였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진실에 철저하게 마주선다는 것이 ‘아카데미즘’의 전부라는 이 교수의 신조는 일본의 온화하고 너그러운 아카데미즘의 세계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영훈 교수와 공동 집필한 분들의 우국(憂國)의 마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자택 근처에 임대한 원룸 맨션 한 칸에서 독서와 집필의 단조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보내온 이 책을 보면서, 그 충격적인 언설에 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와타나베 도시오(渡邊利夫) 일본 타쿠쇼쿠대학 학사 고문 / 번역 스즈키 기쿠코(鈴木喜久子) 이승만학당 4기(期) 수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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