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광화문 자유시민항쟁' 이후 靑앞 아스팔트에 돗자리 깔고 철야 시작...차가운 날씨도 꺾지 못해
70대 목사 “우리는 문재인을 끌어낼 것”...60대 전도사 “문재인 물러날 때까지 있을 것”
재일교포 참석자 “조국이 세월호처럼 가라앉는 모습에 아들과 함께 한국에 나와 기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생각으로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되찾아 자손들에게 떳떳한 부모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나라를 찾고 죽으면 영광이죠. 나라가 망가지는데 추위와 불편이 무슨 상관인가요?”

19일 오후 기자는 청와대 앞 이른바 ‘광야교회’를 찾았다. 지난 10월 3일 ‘조국 퇴진, 문재인 하야’ 광화문 집회 후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지켜온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수처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여의도 국회 앞으로 나가고 없었다. 그러나 광야교회를 지키는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 이곳에서 벌써 78일째 노숙 철야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순례 목사(가명, 78세)
김순례 목사(가명, 78세)

김순례 목사(가명, 78세)

나는 젊어서 중학교 교사로 2년 동안 일했다. 그러나 한 목사님이 신학을 권유했다. 학교에 사표를 내고 신학대학에 들어가 80년대에 목사가 됐다. 농촌의 면 소재지에서 4군데 교회를 개척하고 목사님들한테 인계했다. 평생 눈물의 기도로 살면서 교인들을 보듬고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와서 같이 먹고 자면서 그렇게 살았다. 나는 문재인한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평생 네가 채우지 못한 사회의 빈틈을 채우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너는 뭐하며 살아왔냐? 그 조그만 창자를 못 채워서 한국을 통째로 들어먹으려 하나? 국민을 상처 입혀 죽이면서 너 혼자 잘 살 자신이 있는가?’ 난 쌓인 게 많은 사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변 당시 매주 토요일이면 태극기 집회에 나갔다. 여자 대통령이라고 없는 죄를 몽땅 뒤집어 씌워서 내쫓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시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목격했다. 그 사람들은 한국 국민이 아니었다. 빨갱이였다. 빨갱이들한테 맞아서 태극기 시민들이 크게 다치는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뉴스에 전혀 나오지 않았다.

지난 10월 3일부터 광야교회에 나왔다. 오늘까지 이곳에서 먹고 자고 한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생각으로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되찾아서 자손들에게 떳떳한 부모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라를 잃고 거리를 전전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나는 이미 근 80년을 살았다. 무엇이 잘못된 일이고, 무엇인 잘된 일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바로 일어서야 한다. 나는 여기 있는 젊은 경찰들한테 말한다. ‘지금 정치가 아주 잘못됐어. 이건 정치가 아니야. 너희들이 바로 서야 돼’ 어떤 경찰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할머니 말씀이 옳다’고 수긍하는 경찰도 있다. 나는 먹을 거 생기면 경찰들한테 찔러 준다. ‘먹고 이기자. 어쨌든 우리는 이 정치를 파산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춥지 않느냐고? 추워도 해야지. 나라가 망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나라를 찾고 죽으면 영광이다. 나라가 망가지고 자손들이 빨갱이 되면, 죽어서도 자손들에게도 눈물 날 일이다. 나는 딸 하나가 있다. 딸은 내가 이러는 거 모른다. 걱정할까봐 일부러 말 안 했다. 나라가 망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기도로 붙잡고 있다.

문재인은 ‘빨갱이’라고 생각한다. 완전 공산당이다. 우리 부모님이 빨갱이들한테 찢겨 돌아가셨으므로 나는 그런 인간들을 잘 안다. 문재인은 인간으로 볼 수 없다.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문재인은 한 번도 이 곳에 안 나와 봤다. 오면 뒤질 건데 어떻게 나오겠나.

지금 문재인 정권은 노인들에게 현금을 나눠주면서 매수하고 있다. 어제 노인정에 갔더니 크리스마스라며 구청에서 나와 5만원씩 나눠주고 있었다. 나도 받았다. 나는 노인들한테 격분했다. 그래도 젊어서는 다들 대학도 나오고 사회생활도 한 사람들인데 문재인 정부가 주는 돈을 받더라도 내년 선거에서 바로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경찰들이 교회에 들이닥쳐 회계장부를 내놓으라고 했다. 이게 다 문재인 정권 들어 생긴 일이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각 교회들이 돌아가면서 따뜻한 밥과 국을 제공해준다. 개인이 밥차를 불러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먹여주기도 한다. 보신탕, 우족탕, 도가니탕... 아주 잘 먹고 있다.

우리는 문재인을 끌어낼 거다. 하나님이 오래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라 믿는다.

 

이숙희 전도사(가명, 60세)
이숙희 전도사(가명, 60세)

이숙희 전도사(가명, 60세)

지난 10월 3일부터 거의 석 달째 남편과 함께 이곳에서 먹고 자며 기도하고 있다. 춥긴 춥다. 밤에 텐트 속에 들어가면 체온으로 이불을 덥혀야한다. 화장실도 부족하고. 하지만 나는 이곳에 올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렇게 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8월부턴가 남편이 밤에 잠을 못 잤다. ‘나라가 큰일이다’고 했다. 전광훈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온 남편은 10월 3일 광화문 집회에 나간 후에 이곳(청와대 앞)에서 지내겠다고 선포했다. 나는 남편에게 ‘너무 심한 거 아녜요? 그냥 우리는 기도만 해요’라고 대꾸했다. 그러나 남편은 완강했다. 기도만 해가지고는 안 된다고 했다. 새벽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드러나야 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것이 주사파들과 주사파 정권의 정체가 드러나야 한다는 말씀이신 줄 나중에 깨달았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한국 교회와 성도들, 특히 내가 많이 타락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결혼하기 전 나는 지금과 달리 진심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부모님이 교회를 못 가게하면 담도 뛰어 넘었다. 비닐 한 장 들고 삼각산에 올라가 밤을 새며 기도했다. 휴가가 되면 무조건 기도원에 갔다. 처녀 때는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조금씩 달라졌다.

최근 나라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시 예전의 그런 진실된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것을 느꼈다. 물질이 너무 많은 세상에 살다보니까 우리 성도들이 무엇인가를 놓쳐버렸다. 너무 풍족하니까. 반듯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나는 여기 와서 기도하면서도 몇 번인가 낙심했다. 주사파들이 너무 많이, 사회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하나님, 이 일을 어떻게 해요’ 차라리 아무 것도 몰랐을 때가 속이 편했다. 시국 돌아가는 것을 들어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지난 월요일 사람들이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막기 위해 국회에 들어갔을 때도 그렇다. 악법이 통과될 것 같아 죽을 맛이었다. 그때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또 넘어가게 하셨다.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었다. 나는 이곳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인도해 가신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광야교회는 신기하게 기도가 잘 된다. ‘하늘이 열렸네...’ 은사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어제 저 곳(담벼락 밑)에서 3시간 정도 기도를 했는데 마음이 평안해졌다. 나라를 위한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이 왔다는 깨달음이 왔다. 우리는 지지 않는다. 분명히 이것은 영적인 싸움이다.

우리는 작고 초라하고 저들은 힘이 있고 권세가 있어서 안 될 것 같지만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하늘의 응답이 땅까지 이르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이미 모든 일이 되는 방향으로 하나하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퇴진.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직 통과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시간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도와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다. 감사하다. 나이가 60세라도 다시 어려운 상황을 주셔서 마음을 낮추게 해주신 것에 감사한다. ‘아, 이제 모든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도 더욱 더 겸손해져야겠다, 더 낮아져야겠다, 물질에 연연하는 마음도 완전히 버려야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리라는 점을 확신한다. 감사하다. 어렵지만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생각이냐고? 물론 끝날 때까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이곳의 리더인 전광훈 목사님의 말씀이 있을 때까지 계속 있을 생각이다.

 

박혜리(가명, 40대)
박혜리(가명, 40대)

박혜리(가명, 40대)

나는 일본에서 왔다. 고향은 대구다. 일본 남자를 만나 아들을 낳고 21년 간 살았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라가 어렵고 또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는데 병세가 안 좋아지셔서 한국에 나오게 됐다.

나는 일본에 아는 한국 사람들이 없어서 유튜브를 많이 봤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말 위기 상황이다. 일촉즉발. 풍전등화. 세월호처럼 가라앉고 있다. 그래도 절망은 안 한다. 인간이 볼 때 어떤 상황은 고난과 시련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선(善)으로 바꾸실 수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인간은 악해서 육신의 고통이 없으면 절대 겸손해지지 않고 죄를 깨닫지도 못한다. 나는 조국과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 남편은 신앙이 투철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래서 아들과 내가 큰 저항을 받지 않고 한국에 나올 수 있었다.

일본은 신앙생활은 힘들지만 오히려 그것에 내게 훈련이 된다. 강하게 된다. 우리 아들은 신앙생활의 좋은 동역자다. 나는 목에 병이 있었다. 세 번이나 재발했는데 아들을 통해 하나님이 축복의 말씀을 주셨다. 한국에 나오기 전 약을 타러 병원에 갔는데 검사를 받으니 완치됐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것이다.

춥지는 않다. 일본은 보일러가 없다. 추위에 익숙하다. 아들도 별로 추위를 안 탄다.

 

오미자(가명, 69세)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신앙이 대단하지도 않고 그냥 평범하다. 지난 10월 3일 집회에 참가한 이후 매일 이곳에 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뒤 2년 6개월 동안 우리는 다 우울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완전히 공산주의로 가는 길이 이거구나를 깨달았다. 문재인은 잘한 일이 하나도 없다. 가만이나 있으면 나라가 물 흐르듯이 흘러갈 텐데... 한국에 계속 살아야 하나. 작년에는 이민을 가려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전광훈 목사님을 봤다. 전광훈 목사님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확신이 섰다. 희망이 생겼다.

나는 건강이 좋지 않다. 원래 시위나 집회같은 곳에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0월 3일 혼자 광화문 집회에 참가했다. 이후 광야교회에 매일 나왔다. 한 달 정도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안 끝났다. 오늘이 벌써 78일째다. 여기 와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다. 밤에는 기도할 때도 있고 집에 갈 때도 있다. 집에 돌봐야할 병자가 있어서 집을 오래 비우지는 못한다. 그래도 매일 오기는 온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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