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렬, 7일 81세 나이로 사망...한국현대사에서 3代에 걸친 골수 좌익운동가 집안
전교조 탄생에 주도적 역할...모든 대규모 좌파집회에는 그가 있었다
부친 오정근은 여운형, 박헌영 등과 함께 좌익투쟁...쌍둥이 아들, 국보법 위반으로 수배생활 하기도

오른쪽 두번째가 오종렬이다. 백낙청, 김상근, 김윤수, 박석운 등이 보인다. 모두 좌파계 원로로 배후에서 활약 중이다. 이들은 주요 선거마다 세 결집에 나선다. 

오종렬(吳宗烈)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7일 81세 나이로 사망했다. 오씨는 해방 이후 여운형, 박헌영 등과 활동한 오정근(吳正根)씨의 아들로 1938년 11월 28일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들도 좌파운동을 하고 있어 그야말로 대를 이은 좌파운동가 집안으로 평가된다.

한국진보연대는 7일 “2019년 12월 7일 10시 57분, 전선과 교사운동에 일생을 바친 오종렬 의장님께서 건강악화로 인해 열사의 곁으로 떠나셨다”며 부고를 냈다.

오씨는 광주사범고등학교와 전남대학교(교육학 학사)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1965년 고흥에서 중등 교사로 부임했다. 이후 오씨는 초, 중,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오씨는 1987년부터 전교조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출범에 일익을 담당하면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탄생에까지 주도적 역할을 했다. 전교조 광주광역시지부 초대 지부장 등을 역임한 오씨는 1994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돼 2년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앞줄 왼쪽 끝에 하얀색 스카프를 두른 인물이 오종렬.

오씨는 2002년 효순·미선 미군장갑차 사건 당시 ‘여중생범대위’를 주도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는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을 이끌었다. 같은해 ‘민중연대’ 상임대표로 추대된 오씨는 2005년 ‘反부시국민행동’ 상임대표를 거쳐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06년 노무현 정권이 한미FTA를 추진하자 오씨는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았다.

오씨는 2008년 이명박 정권 시절 광우병 사태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이후 2015년 2월 오씨는 2006년 당시 ‘한미FTA 저지 집회’ 주동자라는 혐의로 징역 1년 10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왼쪽서 세번째로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인물이 오종렬.

오씨는 2006년 출범한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과 ‘5.18 민족통일학교’의 초대이사장도 지냈다.

대대적 좌파집회마다 늘 자리를 지켰던 오씨는 일본 유학파 출신으로 해방 이후 여운형, 박헌영 등과 함께 좌익투쟁을 일삼았던 오정근씨 아들로 태어났다. 오정근씨는 건국준비위원회와 나주인민위원회 농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미군정이 들어선 이후 광주형무소로 끌려갔다.

오씨의 쌍둥이 아들들인 오정규, 오창규 형제는 광주 전남대 학생회에서 좌익운동을 했다. 오창규씨는 전남대 총학생회장, 한총련 산하 남총련 의장, 한총련 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오창규씨는 1993년 5월 한총련 출범식에서 이적단체 범청학련 남측본부 일원으로 북한과 회담을 추진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 동안 수배 생활을 했다. 2006년에는 민노당 후보로 광주 북구청장에 출마했다. 전남대 공과대학 학생회장 출신인 그의 형, 오정규씨는 국내 매체에 “앞으로 자주-민주-통일이라는 한 축을 중심으로 해 민노당 당원으로 진보정당이 기층 대중 저변으로 확대되도록 하고 한국진보연대의 전선을 강화한다는 두 개의 바퀴를 돌려나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오른쪽서 두번째로 하얀 개량한복을 입은 사람이 오종렬.

한국현대사에서 오씨 집안은 그야말로 3代에 걸친 골수 좌익운동가 집안으로 대대적 집회시위의 중심에 있었다.

故오종렬씨의 장례일정은 논의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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