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한국서 '사드 문제' 처리 대놓고 압박했으나 숨긴 文정부
靑-외교부,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사드 논의 사실 밝히자 뒤늦게 실토
전문가 "여태 사드 관련 입장 정리와 주변국 설득 시도 없을 수 있나" 개탄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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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청와대와 외교부를 상대로 주한미군이 경북 성주에 임시 배치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적절히 처리해달라”며 압박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를 숨기던 청와대와 외교부는 중국 외교부가 해당 사실을 공개하고 나서야 뒤늦게 시인했다. 국익이 크게 좌우되는 미중(美中) 열강 사이의 우리 외교문제를 정권 차원에서 작정하고 은폐하려다 들통이 난 것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현재 국제정세는 일방주의와 강권정치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미국을 연신 비난했다. 특히 왕 부장은 “중·한(中韓) 양국은 이웃”이라면서 “제때 대화·협력을 강화해 다자주의·자유무역을 수호하고 기본적 국제 규칙을 잘 준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국의 이 같은 입장은 미중(美中) 갈등이 첨예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왕 부장은 같은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오찬 행사에서도 “모든 사람이 중국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려는 이들의 의도는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던 발언의 연속이다.

문제는 청와대와 외교부가 중국과의 회담 관련 브리핑에서 사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쏙 빼놓았다는 것이다. 취재진의 질문에 “상호 관심사에 대해서 여러 의견을 교환했다. 더 이상 추가로 구체적으로 말할 사안은 없다”고 답변을 회피했고, 언론에 유포한 장문의 보도자료에 ‘사드’란 글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청와대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내년 상반기 방한을 기대한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만 공개했다.

그러나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5일 브리핑에서 "양국은 공동 인식에 따라 '사드' 등 중·한 관계의 건강한 발전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계속 적절히 처리하고 서로의 핵심 이익과 정당한 관심사를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히자 청와대와 외교부는 급히 사드 관련 논의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당황한 기색으로 “사드와 관련해서도 종전 입장에 따른 원론적 수준의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말했다.

통일·외교부처 출신의 한 인사는 “이토록 숨기거나 거짓말만 하는 정권을 처음 봤다”며 “여태 사드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입장 정리와 주변국을 상대로 한 설득 시도가 없을 수 있느냐“고 개탄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방한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 “사드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서 만든 것으로, 미국이 만든 문제”라며 “미국이 이를 한국에 배치해 한·중 관계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사드를 놓고 벌어진 한·중 갈등에 대해 자국은 책임이 없으며 미국과 한국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사드 문제까지 포함한 전방위적 압박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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