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前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울음을 터뜨린 소년...대학 입학 후 ‘주사파’ 혁명 전사로 변신
舊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 대한민국의 발전상 목도...‘자유주의’ 전향까지 꼬박 10년
구해우 북한법 박사가 말하는 新냉전기 대한민국 新전략

신간 《미중 패권전쟁과 문재인의 운명》의 표지.(이미지=출판사 제공)

“박정희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을 때 저는 정말 울었습니다.”

이 말이 어느 종북 ‘주사파’(主思派) 경력이 있는 인사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사실이다. 북한법 박사이자 신간 《미중 패권전쟁과 문재인의 운명》의 저자,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KIFS) 원장의 일화다.

1980년대 안기부의 갖은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묵비 투쟁’을 고수하기도 한 ‘주사파 혁명가’가 아제는 ‘주사파의 문제점’을 넘어서 ‘미·중 신(新) 냉전질서’, ‘신 보수주의’, ‘신 국가전략’, ‘신 통일전략’을 분석하는 책을 지난 3일 내놓았다.

저자 구해우는 보통의 ‘주사파’ 출신 인사라고 하기에는 매우 특이한 경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한 손에는 김구의 《백범일지》를, 다른 한 손에는 청계천 고서 상점을 뒤져 찾아낸 故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서적을 든, 1979년, 이제 갓 중학교 3학년 ‘꼬마 구해우’는 “김구 선생을 살해한 안두희의 행적을 추적하다 실패하고서 남산 김구 선생 동상 앞에서 통일 조국의 달성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치겠노라”고 다짐했다. ‘중년 구해우’의 회고다.

‘민족주의자 구해우’가 좌익 사상을 흡수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984년,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고 난 후라고 한다. ‘청년 구해우’는 대학생이 돼 1980년 광주 사태의 선전물을 처음 접하면서 전두환 정부에 분노감을 품게 됐다. 그것이 계기가 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용했다고 구 씨는 말한다.

나아가, 1985년, 북한법 학자 장명봉 교수의 논문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에 관한 연구〉를 접하고 북한 관련 서적에 푹 빠지게 된 그는 1986년부터는 북한의 대남 방송 등을 통해 주체사상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게 됐다. ‘주체사상’을 ‘반(反) 독재 투쟁의 무기’라는 명분으로 삼았지만 결국 ‘자주민주통일’(자민통)을 조직해 ‘각종 투쟁 활동’ 벌이는 ‘혁명 전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랬던 그도,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해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목도하며, 차츰 변해갔다. 1994년부터 앨빈 토플러, 제레미 리프킨 등 미래학자들의 서적을 읽으면서 처절하게 고뇌한 끝에 2004년 ‘완전한 전향’을 이루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우익 민족주의자’로 출발해 ‘주체사상’을 흡수하며 북한이 주창하는 ‘민족해방전선’에 뛰어들었던 구해우 박사가 다시 완전한 ‘우파 자유주의자’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제 그는 《미중 패권전쟁과 문재인의 운명》에서 “주사파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 하면 북한의 대남전략, 오늘날 한국이 맞은 정치·외교·안보 상황, 좌파가 제기하는 각종 사회문제,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확신을 갖고 말한다.

한때는 ‘주사파’ 이념을 무기로 전두환 정권과 처절한 싸움을 벌였고, SK텔레콤에서 북한 담당 상무로 근무할 당시인 지난 2001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우리 장군님(김정일)을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제안까지 받은 그이기에 누구보다도 대한민국 ‘종북 세력’의 실체를 잘 알고 있다고 구해우 박사는 자부한다. 대한민국 보수에 주는 그의 조언이 궁금하지 않은가? 올 겨울 독자 여러분께 《미중 패권전쟁과 문재인의 운명》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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