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문재인 대통령 예방한 자리에서 ‘일방주의’와 ‘강권 정치’ 재차 언급, 美 향한 불만 표출
文, “핵 없는 한반도 열릴 때까지 지원해달라...시진핑 주석에게 각별한 안부 전한다”
왕이, ‘한국 우호인사’ 오찬 자리에서도 "냉전 사고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
中외교부, 지난 11월에 이미 ‘냉전 사고방식’ 표현으로 미국에 대한 불쾌감 드러낸 적 있어
왕이, “사드 문제는 미국이 초래한 것...美 때문에 한·중 관계 영향”...만주에 초대형 레이더 운용중인 中, 美에 책임 전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5일 오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예방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방한 이틀째를 맞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겸 외교 담당 국무위원은 5일에도 대미(對美)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5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현재 국제 정세는 일방주의와 강권 정치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발언이 어제에 이어 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왕이 부장에게 “핵 없고 평화로운 한반도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까지 중국 정부가 지속해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기를 당부한다”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각별한 안부를 전한다”고 했다.

왕이 부장은 문 대통령 예방에 앞서 서울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신라호텔에서 가진 ‘한국 우호인사’ 오찬(午餐) 기조 연설에서 “냉전(冷戰) 사고방식은 진작 시대에 뒤떨어졌고 패권주의 행위는 인심(人心)을 얻을 수 없다”면서 “중국 부흥은 역사의 필연이며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 초빙 대상자에게 행사 이틀 전 무리하게 일정을 통보해 논란이 인 바로 그 오찬이다.

최근 미국에서 ‘홍콩인권법’이 미국 상-하원에서 모두 만장일치로 가결된 데 이어 지난 3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하원에서 ‘위구르인권법’이 가결되는 등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중국측은 이미 지난 11월 ‘냉전기 사고방식’이라는 문구로 미국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따라서 왕이 외교부장이 말한 ‘냉전 사고방식’이라는 표현은 미국을 겨냥해 사용한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이어 왕 부장은 “온갖 방법을 써서 중국을 먹칠하고 억제하며 (중국의) 발전 전망을 일부러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 배후에는 이데올로기 편견도, 강권 정치의 오만도 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왕 부장은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요구하며 “한·중 양국이 서로 입장을 더 이해하고 지지하는 가운데 지역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한국 배치에 대한 반감도 여지없이 표출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사드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만든 것”이라며 “미국이 만든 문제이고,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면서 한·중 관계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에서 패권주의를 매일 관찰할 수 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평이 추구하는 ‘미국 제일주의’에 대한 중국 측의 시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사드’ 한국 배치를 문제 삼아 한국에 대해 여러 제재 조치를 취해 온 중국은 정작 그 스스로가 수 기(機)의 초대형 레이더 기지를 만주에 두고 한반도를 연일 감시하고 있음이 이미 다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중국은 한반도에 인접한 만주 헤이룽장성에 초대형 레이더를 설치해 놓고 한반도를 감시하고 있으며 그 감시 거리는 5500킬로미터에 이른다.(그래픽=연합뉴스)

한반도 인접 지역인 만주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솽야산(雙鴨山)에 설치된 초대형 레이더는 감시 거리가 5500킬로미터(km)에 이른다. 이 레이더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물론 미국의 알래스카까지 탐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의 신형 ‘페이브 포’(Pave Paw) 조기 경보 레이더의 감시거리 5000킬로미터와 비교하면 500킬로미터나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중국은 이런 종류의 레이더 기지를 중국 전역에 걸쳐 네 군데에 설치하고 사방을 감시하고 있다.

결국 중국은 한반도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으면서도 ‘너희들은 안 된다’는 식의 태도로 그간 한국을 압박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이 외교부장은 문제의 책임 소재를 미국에만 돌렸기 때문에 중국 측의 이같은 태도에 ‘이중성’ 논란이 일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방한 첫 날인 4일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회담 자리에서 왕 외교부장은 “현재 세계의 안정과 평화의 가장 큰 위협은 일방주의”라면서 “이는 지금의 국제질서를 파괴하며 그러한 패권주의적 행위는 국제관계 규칙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는 또 “중국은 시종일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평화 외교정책을 시행하고, 나라가 크든 작든 모두가 평등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며 “중국은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괴롭히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국내 매체는 지난 2016년 한국을 방문해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는가”라고 한 천하이(陳海) 당시 중국 외교부 아주국(亞洲局) 과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왕 부장의 4일 발언을 비꼬기도 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오늘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후 중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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