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3주기' 가택연금 단식 8일째 후송→수액 맞으며 보름 더 버틴 YS이래 '가장 융통성없는' 黃의 단식
2014년 8월 김영오씨 동조단식 벌인 文, 열흘째 종료 기자회견도 직접...정청래는 '동조단식 20일 넘겨 흡연' 구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초겨울 날씨에 지난 20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망국(亡國)정치 분쇄' 노숙 단식투쟁을 시작한 지 8일째인 27일, 밤 11시를 조금 넘긴 시점 의식불명에 빠져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액을 맞으며 회복하던 그는 28일 오후 의사와 가족, 당의 강권과 만류로 단식 종료를 결정했다고 29일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이 전한 상황이다.

30일 당 관계자에 따르면 황교안 대표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기까지 3개월 정도 걸릴 전망으로 단식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은 모양새다. 이번 단식으로는 한국당을 배제한 더불어민주당 등 4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려 본회의 회부 단계에 이른 여권발(發) 공수처법 등 '검찰장악법안' 논란, 연동형비례제 도입을 위한 '전례 없는 선거법 일방 개정' 논란의 존재를 여론에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포괄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철회 요구는 단식 사흘째이던 22일 청와대의 한일 지소미아 효력 유지 결정으로 사실상 관철됐다.

다만 황 대표의 이번 단식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단식을 제대로 하면 정신을 잃기에 이른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식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 기간 의식적으로 음식을 먹지 아니함'이다. 건강이 아닌 투쟁 수단으로서 단식을 하게 되면, 고통을 수반하는 것은 물론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어 흔히 의지를 표현하는 최후 수단으로 불린다. 단식투쟁은 목숨을 걸고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절박한 위치에 사회적 약자들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 정치사에서는 당대 야당 정치인들을 위주로 단식이 줄을 이어왔는데, 황 대표의 이번 '단식 중 의식불명' 사건은 단순히 단식을 경과일수 만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 대표는  20일 단식을 시작하며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를 막기 위해 저는 이 순간 국민 속으로 들어가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한다"며 "죽기를 각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YS) 서거 4주기였던 22일에는 추모사를 통해 "가장 어두운 독재 시절에도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사는' 정신, '새벽이 온다'는 정신으로 새길을 내셨다"고 해 YS의 단식투쟁을 귀감으로 삼았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지난 1983년 5월18일 광주사태 3주기를 맞아, 가택 연금 상태로 전두환 정권에 민주화 5개항을 촉구하며 같은해 6월9일까지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때의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YS). YS는 상도동 자택에서 벌인 단식투쟁 8일차에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후로도 수액을 맞는 상태에서 보름간 단식을 추가로 이어갔다. 사진은 단식투쟁 13일째이던 당해 5월30일의 YS 모습.(사진=연합뉴스)
지난 1983년 5월18일 광주사태 3주기를 맞아, 가택 연금 상태로 전두환 정권에 민주화 5개항을 촉구하며 같은해 6월9일까지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때의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YS). YS는 상도동 자택에서 벌인 단식투쟁 8일차에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후로도 수액을 맞는 상태에서 보름간 단식을 추가로 이어갔다. 사진은 단식투쟁 13일째이던 당해 5월30일의 YS 모습.(사진=연합뉴스)

실제로 YS는 지난 1983년 광주사태 3주기를 맞은 5월18일 신민당 총재직을 내려놓은 가운데 상도동 자택에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언론통제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 복직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전두환 정권에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단식 8일째인 5월25일 건강이 크게 악화돼 서울대학병원으로 강제 이송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병원에서 삼엄한 감시 아래 수액을 맞으며 단식을 이어가 총 23일이 경과한 6월8일에야 단식을 풀었다. 5개항이 바로 관철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단식은 민주화세력을 하나로 결집하는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 대표는 이같은 선례를 모범 삼아, 현직 제1야당 대표로서는 지난 2003년 열흘간 단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를 위한 특검 도입을 관철시킨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2009년 미디어법 처리에 반대하며 6일간 단식한 정세균 민주당 당시 대표에 이어 세번째로 단식투쟁을 벌였다. 참고로 YS는 생전에 최병렬 대표에게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이 확실하다"며 단식을 만류한 사례가 있다.

황 대표는 이번 단식에서 초겨울 날씨에 노상(路上)에서 추위 등 악조건이 겹친 가운데 '융통성 없이' 강행해, '정치권에서 보기 드물게' 단식 8일 만에 의식저하로 구급차에 실려가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단식 중 염분 섭취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물론 통상 단식투쟁자들이 3000cc~4000cc의 물을 마시며 무기질을 보충해온 것에 비해 '절반 미만'의 물만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단식 1~2일 차에 추운 날씨에도 청와대 야외 연좌를 하면서 체력 소모가 컸는데도 천막에 전열기도 들이지 않고 버틴 것 역시 짧은 단식 기간에 의식저하에 이른 원인이 됐다. 주변에선 "페이스 조절 않고 직진하는 황 대표의 성격"을 이유로 거론한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각당 지도자급 정치인의 단식이 줄을 이었지만 황 대표처럼 극한상황에 이른 인사들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당시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는 단식에 나섰다가 '여야 5당이 구체적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자 단식 9일째에 종료했다.

앞서 5월에는 김성태 한국당 당시 원내대표가 '제19대 대선 전후 포털 댓글 1억회 여론조작'을 벌인 드루킹 등 친문(親文)네티즌과 민주당 측의 공모 정황을 규명할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며 9일간 단식해 뜻을 이룬 바 있다. 2017년에는 조원진 당시 대한애국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다 14일 만에 끝냈다. 2016년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 퇴진을 촉구하며 단식했다가 7일 만에 건강 악화로 중단했다. 당시 이정현 대표가 국회 내 당대표실에서 외부 출입을 대부분 제한한 채 단식을 벌여 좌파진영에선 '안에서 뭘 몰래 먹는 것 아니냐'는 의혹 공세까지 펼쳤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팬카페 '젠틀재인',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등
위에서부터 아래로 2019년 11월20일~2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의 '망국정치 분쇄' 단식 1~8일차 모습(왼쪽), 2014년 8월19일~28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세월호 참사 국민단식' 1~10일차 모습.(사진출처=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팬카페 '젠틀재인',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등)

누구보다도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시절인 지난 2014년 여름, 광화문광장에서 10일간(8월19일~28일) 단식한 것과 황 대표의 단식이 대조된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고(故)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단식을 말리기 위한 이른바 '세월호 국민단식'이었는데, 김영오씨가 46일간 단식 끝에 미음을 먹기 시작하자 문재인 당시 의원은 동조단식을 끝냈다. 그는 단식기간 비교적 건강이 양호한 모습으로, 10일차엔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단식 종료를 알릴 정도였음이 언론보도와 문 대통령 팬카페 '젠틀재인' 및 관련 블로그에 게재된 사진 등을 통해 확인된다. 이때 같은 당 정청래 의원도 총 24일간 동조단식을 벌였는데, 단식농성을 20일 넘긴 시점 흡연을 하는 장면이 포착돼 의혹과 구설을 낳기도 했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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