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도 낮은 금요일 오후 예고없이 발표된 수상한 외교백서
'소중한 이웃' 지우고 남았던 '일본은 동반자'까지 삭제...한일관계 2년 연속 격하시켜
러시아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중국 관련 '사드 한한령 갑질' 빠져

사진=외교백서 캡처
사진=2019 외교백서 캡처

외교부가 지난해 국제정세 등을 반영해 29일 발간한 '2019 외교백서'에서 한일관계 관련 '일본은 동반자' '일본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우리와 가까운 이웃' 등의 표현을 삭제했다. 대신 "함께 협력해나가야 할 이웃국가"로 단순 이웃으로 격하했다. 작년 '2018 외교백서'에서 '일본은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소중한 이웃'이란 표현을 삭제한 데 이어 다시 한번 한·일 관계의 격을 한단계 더 낮춰버린 셈이다.

백서는 또 "한·일 간 교류협력에도 2018년 10월 이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한·일 양국의 견해차에 따라 양국 관계는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규정했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역대 정부는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에도 외교 백서에서 '우방국' '소중한 이웃' 같은 표현을 거의 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백서는 일본과 대조적으로 중국과의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은 2016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한령(限韓令·한류 규제)'을 가한 이후 3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풀지 않고 있다.

중국은 지난 7월 '2019년 국방백서'를 공개하며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심각하게 파괴했다"고 군사적 내정간섭까지 한 터다. 백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방중해 양국 관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측면을 부각했으나, 당시 방중조차도 우리 측 수행기자단을 중국측 인력들이 집단 폭행하는 일이 있었고 '대통령 혼밥' 사건이 빈발하는 등 외교결례 논란이 적지 않았다.

사진=2019 외교백서 캡처
사진=2019 외교백서 캡처

올해 백서에선 러시아와 겪고 있는 외교·안보 문제도 빠졌다. 러시아는 2018년 7월 군용기 여러 대를 동원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수차례 무단 진입했다. 제주도·이어도 부근 상공까지 비행하는 등 동·서·남해를 유린했다. 그런데도 백서에는 이런 문제를 반영하지 않고 "(한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실질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고 했다. 일본에 사용하지 않은 '동반자'란 표현을 러시아에는 쓴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올해 들어선 KADIZ 침범을 각각 20차례 이상 자행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괄시하고 있고, 북한 김정은 정권과는 긴밀히 접촉하는 형국이기도 하다.

사진=2019 외교백서 캡처
사진=2019 외교백서 캡처

한편 백서는 지난해 한반도 정세에 대해 "정부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남북 대화가 재개되고,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다"며 "역내 긴장 완화와 함께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되는 등 기념비적인 진전이 이뤄졌다"고 자평했다. 북한 비핵화 목적으로 시작된 미북대화 냉각과 남북 정권간 관계 경색, 북한군의 13차례에 이르는 전쟁무기 시험발사 도발과 9.19군사합의 정면위반 등 올해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된 상황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자화자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는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미국과 변화하는 한반도 안보 환경 하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이라는 공동의 목표 실현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긴밀히 소통·공조했다"며 "한·미 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등 양국 간 주요 동맹 현안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전시작전을 분리하겠다는 구상을 재확인한 셈이다.

사진=2019 외교백서 캡처
사진=2019 외교백서 캡처

외교부는 이번 외교백서를 사전 공지 없이 뉴스 주목도가 가장 떨어지는 금요일 오후에 공개했는데, 일각에선 각종 논란의 소지를 회피하려는 고려가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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