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美 펜스 부통령실·백악관 관계자 인용 보도
방한후 10일 청와대서 펜스-김여정 회담 확정까지
펜스 측 "北 부드러운 메시지 바라며 회담 매달려"
백악관 측 "北에 美 강경입장 알게 할 필요 있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한국을 찾은 미국과 북한 대표단 간 회담이 약속이 잡혔으나, 북한 측이 회담 직전 이를 취소해 불발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미국 측이 대외적으로 북한에 대한 '최대 압력' 기조를 강화하자 북한 측이 불만을 품고 회담을 결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내용을 미국 언론이 보도한 뒤 마이크 펜스 부통령실이 확인했고, 국무부도 이를 인정하면서 '막판'에 회담을 취소한 북한 정권에 유감을 표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마이크 펜스 부통령비서실, 백악관 관계자들을 인용해 평창 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던 펜스 부통령이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대표단과 지난 10일 회담을 할 계획이었으나 회담 2시간 전 북측에서 이를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한 백악관 관계자는 이 회담이 펜스 부통령 방한 2주 전부터 논의됐으며, 북측이 펜스 부통령의 방한 기간 그와 만남을 원한다는 얘기를 중앙정보국(CIA)이 듣고서 논의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이를 중재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도 닉 에이어스 부통령 비서실장 성명을 인용해 이 보도 내용을 확인했다.

사진=미국 워싱턴포스트(WP) 홈페이지 기사 캡처
사진=미국 워싱턴포스트(WP) 홈페이지 기사 캡처

WP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앞서 한국·일본 순방을 위해 5일 출국하기 전 북측의 초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북한의 회담 초청 제의는 백악관에서도 소수만 알았으며, 이에 응한다는 최종 결정은 2일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내려졌다. 

당시 회의에는 펜스 부통령을 비롯해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에이어스 부통령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도 전화로 동참했고, 짐 매티스 국방부 장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논의과정에 참여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은 북측과의 회담을 최대한의 대북 압박 정책 지속이라는 관점에서 봤다고 백악관 관계자는 전했다. 북한을 직접 대면해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하려 했다는 취지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은 우리의 정책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우리가 공개적으로 하는 말이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회담 장소와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펜스 부통령이 8일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미·북은 개막식 이튿날인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나기로 합의했다.

회담에 한국 정부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청와대는 양측의 보안 요청을 받아들여 중립적인 회담 장소(청와대)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회담에는 미국 측에서 펜스 부통령과 에이어스 비서실장,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표 인사가 참석키로 했다. 북측에서는 김여정과 김영남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회담은 만남 2시간 전 북측에서 취소 통보하면서 결국 불발됐다. 

WP는 펜스 부통령이 9일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하고,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제재 전개 등 압박 캠페인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나온 시점에 회담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펜스 부통령은 당시 평택 해군2함대 천안함 기념관에서 "비핵화는 변화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북한이 테이블 위에 비핵화를 올려놓고 핵 폐기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협상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회담 취소와 관련해 에이어스 비서실장은 "북한은 펜스 부통령으로부터 부드러운 대북 메시지를 바라며 회담에 매달렸다"며 "이를 통해 올림픽 기간 그들의 선전에 국제무대를 활용하려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북한은 펜스 부통령이 국제무대를 그들의 독재 사실이나, 대북압박을 위한 우리의 강한 동맹을 보여주는 데 활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순방 첫날부터 북한이 올림픽에서 잔혹한 이미지를 눈가림하려는 북한 정권의 열망을 꺾을 것이라고 얘기해왔다"고 부연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북한과의 면담이 성사됐더라도 긴장완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전 기착한 알래스카에서 "북한 대표단과 어떠한 회동도 요청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고 발언한 바 있다. 당시 틸러슨 장관,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까지 "지켜보자"며 같은 답변을 해 북미 간 물밑 접촉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펜스 부통령은 이 기회를 잡을 준비가 돼 있었고, 이 만남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강조할 기회로 삼으려 했으나 북한이 이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이 이런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을 유감스러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북대화 결렬의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회담 결렬이 계기가 된 듯, 미국은 최근 대북 최대압력 기조를 더욱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다. 틸러슨 장관은 18일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당근이 아닌 커다란 채찍을 쓰고 있다"고 최대압박 기조를 재확인했고, 19일에는 펜스 부통령과 맥매스터 보좌관이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최대압박을 계속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 바 있다.

한편 WP에서 '회담 중재자'로 거론한 청와대는 이날 보도 내용과 관련해 김의겸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사항이 없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도 '미국 부통령실은 확인하는데 청와대는 왜 못 해주느냐'는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질문을 받고 "당장 확인해 드리기 어려운 걸 양해해 달라"고 확답을 꺼리면서, "(공개한 의도를) 미국에 좀 더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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