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국가위기 막겠다며 무기한 단식투쟁 돌입한 황교안
이 차가운 날씨에 제1야당 대표의 단식투쟁이 지니는 의미 크다
전두환 정권의 철권통치에 구멍 낸 YS의 ‘23일 단식투쟁’ 떠올라
文정권에 맞서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투쟁을 적극 성원한다

 

권순활 펜앤드마이크 부사장 겸 편집제작본부장
권순활 펜앤드마이크 부사장 겸 편집제작본부장

1980년대 초반 한국은 정치적 암흑기였다. 197910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후의 정국 혼란을 틈타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 정권의 철권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주요 정치인들은 모두 정치활동 규제에 묶였다. 정당들은 급조된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새 권력자들이 허용한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등 투쟁성을 상실한 관제 야당들로 재편됐다. 언론은 보도통제에 꽁꽁 묶여 신문과 방송만 봐서는 세상을 제대로 읽기 어려웠다. 대학가에는 경찰이 상시 출입해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던 때였다.

전두환 정권 출범 직후인 1981년 대학에 입학한 나는 3학년까지 마치고 군복무를 위해 1984년 잠시 학교를 떠날 때까지의 그 시절의 암울한 절망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대학가를 풍미한 좌파 계열 서적을 적지 않게 읽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공산주의와 같은 급진좌파 이념은 한계가 느껴져 고뇌하는 주변인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당시 깊이 공감하던 키에르케고르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과 도저히 권력의 정당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대적 고통 때문에 군에 입대하기 직전까지도 마시면 즉사하는 메탄올을 늘 방 한 모퉁이에 두고 살았다.

세월이 흐르고 특히 언론인 생활을 통해 당시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되면서 적어도 경제면에서는 전두환 정권의 공로를 상당부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원초적인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정권에서 보내야 했던 젊은 시절 마음의 고통이 워낙 커 그 시절을 전체적으로 미화(美化)하려는 일각의 주장에는 지금도 동의하기 어렵다. 1980년대 초반 강성좌파 이념에 빠졌다가 훗날 미망에서 벗어나 자유의 투사로 거듭난 분들에 대해 젊은 시절 이념의 방황을 이유로 배척하는 몇몇 강성우파 인사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도 직접 몸으로 경험한 당시의 엄혹한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활로가 보이지 않던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권의 강권통치에 균열을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는 1983년 김영삼(YS) 전 신민당 총재가 벌인 23일간의 단식투쟁이었다. YS1970년대 박정희 정권 말엽 신민당 총재로 강경 대여(對與) 투쟁의 전면에 나서 10.26 사건 후 유력한 대권 후보로 떠올랐다가 1980년 신군부의 집권과 함께 정치활동 피규제자로 묶인 상태였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구속보다 더 고통스러운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있던 YS는 광주사태 3주년을 맞은 1983518일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그는 단식을 시작하기 16일 전인 52일 민주화 투쟁과 관련해 구속된 인사의 전원석방, 정치활동 피규제자 전면해금, 해직교수 해직근로자 제적학생의 복직 복교 복권, 언론자유 보장,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 5개 민주화 요구사항을 제시했으나 전두환 정권이 꿈쩍도 하지 않자 단식이라는 극한적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것도 뒷날 YS의 단식투쟁에 콤플렉스를 느낀 일부 정치인의 단식처럼 카메라 앞에서만 단식하는 단식 쇼와는 차원이 다른 목숨을 건 진정한 단식투쟁이었다.

서슬 퍼런 신군부 정권의 위세에 눌려 모두가 숨죽이고 있던 상황에서 YS의 단식투쟁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당시 권력의 통제를 받던 언론은 그의 단식 사실은 물론 이름도 보도하지 못하고 정국 현안식으로 모호하게 보도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전두환 정권도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YS의 생명이 위험한 상태까지 가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경찰을 동원해 그를 구급차를 태워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 이송 후에도 단식투쟁이 이어지자 정권은 가택연금을 해제하는 조치를 취했고 YS23일째인 그해 68일 지지자들의 권유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단식을 중단하면서 전면적인 민주화 투쟁을 선언했다. YS23일간의 단식투쟁은 이듬해인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과 19852.12 총선에서의 신당(신한민주당) 돌풍, 1987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보수진영 일각에서 YS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퍼붓는 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야당 시절 YS는 정말 대단한 민주화 투사였다. 또 집권 후의 종합적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급진좌파나 김일성 집단과는 거리가 멀었고 우파적 자유민주주의의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반공(反共) 정치인이었다.

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한일(韓日) 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등 3개항을 문재인 정권에 요구하면서 20일부터 무기한 장외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황 대표는 이날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에서 절체절명의 국가위기를 막기 위해 이 순간 국민 속으로 들어가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한다. 죽기를 각오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을 구하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하면서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모든 시민들께 호소한다. 문재인 정권의 망국(亡國)정치를 분쇄하려면 반드시 대통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얼마 전 <유승민까지 꽃가마 태우려는 한국당이라면 미련 없다>는 제목의 글에서 황교안 대표와 한국당의 최근 행보를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황 대표와 한국당이 지금 손을 내밀어야 하는 사람들은 지난달 '10월 자유민주항쟁' 때 서울 도심으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애국시민들이지, 유승민 김세연 류의 기회주의적이고 소위 '중도'를 표방하는 '금수저 웰빙 정치꾼'들이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이 살아있다면 엉터리 탄핵 정변 과정에서 현 야당 정치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문재인 정권에 맞서 선명하게 투쟁하는 길이 제1야당과 대한민국을 살리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황 대표의 소위 자유우파 대통합론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저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 제1야당 대표가 문재인 정권의 폭정에 맞서 길거리에서 단식이라는 극한투쟁에 나선 것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황 대표는 YS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카메라 앞에서만 단식 흉내를 내고 남들이 안 볼 때는 먹을 것 더 먹어서 "말로는 단식하고 있다는데 얼굴에 살은 더 붙었다"는 수군거림까지 나오던 과거 일부 정치인의 '쇼'와 달리 36년 전 YS 단식처럼 진정성과 결기가 느껴지는 진짜 단식일 가능성이 높다. 단식이 길어지면 건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황 대표의 단식에 대해 일부 여권(與圈) 인사들이 폄훼하는 것은 저 사람들의 평소 행동거지를 생각할 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말로는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일부 인사들이 냉소적 반응을 보이거나 평가절하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정국에서 제1야당 대표의 단식투쟁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정말 모른다는 말인가? 단식투쟁을 깎아내리는 그들은 그럼 얼마나 더 효과적인 반()문재인 정권 투쟁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심각한 국가적 위기에 놓였는데도 얄팍한 자신의 정치적 계산만 앞세우면서 야당 대표의 개인적 고통을 동반한 결단을 조롱하는 듯한 일부 인사들의 모습에는 인간적 환멸을 느낀다.

황 대표의 결연한 단식투쟁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 또 어떤 방향으로 정국에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단식 기간이 길어진다면 지금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큰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다. 1983YS의 단식투쟁이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에 균열을 낸 것처럼 2019년 황교안의 단식투쟁이 문재인 정권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자유 진실 시장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자유독립언론 펜앤드마이크의 일원으로서 이 차가운 날씨에 진행되고 있는 제1야당 대표 황교안의 단식투쟁을 적극 성원한다.

권순활 부사장 겸 편집제작본부장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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