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솔직히 나는 한국당이 그렇게 싫지 않다. 신문 매일 보는 게 귀찮아서 일주일, 열흘 치를 몰아서 보는 편인데 그나마 내게 웃음을 주는 것은 한국당 관련 기사뿐이다. 어이가 없어서 웃기도 하고 배를 잡고 웃기도 한다. 웃기려고 작심한 게 아니라 자기들은 안 웃기려고 하는데 웃기니까 더 웃기다. 그러니까 한국당이란 존재는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당이지 우파 이념이니 보수의 가치 같은 걸 추구하고 실현하는 집단이 아닌 것이다. 사실 지금 한국당 의원들도 좀 억울할 것이다. 그저 입신양명 차원에서 혹은 돈도 벌고 사회적인 성공도 거두다보니 번듯한 명함은 국회의원이 최고인 거 같아 도전했다 당선된 것뿐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좌파와 싸우라느니, 정권을 타도하라느니 이런 주문을 받으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더구나 타고난 천성이 누구와 드잡이 하는 게 싫은 타입일 수도 있는데 이런 사람에게 투사가 되라고 하는 건 참으로 잔인한 짓이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너는 왜 공부를 못하니?”다. 공부를 못해서 공부를 못할 뿐인데 그걸 가지고 시비를 걸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한국당 의원들도 비슷할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왜 안 싸우느냐 몰아세우는 건 일종의 폭력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해서 이 정당에게 혁신을 하라느니 자기희생을 하라느니 요구하는 것 역시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가혹한 주문이다. 말한 대로 한국당은 이념 정당이 아니다. 혁신에는 방향과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이념이 없는 정당이 이게 될 리가 없다. 한국당은 기득권 세력 중 그저 우파 ‘취향’이 다소 가미된 정당일 뿐이다. 그것도 자기 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면 언제든지 벗어던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이때 갖다 붙이는 핑계가 ‘중도’다). 우파와 보수가 그저 취향일 뿐인 정당에게 자기희생까지 기대하는 건 그야말로 연목구어다. 자기희생은 인간의 본능과 배치되는 개념이다. 인간의 본능은 자기 이익 우선인데 이걸 반대로 하라니 얼마나 싫고 힘들었겠는가. 강요해봤자 위선밖에 나올 것이 없다. 괴롭히지 말자. 사람이 사람에게 그가 가진 것 이상을 기대하면 안 된다.

품격이 없으면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이념이 아니라 인생과 세상에 대한 태도다. 그래서 어렵다. 이념은 공부하면 된다. 태도는 공부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제 살을 깎아야 한다. 그래야 품격이 나온다. 제 살을 깎는다고 하니까 대부분 은유로 들으시는데 직유법이다. 품격이라고 하면 너무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영화 속 한 장면으로 품격을 설명해 드리겠다. 예전에도 한번 소개했던 ‘그랜 토리노’라는 영화다(그때와는 강조하는 부분이 좀 다르다). 영화는 아무데나 침을 뱉고 사람들과 불화하는 게 일상인 노인네가 동네 백인 껄렁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양계 이민 소녀를 돕는 이야기다. 노인네는 소녀와 자기가 동등하다고 생각해서 그녀를 돕는 게 아니다. 이민자의 인권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이민자는 싫지만 다만 약하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것을 용납하지 못할 뿐이다. 보수는 그래서 태도다. 노인의 도움으로 소녀는 안전해진다. 그러나 노인은 안다. 그 안전이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의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극약처방을 한다. 마치 품 안에 총이 있는 듯 시늉을 해 기꺼이 껄렁패들의 총알을 몸으로 받는다. 껄렁패들을 죄다 감옥으로 보내기 위해, 자기가 죽고서도 소녀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아예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그렇게 진짜로 제 살을 깎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보수의 품격이다. 함부로 보수의 품격 운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고 함부로 한국당에 요구하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혼離婚이 아니라 쌍방 해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동안 한국당을 너무 못살게 굴었다. 격려하고 닦달하다보면 언젠가는 잘하는 날도 있겠지 하며 기대 고문을 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호랑이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한국 보수의 머릿속에 박힌 두 가지 신념이 있다. ‘하면 된다.’와 ‘기적’이다. 적어도 한국당과 관련해서는 그 신념과 결별할 때가 되었다.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기적은 한 번만 일어나서 기적이라는 것이다. 하필 키운 게 고양이였던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줘. 그러니까 그는 나의 신이야. 반면 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줘.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신이야.’ 한국당은 고양이였다. 그래서 누가 주인인지도 모른 채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을 집토끼니 산토끼니 불러가며 낄낄 댄 것이다 이제 한국당을 놓아주자. 싫은 것 억지로 하지 말고 원래 DNA대로 살라고 화끈하게 풀어주자. 그리고 보수는 새 출발하면 된다(고양이는 가급적 키우지 말자). 시간이 너무 없다고, 대안은 뭐냐고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자. 언제는 대한민국이 계획 세워놓고 달린 적 있었나.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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