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좌파에게 오염되지 않고 남은 유일한 이름
-'헌법'에서 자유를 빼겠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선전포고
-경제적 자유 없으면 진정한 자유도 없다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인간이 종(種)의 증식을 넘어 자아의 성숙까지 추구하게 된 것은 산업혁명을 통해 물질적 생활이 상당히 향상된 이후부터이다. 인간 성숙의 지향 내용 및 실현 방법은 개인의 자유가 선택한다. 인간의 성숙은 국가를 통해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국가는 궁극적으로 폭력을 통해 일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런저런 일, 딴에는 선량한 일조차, 적극적으로 행하는 자체가 곧 누군가의 자유를 열심히 침해함을 수반한다.

이것이 주는 함의는 개인에게 최대의 자유를 주고, 국가는 가장 외곽의 테두리에서 개인들의 상호작용의 집합 곧 시장 질서를 외적 침해와 내적 위반으로부터 지키는 일에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질서로 더 좁혀 관련시켜보면 예컨대, 국가 권력 속 국회와 대통령 사이의 권한배분 보다 국가와 개인의 권력 배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 작은 정부가 필수적임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서 개인 대 국가, 시장 대 정치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개인의 삶의 발전은 시장 속에서 지식 및 자원의 거래로 추구됨이 기본이며, 이 거래의 틀을 보호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점들을 치유하는 한정된 역할은 국가가 담당하되 그 작용 체제는 법의 지배 원리 하에서 다수의 합의로 다스리는 민주제(democracy)이어야 함이 요청된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가 목적 가치이고, 민주제는 그에 대한 수단 가치이다. 민주주의가 그 목적 가치인 자유를 누락하면 그 민주주의는 비효과성, 비효율성 차원을 넘어 아예 무의미한 것이 된다. 효과성은 목적의 달성 정도를 뜻하고, 효율성은 달성된 목적을 그에 소요된 비용으로 나눈 것인데 자유라는 목적 가치가 없으면 효과성도 효율성도 산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와 민주가 필연적 반려라 여김은 큰 오산이다. 자유의 극대화와 표의 극대화가 부부관계에 있었던 것은 우연한 사건이었거나 일시적인 시기였을 뿐이다. 정치가 과잉화함에 따라 그 운영원리인 민주제 자체를 최고 가치로 오해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콩고공화국과 콩고민주공화국,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중 공산주의 국가를 식별하는 방법은 ‘민주’가 국명에 들어 있는 나라들이다. 북한이나 중국 역시 민주주의 공화국을 표방한다.

프롤레타리아 공산혁명 이론의 정수인 트로츠키도 사람의 몸이 산소를 필요로 하듯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필요로 한다고 자백한 바 있다. 인간의 자유를 탈취하려는 어두운 세력이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숙주로 삼는 이 모순에 우리는 얼마나 깨어 있는가. 자유 가치 빠진 민주는 제어 없이 표류하는 핵미사일만큼이나 위험하다.

평화가 전쟁의 반대말이되 실제로는 핵 폭력에 눌린 강요된 평온이기도 하며, 민주는 이미 전체주의 심지어 삼대세습 일인독재가 스스로를 참칭하는 용어로도 쓰이며, 복지가 빈궁의 반대말이나 남의 재산으로 제 이득 얻겠다는 결코 행복하지 않은 소득 이전 제도를 뜻하기도 하며, 정의는 실체적 법 진실이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섬을 뜻하는 것으로 오독되고 법관이 때론 곧 권력자의 사법 관료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 없는 상태를 자유라 호도할 수 있는 용어는 아직 고안되지 못했다.

자유는 좌파에게 오염되지 않고 남은 유일한 이름이다. 그것은 좌파의 호의 때문이 아니라 자유를 거짓된 뜻으로 호도하려던 시도들이 성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 복지, 정의의 의미가 좌파에 의해 교묘히 변질되었으나 자유의 의미는 여전히 동일하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 마음에 드는 대로 행동하는 것. 이 우직함이 의미 오염을 거부한다.

이 정권이 헌법에 명시된 ‘자유’를 빼겠다는 것은 자유와 상극인 세상으로 가는 기반을 도모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 선전포고가 그들 특유의 ‘위원회’를 통해 슬그머니 나타났었음을 기억하자. 그게 좀 더 공식적이고 더 선명히 선포되었더라면 모든 반좌파 운동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선전포고 후 일어나는 공식 전쟁에서 모든 저항 수단이 정당화된다. 반좌파 대지진으로 이어질 만한 숨 가쁜 모멘트들이 결집될 수 있었다. 불길한 조짐을 간파한 여권 지도부는 착오였다며 이 선전포고를 황급히 취소했다. 무책임한 정권 폭망의 기회는 놀랄만한 천운으로 유예되었다. 자유는 좌파가 두려워하는 유일한 힘이다.

민주보다 자유가 더 소중한 근본가치임을 깨닫는데서 머물면 안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유의 내부 구조, 곧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의 관계를 바로 이해해야 한다. 이 국면은 비교적 덜 알려져 왔다. 언론의 자유처럼 민주주의 정치 질서의 토대가 되는 정신적 자유를 경제적 자유와 구분한 후, 전자는 더 철저히 보장하되 후자는 그 보장을 완화한다는 것이 미국 헌법의 소위 ‘이중기준론’이다. 이 경우 보호 정도가 낮다고 간주되는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는 입법을 위헌으로 판단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져 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또 정신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중 어디로 분류되는가에 따라 실질적 보호가 좌우되는 부당한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 헌법에서 정치적 자유를 경제적 자유보다 일률적으로 더 보호하는 우월적 자유(preferred freedom)의 근거는 전혀 없다. 오직 자유의 실질적 국면을 보아, 개인에 관련된 핵심적 자유는 사회 속 타인과의 관련성에서 의미를 갖는 자유보다 더 엄격히 보호한다. 그런 핵심적 자유로 헌법재판소도 전통적으로 잘 알려진 생명권, 신체의 자유 외에 경제적 자유인 직업선택의 자유를 인정한다.

경제적 자유의 가치는 없이는 우리가 잘 아는 정치적 자유 또한 바로 설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자. 출판 시설, 방송 기자재, 혹은 인쇄 종이 공급을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경제 체제에서는 민주주의의 보루라 부르는 대표적인 정치적 자유인 언론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언론계에서 직업을 구할 자유나 기사에 대한 재산권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민간 언론사에 대한 탄압에서도 오늘날 더 중요한 것은 소유권 및 경영권에 대한 침해, 곧 경제적 자유 제한을 통해 결국 언론 자유라는 정치적 자유의 무력화를 이루어 가는 국면이다.

5공 신군부의 언론 탄압과 정확한 대척점에서, 촛불 정권의 비호 하에 노조는 KBS, MBC를 장악했다. 비공개 군사폭력인가 혹은 공개된 인민재판식 폭력인가라는 차이점만 빼면 이 나라 언론자유 억압의 양대 기념탑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후자는 ‘공공’의 소유인 방송사를 공공이 아닌 노조라는 이기적 집단이 장악함으로써 언론 자유가 말살되는 사태이다. 그 본질은 ‘공적 재산권’을 부당하게 사유화하는, 역시 경제적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민주정치의 토대인 언론 자유를 무의미하게 만든 또 다른 예임을 읽어 내야 한다. 결국, 경제적 자유 없이는 언론 자유는 존재하기 어렵다.

대표적 경제적 자유인 재산권 보장 없는 다른 대개의 자유들 역시 공허하거나 거짓이며, 경제적 자유가 없다면 자유권의 대표적 모습으로 알아 온 신체의 자유는 굶주리는 자유인을 낳을 뿐이다.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의 보조자가 아니라 모든 자유의 토대이고 시장 경제의 근간이다. 좌파 정부가 국가를 망칠 때는 정치적 자유보다 경제적 자유의 억압에 기인한 경우가 많았음을 역사는 가르쳐준다. 안보 및 우리가 익숙해져있는 정치적 자유의 희생만큼이나, 경제적 자유 희생에 대해 우리는 크게 주목하고 이에 심각히 반발해야 함이 이 때문이다.

조선 영조임금 죽을 때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괴이한 말이 아메리카에서 나타났었다. 그 뜻도 몰랐을 당시 백성의 후손인 우리는 지금 그 화자보다 더 절박하게 이를 붙잡는 지경에 몰려있다. 자유의 가치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킬 것이로되, 그게 수호되지 못하여 자유 없는 민주체제에 사느니 혹 자유 있는 공산체제 있다면 거기로 망명함이 더 낫다.

자유 없는 민주는 참 의미에서 반(反)민주의 순화어에 불과하며, 경제적 자유 없는 자유는 무(無)자유에 대한 예약일 뿐이다. ‘검은 백마’를 믿으라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임금인상이 주도하는 성장’, ‘자유 없는 민주’ .... 지금 우리는 이런 자기 모순적 용어를 국가의 공식 가치로 스스럼없이 내거는 정권 밑에서 살고 있다.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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