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역사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
지역의 색깔과 정서, 대부분 근거 없어
진실 아닌 착각과 허상의 역사 나돌아
천년 뒤 우리는 어떤 선조로 기록될까?

김정산 작가
김정산 작가

백제 권역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이 낙화암이 있는 부여 부소산성을 찾는다. 그곳에는 백제의 마지막 흔적, 의자왕과 3천 궁녀의 전설이 있다. 부소산에 가면 늘 사람들은 묻는다. 의자왕에겐 정말 3천 궁녀가 있었나요?

글쎄, 의자왕 시대에 정말 3천 궁녀가 있었을까? 그 궁녀들이 정말 모두 의자왕의 비빈이었을까? 그리고 마지막에 진짜 3천이나 되는 궁녀가 전부 다 낙화암 벼랑에서 강물로 떨어져 꽃다운 생명을 마감했을까?

이런 부정적이고 서글픈 의문들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하는 백제 역사는 그야말로 유감천만이다.

다른 좋은 일도 많은데 왜 하필 사람 죽는 얘기만 하느냐고, 어째서 백제는 날마다 망한 얘기만 하는가?

이유는 그 얘기밖에 모르거나 다른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칼럼에서도 말했듯이 낙화암과 3천 궁녀는 유적과 이야기가 매우 잘 결부된 전형적인 역사의 완전체이기 때문에 엄청난 괴력을 지닌 채 후세로 맹렬히 전파되는 것이다.

7백 년 역사에 망할 때의 이야기밖에 없다는 게 딱하지만 그만큼 이야기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백제는 항상 망하는 국가요, 7백 년의 영화로움은 뒷전이고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계속해서 의자왕과 3천 궁녀, 처자(妻子)를 죽이고 결사 항전한 황산벌의 계백만을 읊고 있을 뿐이다.

기왕 시작한 삼국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백제 권역 유적지에서 해설하는 문화해설사들은 신라가 배신을 해서 백제가 망했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엉터리 설명이다.

물론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맺은 적도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배신해서 다른 한쪽이 망한 건 아니다. 7백 년 역사에서 삼국은 서로 상대를 바꿔가며 동맹도 맺고, 싸움도 했다. 하나가 강할 때는 나머지 둘이 손을 잡고 강한 하나를 견제하는 것이 정족지세(鼎足之勢)의 상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백제 권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삼국시대를 말할 때면 그 배경엔 자신들이 백제 또는 백제인의 후손이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 이게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헛된 착각인지 모르니까 벌어지는 일이다.

백제는 사실 서울에 있던 나라다. 7백 년 역사 가운데 5백 년간 수도는 지금의 서울이었다. 그러다 고구려 장수왕에게 쫓겨 공주로 가서 50여 년, 나머지 백 년 남짓, 멸망 때까지 부여가 수도였다. 그런데도 공주와 부여, 더 나아가 충청도와 전라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백제의 후손이라고 심하게들 착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전남이나 경남 사람은 5백 년 이상을 가야 사람으로 살았는데 그건 또 무시한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발해의 후손이라고? 남북국 시대라고? 이런 게 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무지와 착각과 억측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나라 국민은 거의 다 신라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이다. 성씨를 봐도 그렇고, 공부를 해봐도 그렇다. 1,400년 이상을 조상 대대로 공주나 부여 지역에서 붙박이로 살아온 가계가 있다면 혹시 또 모르지만 단언하거니와 그럴 리는 없다. 어리석기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저희가 고구려의 후예라고 우긴다. 신라가 한나라로 통일을 했기 때문에 고구려와 백제, 가야 유민들이 신라인과 힘을 합쳐 독립된 국가를 만들 수 있었고, 그 통일신라 구성원들이 비로소 우리 조상이 된 것이다. 신라가 그때 통일 국가를 만들지 못했다면 이후 역사를 상고하건대 어쩌면 한반도 전체가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발 역사를 제대로 좀 보고 살았으면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망했고 또 망한다. 사라지지 않는 나라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몇 년이나 갈까? 5백 년? 천년?

천년 뒤 한반도에는 어떤 나라가 있을까? 아마도 그 나라가 대한민국은 아닐 것이다. 천년 가는 나라가 쉽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 나라엔 우리 후손들이 살까? 남의 후손들이 살까?

다행스럽게도 우리 후손들이 산다면 그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어떻게 볼까?

그네들이 가르치고 배우는 교과서에 남한과 북한은 또 어떻게 묘사될까? 신라가 합쳐놓은 나라를 1,300년 만에 둘로 쪼개 살아가는 양한(兩韓) 시대 7,80년!

후세에서 바라보면 오늘이 자랑스러울까, 수치스러울까?

우리가 천년 전의 역사를 함부로 다루듯이 그들 또한 그렇게 하지 않을까?

그때 또 혹시 신채호 같은 엉터리 역사학자가 나타나서 남한은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을 괴롭힌 못된 집단으로, 북한은 동족의 갖은 압박을 견뎌낸 자주적이며 자랑스러운 국가로 미화하지나 않을까?

우리가 공부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천년 전 신라와 신라인의 통일 위업을 폄하하듯이, 그들도 우리를 모욕하며 치욕스러워한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해석일까?

천년 뒤의 역사책이 그렇다면, 북한을 일컬어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로케트를 개발하면서 당당히 맞선, 용맹스럽고 본받아 마땅한 선조라며 칭송한다면 그들의 역사 교육이 옳은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 기행을 다닌다. 우리가 열심히 찾아다니며 배우는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며 또한 미래다.

극명한 대립의 시시비비가 잠깐 혼란스럽다면 멀리, 역사의 눈으로 오늘을 바라보시라. 그럼 한결 모든 게 명확해질 테니!

김정산(펜앤투어 대표작가) penntour@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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