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시절, 외무부 장관-안기부장-국무총리 등 요직 잇달아 역임
사형 확정판결 받은 김대중 前대통령 감형, 석방되자 美정부와 협의 통해 김 前대통령 미국行 성사시키기도
공직생활 물러난 후 민정당 고문 지냈으며,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역임

21일 노환으로 별세한 고(故) 노신영 전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21일 노환으로 별세한 고(故) 노신영 전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전두환 정부에서 여러 요직을 거친 노신영 전 국무총리가 2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실향민인 노 전 총리는 서울대 법대 졸업 1년 전인 1953년 고시행정과에 합격해 1955년 외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0년 전두환 정권시절 외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국가안전기획부장, 국무총리 등 요직을 잇달아 역임했다. 노 전 총리는 고시 출신으로 처음 외무장관에 올랐고, 당시 정권이 공무원 숙정(肅正) 작업의 일환으로 외교관 69명을 해임하려는 시도를 직접 막아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 "직업 외교관들의 해임은 결정적인 국가 손실"이라고 설득했다.

노 전 총리가 안기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큰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1982년 12월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형, 석방됐다. 노 전 총리는 당시 미국 정부와 협의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미국행을 성사시켰다.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테러, 소련의 KAL기 격추 사건이 발생했고, 노 전 총리가 수습 작업을 이끌었다.

노 전 총리는 전 전 대통령에게 크게 신임을 얻어 한때 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하기도 했으나 군 출신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같은 해 5월 32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총 2년 3개월간 총리직을 수행해 이명박 정부의 김황식 국무총리(2년 4개월) 이전까지 최장수 총리 기록을 보유하기도 했다. 공직생활 동안 노 전 총리의 신조는 "내가 잘하면 나라가 잘되고, 나라가 잘되면 나도 잘된다"는 것이었다.

노 전 총리는 이후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 고문을 지냈으며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노 전 총리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표적 멘토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0년 초대 주인도 대사로 나갈 때 반기문 전 총장을 서기관으로 데려갔고 방글라데시와 수교할 때도 반 전 총장을 동행시켰다. 1985년 총리로 취임했을 당시 반 전 총장을 초의전비서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노 전 총리는 북한에서 세상을 떠난 부모를 평생 그리워하며 실향민과 탈북민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2000년 회고록을 펴내 "북녘 땅에 계셨던 부모님께 생전 들려 드리지 못한 얘기를 담아 영전에 바치는 인생 보고서"라고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유족으로는 경수(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철수(아미커스 그룹 회장)씨가 있다. 노 전 총리는 재계·언론계 등의 유력 집안에서 사위와 며느리를 얻었다. 둘째 사위는 류진 풍산 회장이다. 첫째 며느리는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의 동생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딸 정숙영 가교아트 대표다. 둘째 며느리는 고 홍진기 중앙일보 전 회장의 딸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부인 홍라희씨의 동생인 홍라영 전 삼성미술관 리움 총괄부관장이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5일 오전이다. (02)2072-2091

심민현 기자 smh41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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