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th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려
250명 작가, 3천여 작품 성황. 장르와 형태도 다양
부스마다 작가가 직접 나와 관람객과 소통, 아트페어 자리 잡아
인근 정치 집회로 주말 관객 한산 옥에 티

김정산 작가
김정산 작가

해마다 이맘때면 열리는 미술인들의 잔치, 수많은 애호가와 갤러리들이 그림을 사고파는 국내 최대 미술시장 마니프가 어언 25회째를 맞이했다. 지난 주말, 마니프(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을 찾았다.

먼저 입구 벽면엔 전시회에 참여한 화가들의 소품이 한 점씩 걸려 있다. 그 앞에서 잠시 눈길을 빼앗긴다. 풍요롭고 걸판진 잔칫상의 음식들을 조금 먼저 맛보는 기분으로 소품들을 바라본다. 올해도 대단하겠구나 싶은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1층 전시장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원로와 초대작가의 작품 위주로 전시돼 있다. 그래서일까. 1층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어느 하나 예외 없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부스를 돌다가 갑자기 마주친 황홀한 색감과 엄청난 크기의 대작 앞에서 문득 모든 감각을 놓아버리고 광속으로 캔버스에 빨려 들어간다면 이미 마니프가 펼치는 신비로운 마법에 걸려든 것이다.

2층과 3층 전시장은 중견작가와 신예의 작품이 섞여 있다. 한국화, 서양화 같은 전통 회화작품은 물론 조각과 판화, 공예, 설치 등 작품의 장르와 형태가 몹시도 다양하다.

2층을 돌다가 칠흑 바탕에 금빛으로 산맥을 그려놓은 몽유도 앞에서 잠시 정신을 잃는다. 화선지에 수묵채색, 제목이 <몽유금강>이니 필시 금강산이겠지만 본연의 금강(金剛)이거나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일 수도 있겠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말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없다. 현실에 없는 금강이라서 몽유금강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미 현실에 금강이 없음을 알아차린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다. 그러면서도 몽유에나마 금강을 금물로 화려하고 수려하게 그려 넣은 작가의 정성과 심성은 그만큼 선하고 곱다는 얘기다. 부스에 앉은 작가의 얼굴을 보니 과연 그렇다. 예술하면서 살기 참 힘들죠?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지만 목례로 대신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너무도 궁금한 철제 조각물 앞에서 다시 발걸음을 멈춘다. 속이 텅 빈 철갑옷의 사장님, 현대인의 잃어버린 꿈, 작품들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유머와 위트, 해학으로 빛난다. 재치 있고 재미있는 상상들, 작가 역시 유쾌하고 활달하다.

“석판화는 어떻게 만드나요?”

신문지를 구겨서 찍은 듯한 종이꽃 석판화 부스의 주인장에게 질문도 던져본다. 점자로 구현한 세계를 걸어놓은 화가와 평범한 일상을 모던하게 표현한 화가는 자신들의 그림처럼 똑 떨어지게 깔끔하고 예쁘다. 작품은 화가요, 화가는 작품이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엔 작품에 집중하지만 어떤 그림 앞에선 사람이 더 궁금해진다. 그래서 말을 걸고, 친밀하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림을 보는 방법이며 예술이 가진 힘이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일반인들로선 상상조차 하지 못할 생활고를 겪는다. 부유하게 떵떵거리며 사는 예술가도 있다지만 전체 예술가의 1%도 되지 않는다. 절대다수의 화가, 작가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추구하는 세계를 지키려고 현실의 고통을 온몸으로 버티며 살아간다. 노조도 없고, 쟁의도 없고, 심지어 파업조차 불가능한 예술가들, 투쟁에 익숙한 노동자들은 몇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예술가들이 느끼는 절대빈곤, 절대고독, 허허벌판 심산유곡에 홀로 버려진 듯한 낙오감과 열패감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과 그 자손들은 세세생생 예술가들이 남긴 예술품을 감상하고 향유하며 살아간다. 예술의 덕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국민이 예술가를 무조건 존중해야 할 명백한 이유다.

ⓒ 예술의전당 공식페이지

말끔히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 한 분이 청년처럼 열정적으로 전 층을 순회하며 전시회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한다. 마니프를 지금처럼 키워낸 김영석 대표라고 누군가가 귀띔한다. 낙후된 한국 그림 시장에 아트페어라는 선진 시스템을 도입해 그림 판 전체를 살려낸 미술계의 귀재, 부럽다. 만일 글 판에도 저런 분이 있었다면 제 밥벌이를 위해 정치판이나 기웃거리면서 그러잖아도 힘든 세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구차하고 후안무치한 글쟁이들이 좀 덜 나오지 않았을까.

사족 하나! 그날 부스에서 만난 화가들은 손님들을 맞을 기대로 한결같이 약간씩들 들떠 있었다. 전시회 기간에 맞는 단 한 번의 토요일, 짧게는 일 년, 길게는 평생을 준비한 화가들로선 당연한 기대와 설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화가들의 표정은 어둡게 변해갔다. 인근에서 열린 정치 집회 때문에 오히려 평일보다 손님이 더 오지 않았다. 이 사회가, 한국의 열악한 정치 환경이 예술가들에게 또다시 무례와 횡포의 펀치를 날린 것이다. 예술가가 사는 마을에선 공사나 시위를 자제하는 나라도 있다던데, 그날 그 주변에서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한 자들은 예술의 전당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관심조차 없었을 게 틀림없다.

한국의 예술가들이여, 부디 이 나라를 끝까지 견디시라! 그리고 부디 기죽지 말고 건투하시라! 어차피 빈손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연꽃이 진흙에서만 핀다면 여기만 한 진흙도 필경은 쉽지 않을 테니!

김정산(펜앤투어 대표작가) penntour@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