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정의 독점한 양 우파에 프레임 씌워 시민들은 ‘적폐’를 ‘직권남용’ 등으로 인식해
대한민국 법률상 ‘적폐죄’ 존재 않지만...적폐수사니 하면서 법관에 부정적 인상 심어
법에도 없는‘적폐’ 만들어낸 무리, 상대방을 反세력으로 규정하고 일거에 청산하려는 목적
독재자들도 선의 내세우고 대중 선동하며 상대방 척결...헌법질서를 정면으로 배척하는 행위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페이스북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좌파 진영에서 ‘적폐’ ‘농단’ 등의 극단적 용어로 우파 진영에 덮어씌우는 프레임 전략을 비판하고 나섰다. 좌파 진영이 정의와 선의를 독점하고 있는 양 자처하고 나서서, 대중을 선동하고 반대 진영을 저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민주적인 사법제도를 후퇴시키는 행태라는 것이다.

김태규 부장판사는 12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농단”과 “적폐”라는 용어의 불편함’이라는 글에서 “최근 2년간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상당수가 ‘적폐’와 ‘농단’을 들지 않을까 싶다”면서 “이 용어들이 불편한 것은 그 대상이 척결이나 처단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 법률가로서 민감해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부장판사는 좌파 진영이 법과 제도를 이용해 적폐청산이니 농단의 척결이니 하는 그들만의 주장을 현실화하려 하지만, 대한민국 형법과 수많은 형사특별법에는 ‘적폐죄’나 ‘농단죄’가 없음을 적시했다. 결국 법전에도 적폐죄나 농단죄로 특정인을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이제 일반 시민들의 머릿속에 적폐죄나 농단죄는 곧 직권남용죄, 강요죄, 뇌물수수죄 등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면서, 이 같은 인식의 변화 혹은 왜곡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불과 2여 년 전보다 더 이전에는 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 적폐라 부르지 않고, 농단이라고 부르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했다.

김 부장판사는 “우리는 공소제기 단계에서도 법관의 섣부른 예단을 방지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공소장을 기재하도록 정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이제는 수사단계에서 이미 적폐 수사니 농단 수사니 하면서 사건 전체에 부정적인 인상을 잔뜩 덧붙여서 사법절차를 진행한다. 형사사법을 운용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용어가 제재나 비판 없이 그대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적폐’ ‘농단’과 같은 단어가 법관의 선입견을 조장하고 판결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김 부장판사는 이 같은 용어가 사법제도 안에서 활용되는 것은 우파 진영 인사들에게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워 더 엄하고 혹독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바라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른바 적폐나 농단을 저지른 모두를 뭉뚱그려서 반(反)세력으로 규정, 그들을 효율적으로 일거에 청산하려는 프레임 전략을 진행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김 부장판사는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저주의 세력으로 단죄되고 척결되어야 할 대상인 것처럼 취급되는 것은, 다양한 사고의 자유를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견디기 어려운 대우”라며 “법에도 없는 비난이 가득 섞인 용어로 묶어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고, 또 그러한 개념의 범주 내에 드는 사람 모두를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우리 헌법질서가 예상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울러 김 부장판사는 이처럼 적폐나 농단이란 단어를 만들어 사회의 대립성, 적대성을 조장하는 무리를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독재 세력에 비유했다.

김 부장판사는 “잔혹한 독재자들도 그들 나름의 선의를 내세우면서 대중을 선동하고, 대중도 거기에 호응하면서, 결국 그들은 스스로 인간답기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정의는 독점되는 것이 아니다. 척결하고 청산해서 남은 그들만의 세상이 과연 정의로운 사회일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아래는 김태규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全文)>

《“농단”과 “적폐”라는 용어의 불편함...》

최근 2여 년 내에 우리 사회 내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상당수 사람이 ‘적폐’와 ‘농단’이라는 단어를 들지 않을까 싶다.

적폐라는 것의 사전적 의미는 한자 그대로 ‘쌓인 폐단’일 것이고, 농단은 대강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 한다.’는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이 두 단어는 다른 단어와 합쳐져 새로운 조어가 되기도 하는데 그 형태도 다양하다. 국정농단, 사법농단, 검찰농단, 헌정농단, 법치농단, 사법적폐, 검찰적폐, 언론적폐, 친일적폐, 적폐수사, 적폐청산, 적폐세력 등등이 그러한 예이다.

적폐나 농단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더해서, 그것을 바로잡는 방법과 관련해서도 ‘청산’이라는 날카롭고 무자비한 용어가 사용된다. 가끔 “적폐세력을 청산하자!”라는 말을 들으면, “반동분자들을 처단하자!”는 말로, “(무슨) 농단세력을 척결하자!”는 말을 들으면 “반혁명분자를 척결하자!”라고 말로 들리는 듯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물론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든 부정적인 말이야 있게 마련이어서, 그러한 말이 자주 쓰이는 자체로 반드시 과민반응을 할 필요는 없겠다. 오래된 형태로, 지역을 이유로 ‘경상도 보리문둥이’, ‘멍청도’, ‘서울 뺀질이’ 등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근자에 사용되는 예로 ‘된장녀’니 ‘한남충’이니 하는 말도 사용된다. 더 심한 용례도 많이 있지만 글의 거칠기를 조절하는 차원에서 이 정도에 그친다. 이러한 용어들은 서로를 비난할 때 사용되거나, 때로는 농담의 강도를 높일 때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의 주체를 처단하거나 척결하여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보리문둥이를 처단하자!”는 말을 들어보지는 못했고, “한남충을 척결해야 한다!”는 말도 잘 들어보지 못했다.

적폐나 농단이라는 용어들이 불편한 것은 그 주체가 척결이나 처단의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 법률가로서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척결이나 처단의 방법으로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은 법의 영역 밖에서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과 법의 영역 내에서 형사사법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법의 영역을 벗어나 사용할 수 있는 물리력으로 떠오르는 방법은 굉장히 불편한 장면들인데, … 글쎄, 죽창을 드는 것, 문화혁명처럼 광장에서 비난하고 쳐 죽이는 것, 킬링필드와 같은 무자비한 살인극, 히틀러 돌격대의 몽둥이질 등등 … 그 어느 것도 정상일 리 없고, 편할 리 없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도 가끔은 합법을 가장하기도 한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법과 제도를 이용하는 방법인데, 아마 적폐청산이니 무슨 농단의 척결이니 하는 것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 방법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적폐와 농단에 대한 논의가 법제도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괜찮다고 볼 수 있겠나.

현재 문명국가의 사법제도는 우리 인간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오류와 실수를 저지른 것들을 보완하고 수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때로는 불편해 보이고 때로는 아무 실익도 없어 보이는 수많은 법적 장치들을 복잡하고 정교하게 엮어 놓은 것은 법조인들이 자신들의 지적 향유나 누리자고 만든 것이 아니다.

지금의 적폐나 농단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이렇게 정교하게 정비된 법제도 안에 제대로 수용되고 있다는 주장은 쉽게 수긍하기가 어렵다. 일반 대중에게도 이제는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나 개인책임의 원칙 등의 간단한 원칙만 고려해 보아도,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법제도 안에서 그리 잘 수용되지 않는다.

‘적폐죄’나 ‘농단죄’라는 것이 없다. 대한민국 형법과 수많은 형사특별법을 모두 찾아보아도 ‘적폐죄’나 ‘농단죄’라는 것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형법전에서 죄로 정해지지 않으면 그것은 처벌할 수가 없다. 죄형법정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면 사람을 살해하거나 재물을 절취하여도 법률에서 그러한 범죄를 처벌한다고 규정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법전에도 없는 적폐죄나 농단죄로 처벌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러한 적폐죄나 농단죄가 법전에 없다는 것은 이제 국민 모두에게 상식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 적폐죄나 농단죄가 직권남용죄, 강요죄, 뇌물수수죄 등등으로 처벌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직권남용죄, 강요죄, 뇌물수수죄 등은 모두 적폐죄 또는 농단죄의 큰 범위 안에 포섭되는 범죄군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직권남용죄를 짓는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은 모두 적폐세력인가라는 의문, 불과 2여 년 전보다 더 이전에는 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 적폐라 부르지 않고, 농단이라고 부르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사법질서가 엄정하고, 죄형법정주의가 잘 지켜지는 나라에서 굳이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와 저주까지 담긴 듯한 용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가 없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공소장일본주의라는 것을 살펴보면, 이 원칙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공소장에 판사에게 예단을 줄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게 하고, 공소장에 적는 내용도 범죄의 구성요건이 되는 사실 외에 적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공소제기 단계에서도 법관의 섣부른 예단을 방지하기 위하여 객관적으로 공소장을 기재하도록 정하고 있는 나라에서, 그 전 수사단계에서 이미 적폐 수사니 (무슨) 농단 수사니 하면서 사건 전체에 부정적인 인상을 잔뜩 덧붙여서 사법절차를 진행한다. 형사사법을 운용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용어가 아무런 제재나 비판 없이 그대로 사용되는 것이다.

혹자는 또 이럴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 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죄명이 많으니 그냥 ‘적폐수사’ 한마디로 정리하면 편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근데 “아무개에 대한 직권남용 등 수사”라고 하는 것이 “아무개에 대한 사법농단 수사”이라고 하는 것보다 그리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의심한다. 적폐나 농단이라는 용어는 굳이 현대 문명국가의 사법제도 안에서 통용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고, 법관에게도 부정적인 선입견만 심어주는 용어이다. 그런데도 마치 주문이라도 걸어놓은 듯한 이 용어가 많이 사용되는 것은 사법제도가 격하게 운용되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나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 속에는 통상적으로 처리되는 사법제도 내에서의 처벌보다 이러한 주술이 걸린 사건은 더 엄하고 혹독하게 처벌되기를 바라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복잡하고 엄격한 형사사법 절차의 방패를 많이 내려주길 바라는 것이다. 적폐들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영장의 발부도 좀 더 쉽게 되었으면 하고, 피의자나 피고인의 신병이 구속되는 기준도 좀 더 낮아졌으면 하며, 그러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는 재판에서도 좀 더 강한 처벌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미움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던 자신의 감정이 더 많이 해소되고,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가 더 많이 구현되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굳어진 감정에 대한 갈증을 채워가다 보면 욕심의 크기는 커지게 마련이다. 적폐라 불리는 특정인 하나로 만족하기 어렵다. 자기 생각에 거슬리는 무리를 일거에 청산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적폐나 농단을 저지른 모두를 뭉뚱그려서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효율적으로 한꺼번에 처리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적폐가 된 그자 하나뿐만 아니라 그를 변호하거나 동정하거나 일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모두 묶어 그냥 하나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 세력 전체를 처벌할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부정적이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세력으로 단죄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란죄나 범죄단체조직죄 등과 같이, 단체로 이루어지는 범죄행위에 가담한 개인을 처벌하는 범죄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그 집단이나 세력 자체를 처벌의 대상으로 포착하지는 않고, 참여한 개인의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저주의 세력으로 단죄되고 척결되어야 할 대상인 것처럼 취급되는 것은, 다양한 사고의 자유를 인정하는 자유민주시민들의 공동체에서 참 견디기 어려운 대우이다. 사회적 연좌제가 만연한 듯해서 그리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나는 자유민주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근대 문명 사법제도의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 개인의 행위가 법률에 비추어 범죄로 규정되고 합당한 처벌이 정해져 있다면, 그 한 개인에 대한 처벌을 통해 사회의 잘못된 어느 한 부분을 정상으로 돌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를 법에도 없는 비난이 가득 섞인 용어로 묶어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고, 또 그러한 개념의 범주 내에 드는 사람 모두를 포섭해서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우리 헌법질서가 예상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적폐를 청산해서 사회를 정의롭게 하고자 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공격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온갖 비인간적인 행위들이 자행될 때 그 선두에 선 자들도 그들 나름의 정의를 내세우지 않은 자가 없었다. 잔혹한 독재자들도 그들 나름의 선의를 내세우면서 대중을 선동하고, 대중도 거기에 호응하면서, 결국 그들은 스스로 인간답기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의는 독점되는 것이 아니다. 척결하고 청산해서 남은 그들만의 세상이 과연 정의로운 사회일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폐’나 ‘농단’, 2여 년 동안 참 많이도 들었던 용어다. 이제 이 저주를 가득 담은 용어를 우리 사회에서 조금씩 걷어 낼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자유롭고 활기가 넘쳐야 할 우리 공동체의 대기권 안에 적폐나 농단이라는 어두운 기운이 가득 찬 것이 반갑지 않다. 또 우리 후대에 전해 주고 싶지도 않다. 본래의 법과 제도로 회귀하고, 그러한 참담한 용어를 앞에 내세우며 미워하는 일은 그만할 때도 되었다.

이제는 “적폐 판사”라는 말이 나를 부르는 애칭으로까지 들려 무덤덤한 마음인데, 굳이 장문의 글을 쓴 것은 이러한 어두운 용어가 여전히 만연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 조금이라도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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