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대북제재 완화-체제보장’ 요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 주목
전문가들 “文, 촉진자 역할 기대하지만 사실상 할 수 있는 일 없다”
트럼프, 北에 듣기 좋은 말 이어가면서도 “미국은 지난 50년간 북한에 이용만 당했다” 직격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두손을 맞잡고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두손을 맞잡고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오전(현지시간 23일 오후) 뉴욕에서 만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두 정상의 9번째 만남이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깜짝 회동’을 했던 서울 정상회담 이후로는 약 석 달 만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비핵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지난 19일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협력 방안을 협의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 노릇을 할지, 북한이 원하는 대북제재 완화와 체제보장에 트럼프 대통령이 화답할지,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양보'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이 밖에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GSOMIA) 파기 결정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정상회담 의제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을 위해 '방위금' 협상을 미끼를 사용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文대통령, ‘촉진자’ 역할 기대하지만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은 全無’

청와대에서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 대통령이 또다시 미북 협상에서 적극적인 ‘촉진자’ 역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이미 오래 전에 미북 양측으로부터 신뢰를 잃었으며 북한이 원하는 대북제재 해제와 관련해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포드대학 연구원은 대북제재 완화와 관련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현 상태에서 전무(全無)하다고 밝혔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금강산 관광 또는 개성공단 재개는 북한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북한 스스로 말했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며 “북한이 원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의 주요 제재들이 해제되는 것이지만 한국은 북한이 원하는 것을 전달할 수 없으며 이는 오직 미국만이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도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역할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매닝 선임연구원은 VOA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문재인 대통령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며 “김정은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생각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앞서 미국과 북한의 첫 만남을 성사시켰지만 미북 정상간 만남이 이어진 현 상황에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불필요해졌다”며 “특히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의 일환인 평화협정 체결은 비핵화 협상이 진행된 뒤 4자 회담(미국, 한국, 북한, 중국)을 통해 논의할 수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 트럼프 대통령, 북한의 ‘새로운 셈법’ 요구에 화답할까?

북한이 요구하는 주요 유엔 대북제재의 해제 또는 완화 조치는 오직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의 뉴욕 방문을 수행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2일 뉴욕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이야기하고 있는 안전보장 문제나 제재해제 문제 등 모든 것에 열린 자세로 협상에 임한다는 것이 미국 측의 기본 입장”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북한으로서도 미국에 기대를 걸만한 징후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해임했다. 볼튼 보좌관은 대북 매파로 북한의 정권 교체와 북한 비핵화 ‘빅딜’을 주장해왔다. 특히 그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을 의미하는 리비아식 비핵화를 주장해 북한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북한의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의 중단과 생화학 무기 및 탄도미사일의 완전 해체 즉 ‘빅딜’을 제시하도록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튼 보좌관을 해임한 다음 날인 11일 “볼튼 전 보좌관이 김정은과 관련해 ‘리비아식 모델’을 언급하는 등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북한 문제를 둘러싼 이견(異見)이 그의 해임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었음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달콤한 발언들을 이어가고 있다. 우선 그는 북한의 최근 잇따른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김정은과 내가 약속한 것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이며 김정은은 약속을 지키고 있다’며 면죄부를 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실험한 것은 핵무기가 아니며 단거리 미사일 실험은 모두가 하는 일상적인 미사일 실험에 불과하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북한과의 외교적 관여를 통해 미군 유해가 본국으로 송환됐고 인질들이 돌아왔다며 대북 외교성과를 자신의 치적으로 자랑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자신의 외교정책을 비판한 볼튼 전 보좌관을 거듭 비판하면서 ‘어쩌면 새로운 방식이 매우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새로운 방식’은 북한이 그동안 요구해온 단계적 비핵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지난 3년 동안 이 나라(미국)에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은 내가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은 오랫동안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 일부 단거리 미사일들을 발사하긴 했지만 이는 모든 다른 나라들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곧이어 “미국은 지난 50년간 북한에 이용만 당하고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덧붙였다.

내년 11월 재선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외교적 성과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에서 임기 2년 6개월이 넘도록 특별한 성과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판문점을 방문해 군사분계선을 넘는 ‘리얼리티 쇼’를 연출하며 세계와 미국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은 바 있다. 그만큼 그는 북한문제에 있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힘주자 쪼르르 달려나가는 북한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을 겨냥해 ‘바보’ ‘똥’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 등의 막말을 해대며 조롱하는 북한이지만 미국이 압박 수위를 약간 높이자 금세 유순한 반응을 보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8일(현지시간) 미북 협상에 조속히 복귀할 것은 촉구한지 불과 하루 만에 미국과의 대화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지 않거나 트럼프 대통령과 3번 만난 합의한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 미사일 시험을 실시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9일)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9월 하순경 미국측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미국에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들고 나올 것을 요구했다.

이후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지난 16일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체제 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북한이 원하는 ‘새로운 셈법’ ‘새로운 대안’이 김씨 일가의 안전 보장과 유엔 대북제재 완화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18일(현지시간) ‘어쩌면 (북한문제 해결에) 새로운 방식이 매우 좋을 수 있다’고 응답했다.

●또다시 한국 안보만 희생양 되나?

작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싱가포르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에 들어 3대 한미연합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Key Resolve), 독수리 훈련(Foal Eagle),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Ulchi Freedom Guardian)이 모두 종료됐다. 키 리졸브 연습은 ‘19-1동맹’으로 대체됐고, 기간도 기존의 절반으로 줄었다. 독수리 훈련은 이름을 아예 없애고 대대급 이하 단위에서만 실시한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을 대신해 정부 연습인 을지연습과 한국군 단독 지휘소 훈련인 태극연습이 통합된 ‘을지태극연습’이 실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25일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기자회견에 앞서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한미연합훈련은 ‘완전히 돈 낭비’이며 ‘필요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그는 “김정은이 워게임(war games)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나 역시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20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시작된 상황에서 한미가 만족할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주한미군 감축이나 완전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 의회조사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18년 이전의 두 배에 해당하는 비용, 즉 인건비를 제외한 총 주한미군 주둔비의 100%를 한국이 지불하기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주둔비용의 100%에 50~75%의 프리미엄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미국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이 경우 한국이 지불해야 하는 방위비 분담금은 3.116조~4.861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 완화 등을 위해 방위금 협상에서 상당한 비용을 미국측에 지불할 것으로 예측했다. 요컨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수석 대변인'은 있어도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을 챙기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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