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으로 '양파 조국' 때문에 한국사회의 민낯 모두가 드러나
"자유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주의자"라는 희대의 궤변...대한민국을 위한 피아 구분 확연해져
만신창이되는데도 조국 앞세운 文대통령...與圈 전체가 조국이란 인물 엄호
탄핵정변 때 그들이 외친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거짓...그들의 실체 드러났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1997년 11월 16일 일요일 오후 3시 30분 김포공항. 비행기가 도착하자 영접 나온 재경원 관리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연결통로 끝까지 나가 초로(初老)의 신사를 맞이했다. IMF 캉드쉬(Camdessus) 총재였다. 억측이 무성했던 IMF 구제금융이 우리나라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1960년대 이래 일구어 낸 ‘성장신화’가 조용히 나락(奈落)의 늪으로 추락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라는 외부충격 없이 과연 관치경제의 관행과 타성을 자력으로 불식시킬 수 있었겠는가를 솔직하게 자문해 봐야 한다. 관치경제의 문제점들이 간단없이 지적되었지만 이를 불식시킬 만큼의 고통, 저항, 갈등을 감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늘 개혁은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말았다. 내부 모순이 임계점에 부딪쳐 폭발한 것이 IMF 외환위기였다. IMF 외환위기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불행의 얼굴을 한 축복”(IMF crises in the disguise of blessing) 이었다. IMF외환위기로 인해 우리경제의 취약점을 직시할 수 있었다. 역사는 반복한다.

조국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법무부 장관 후보로 내정되기 전까지 국민들은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민정수석을 지냈지만 민정수석으로서의 그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대통령은 조국 장관을 내정했다. 그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으로 민정수석이 공직 경력의 전부였다. 그동안 법무장관은 법조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 중에서 천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검찰은 상명하복(上命下服) 조직이기 때문에 ‘고시 출신’ 법무장관은 자연스런 인사 관행이었다. 전문 경제관료 출신이 경제부총리를 맡아 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따라서 그의 발탁은 파격적이었다.

역설적으로 조국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내정되지 않았으면 지금의 조국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수면 아래에서 가려져 있었을 것이다.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에 내정 되면서 가혹한 검증이 시작되었다. 그의 민정수석부터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이르는 결코 길다고 볼 수 없는 2년여의 정치 여정에서 보여진 그의 행태는 말 그대로 ‘양파(onion) 조국’ 그 자체였다. ‘비리백화점, 편법종합세트’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조국 장관은 별세계에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은 채 특혜를 누려왔고 반칙을 저질렀다. 그는 특권의식에 깊이 젖어있었다. 그에게 좌파·우파의 잣대를 대는 것은 사치였다. 그는 비대칭적 정보 상황 하에서 유리한 것을 모두 취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정상 대 비정상, 반칙 대 공정’의 잣대였다.

O 전향을 거부한 자를 법무장관에 임명

조국 장관은 법무부장관 후보 청문회에서 과거 자신의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활동에 대해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고 했다. 그는 ‘전향’을 단호히 거부했다. 전향이란 단어 자체에 ‘낙인효과’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왜 전향이 스티그마(stigma)인가. 그렇다면 ‘한번 결정한 것은 무엇이든 옳다’는 말이 된다. 우리 사회는 연옥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바꾼 사람에 대해 낙인을 찍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교정능력이 없는 사회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사노맹 활동 당시 2심 판결문을 보면 사노맹 강령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는 “사노맹 활동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전향한 것 아닌 가. 헌법을 존중한다면서 전향하지 않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향을 거부했기 때문에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그는 급기야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은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며, 이는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자칭 자유주의자면서 사회주의라는 사람을 공직에 더욱이 법무부장관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 법무장권의 역할은 체제수호의 문지기(gate keeper)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리어 “헌법의 틀 안에서 사회주의 정책이 필요하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경제민주화와 토지공개념 등이 이론적으로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 부분 ‘사회주의 요소’를 적의(適宜) 반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사회주의 정책’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견제와 균형, 형평제고, 누진세제가 사회주의 정책일 수는 없다. 그리고 경제민주화와 토지공개념은 보조 개념일뿐더러 그 자체가 성공적인 정책이 아니다.

때에 따라 사회적으로 이념과 가치 측면에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때의 세력 균형은 자유주의, 반(反)자유주의 간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지, 조국처럼 한 사람이 자유주의자면서 동시에 사회주의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동일한 평면에서 양립할 수 없다. 사적소유를 인정하고 경제자유를 허용하는 자유주의와 사적 소유를 부정하고 국가의 간섭과 설계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주의에는 그 어떤 공통분모도 없다. 그리고 ‘제3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해 건국된 대한민국에 ‘스스로 자유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주의자’라고 천명한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문대통령의 조국 장관 임명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이념과 가치가 무엇이며 그리고 어떤 세력과 싸워야 하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지 않았으면 피아 구분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불행의 얼굴을 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O 조국 장관의 반격: 1호 지시사항

조국은 9월 9일 법무장관에 임명된 후 전광석화 같이 행동했다. 취임 당일 저녁 첫 간부회의를 열어 검찰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검찰개혁 추진 지원단’을 결정했다. 조국 장관 제1호 지시사항이 ‘추진지원단 결성’인 것이다. 조 장관은 취임 다음날 10일 인사를 단행했다. 지원단 단장에 황희석 법무부 인권국장을 임명하고, 이종근 인천지검 2차장검사를 법무부에 파견해 검찰개혁추진 지원단에 합류시켰다. 황 단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 몸 담았던 인물이다.

지원단의 임무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한 국회 입법 활동을 지원하고 검찰 개혁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조국 장관은 입성한 직후 윤석렬 검찰 총장과 샅바싸움을 벌인다. 조국 장관과 윤총장 간에 대리전이 벌어진 것이다. 법무부 차관과 검찰국장에 의해 ‘윤석렬 총장을 뺀 수사팀’이 제안되었다. 일이 커질 조짐이 보이자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안’한 것으로 수습된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윤석렬 진영을 흔들어보겠다는 시도로 읽힌다. 윤석렬은 ‘자신은 검찰주의자가 아니라 헌법주의자이며’, 헌법정신에 따라 공정하고 균형있게 수사하며 개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조 장관은 11일에 검찰의 직접 수사 축소 검토 등을 지시했다. 제2호 지시다.

9월 11일 조국 장관은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청년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정의 사다리, 공정 사다리, 희망 사다리”를 소재로 퍼퍼먼스를 진행 했다. 하지만 공정 사다리, 정의 사다리는 너무나 생뚱맞다. 자신 가족에 대한 젊은이들의 싸늘한 시선을 생각하면 그 같은 퍼포먼스는 오히려 역효과다.

조 장관은 16일 제3호 지시를 내린다. ‘검찰 조직 문화 및 근무 평가제도 개선을 위해’ 검사와 공식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검사와의 대화도 급작스럽다. 도대체 무슨 대화인가. 검찰개혁 과제에 대한 의견 교환을 위한 대화라면 서두를 것이 아니다. 자신의 구상을 검사에게 쏟아내기 위한 대화라면 안 하니만 못하다. 검사와의 대화가 그리 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O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장관 품기

대통령은 2019. 9.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끝내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 마다 스스로를 ‘원칙주의자’로 여겼다. “여론은 분분했지만 조국 후보자의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혹만으로 임명을 하지 않으면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 그의 변(辨)이다.

하지만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명한다”라는 변(辨)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과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는 것은 천지차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곧 혐의가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국 장관이 청문회에서 답변한 것 중에는 거짓으로 밝혀진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예컨대 고려대 입시에 제1 저자 논문을 전형자료로 내지 않았다는 조국 장관의 진술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청문회장에서 가족 펀드는 블라인드 펀드이기 때문에 어디에 얼마를 투자했는지 전혀 모른다는 진술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해외에서 머물다 지난 14일 귀국한 조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의 체포 영장에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를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조국 펀드'를 운용하는 코링크PE의 실질적 대표로 활동한 인물이다. 검찰은 조씨가 조 장관과 아내 정씨에게 펀드 운용과 관련된 정보를 주고 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조국 장관에게는 치명적인 비수가 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혹은 얼마든지 진실이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꼬리 자르듯 조국 후보자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신창이가 된 그를 그렇게 까지 지키려한 이유가 무엇일 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를 장관에 임명하지 않으면 레임덕(lame duck)이 가속화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여 밖에 되지 않았다. 반환점도 돌지 않았는데 무슨 레임덕인가. 설득력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그를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검찰개혁이 무엇이기에 전임자 박상기 법무장관은 안 되고 조국 장관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개혁은 시스템에 의존해야지 사람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윤석렬 검찰총장이 대중의 공감을 받는 이유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직업관도 일조(一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고집은 ‘사람에 의지한다‘는 것을 대놓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 스스로 리더십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말하는 검찰개혁은 ’공수처 신설‘과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검찰개혁‘이 구두선(口頭禪)이어서는 안 된다. 표방하는 명분과 달리 ’검찰장악을 통한 친정체제 구축’이 그 목적이라면 이는 검찰개혁일 수 없다. 국민은 검찰이 '권력의 사냥개'에서 '국민의 충견(忠犬)'으로 변할 때, 비로소 개혁으로 여긴다.

검찰개혁의 명분을 인정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검찰개혁은 “대한민국에 좋은 것인가 아니면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장관에 좋은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전자(前者)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보다 심도 있는 국민적 설득이 필요하다.

O 에필로그

왜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조국 장관의 임명을 강행했을까. 인사권자의 인사권 행사는 통치권으로 성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위기는 ‘그가 오만한 대통령’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좀 시끄럽겠지만 찻잔 속의 태풍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증거를 찾아내더라도 주요언론이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으면 묻힐 것으로 생각했다면,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언론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조국 임명을 둘러싼 여권인사의 엄호성 발언은 가히 눈물겹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검찰의 조국 수사는 정치하겠다고 덤비는 것”이라고 했고,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가장 나쁜 검찰의 적폐가 다시 나타났다”고 했고, 박상기 전(前) 법무장관은 “검찰, 조국 관련 압수수사 사전보고 했어야”라고 했다. 유시민은 “동양대 총장에 취재차 전화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조국 임명을 위한 올 코트 프레싱(all court pressing)과 다를 바 없다. 그럴수록 조국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민심은 이반될 수밖에 없다.

과거 왕조 시대에 역린(逆鱗)은 군주의 뜻을 어긴 것이다. 민주사회에서의 역린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지난 탄핵정변 때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했다. 그런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뜻을 거스른 것이다.

습관화 되다시피한 조국장관의 언행 불일치는 많은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리고 조국장관은 2년 전 민정수석에 임명되자마자 ’가족펀드‘에 대한 구상을 실제행동으로 옮겼다. 그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권력의 사유화’를 꾀한 것이다. 그런 그를 보호하는 것은 역린이 아닐 수 없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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