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리용호 외무상, 유엔총회 불참...미국과 만남 의도적으로 피해
최선희 “미국과 대화에 대한 기대 점점 사라져”
폼페이오 “북한은 불량국가...신앙인-정치범, 당국에 의해 강제실종”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종료되자 북한은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아 또다시 실무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도 이달 하순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하면서 미국과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시간을 끌고 있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한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당시 미북 정상은 2~3주 내 북핵 비핵화 실무협상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은은 한미연합군사훈련 등을 문제 삼으며 미국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지난 7~8월 동안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핑계로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린 횟수는 무려 7차례나 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미훈련이 끝나면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김정은은 훈련이 종료된 지난 8월 20일 이후에도 함경북도 선덕일대에서 ‘신형 초대형 방사포’ 2발을 쏘아 올렸다.

김정은의 ‘입’으로 불리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달 31일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며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선희는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북한을 ‘불량국가’로 지칭한 것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인권 문제에 대해 강경 발언을 내놓자 발끈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7일 미국재향군인회 주최 행사에서 “북한의 불량 행동(rogue behavior)이 간과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선희는 “비이성적인 발언”이라며 “이번 발언은 도를 넘었으며 예정돼 있는 조미 실무협상 개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반발했다.

또한 폼페이오 장관은 30일 유엔이 정한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에서 신앙인과 정치범들이 당국에 의해 강제실종되고 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독재정권은 권위에 도전하거나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을 침묵시키거나 압제하는 수단으로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언론인들, 정치적 반대파들을 체포, 구금하거나 살해해 생사나 행방을 알 수 없도록 만든다”며 “강제실종과 같은 무도한 행위를 이를 이용하는 정권은 허약하고 취약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강제실종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와 그 같은 범죄를 자행한 자들에 대한 책임을 추궁을 촉구하면서 모든 나라들에 불법적인 강제실종의 관행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최 부상의 발언에 대해 “북한의 카운터 파트로부터 답을 듣는 대로 협상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최 부상의 이날 발언은 앞서 미국이 올 들어 4번째 대북제재를 단행한 것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가능성도 높다.

최 부상의 담화가 발표되기 하루 전인 지난 30일(현지시간) 미 재무부는 올 들어 4번째 독자 대북제재를 단행했다. 북한과의 불법 선박 간 환적을 통해 북한에 정제유를 넘겨준 대만인 2명과 선사 3곳을 제재 명단에 올린 것이다.

대만인 황왕컨과 그의 부인 천메이샹 등 2명, 주이팡 해운과 주이쭝 선박관리 등 대만 업체 2곳, 주이청 해운 등 홍콩 업체 1곳이다. 이들은 적어도 한 차례 이상 북한과의 불법 선박 간 환적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재무부는 “이번 조치는 유엔 대북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북한의 지속적인 불법 선박 간 환적 실태를 부각하는 것”이라며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에 대한 미국 정부의 헌신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이달 하순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리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의 고위급 회담을 무산될 전망이다. 앞서 리 외무상은 지난달 폼페이오 장관과 조우할 수 있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도 불참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는 관측이다. 리 외무상은 지난달 23일에는 폼페이오 장관을 향해 ‘미국 외교의 독초’라며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실무협상을 재개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 북한이 실무협상이 아닌 미북 정상회담을 통한 해법을 찾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30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김정은은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통해 일종의 마법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가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고, 실무 협상보다는 정상회담에 훨씬 더 큰 의지가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언제나 대화 회피를 위한 변명거리를 찾아낸다”며 “계속해서 실무협상을 회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현 시점에서 질문해야 할 것은 북한이 실무협상에 진지한지 여부”라며 “김정은은 실무협상에 어떠한 진지함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한미군사훈련 등을 문제 삼은 것은 실무협상 회피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며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서만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금처럼 실무협상을 피하는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북한이 실무협상에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의 입장에서는 현 상황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중단된 사실과 고체연료를 사용한 (북한의) 미사일, 즉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만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와일더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4차 정상회담을 선뜻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와일더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난)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마주 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과거에도 긴장을 높인 뒤에 원하는 것을 얻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어떤 것도 제공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미국은 김정은에 대한 끊임없는 압박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역내 정치적 여건 속에서도 동맹을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