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대한민국 망한다'는 국민의 우려에도 존재감 없는 야당
친박·비박 도토리키재기, '내부총질' 그만둘때
웰빙-기회주의 체질 버리고 자유민주 지키는 '좌파정권과 싸우는 정당'으로 변신하라

한기호 PenN 기자
한기호 PenN 기자

정의조차 불분명한 '국정농단'이라는 거창한 프레임이 여론을 뒤덮고, 마치 '국민스포츠'를 하듯 현직 대통령에 대해 정치권 법조계 언론이 온갖 입방아를 찧고 집단린치를 가해 내쫓던 탄핵 사태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탄핵 직후 대안을 자처한 거대세력은 급부상해 정권을 거머쥐었고, 그 지지자들은 환호에 차 소위 '진보 어용시민'을 자처하는가 하면 '이니 하고싶은대로 다 해'를 외쳤다. 밀월기간(허니문)은 한없이 늘어진 듯, 반년 넘도록 문(文)비어천가로 주류 언론들은 화답했다. 

41.1%에 표를 보태지 않았더라도, 전임 정권을 내 손으로 뒤집어 엎고 새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는 전(前)정권 반대자들의 고양감과 여유는 흘러넘쳐 집권기간 내내 갈 것 같았다. 전직 대통령에 이어 구(舊)여당에 대한 '적폐 낙인찍기'가 새로운 국민스포츠처럼 횡행했다.

그러나 새 정권 9개월차에 접어든 지금은 정권 지지여부를 막론하고 여유는커녕 '초조감'만 팽배한 사회가 됐다. 정책 전반에 대한 정권의 '실력부족'과, 중국 공산당 및 북한에 '호구잡힌 듯한' 실책이 잇따라 표면화했다. 현 수권자에 대한 우상숭배 논란마저 생겨났다. 단순 호불호를 넘어 망국(亡國)의 우려를 표하고, 대변해 줄 사람을 찾는 여론이 확대됐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는' 수준이다.

독재를 막은 줄 알았더니 대통령 말 한마디로 여러 정책이 뒤집혔다. '비정규직 제로'는 근로자 극히 일부에 '무늬만 정규직' 타이틀을 간신히 달아주는 데 그쳤다. 불과 하루 동안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를 공언했다가 부인하더니 또 여지를 남기는 수상한 언론플레이로 소위 '작전세력' 의혹 당사자가 됐다. '결과의 평등'을 강요하는 교육정책이 '내 아이만큼은 특별해야 한다'는 부모 마음에 상처를 낸데다 정작 정책 추진자들은 강남학군·미국유학을 끼고 살았다는 말이 들려온다. 대통령이 공언했던 5대 인사원칙은 청와대가 '셀프 파기'해놓고 사과 없이 7대 원칙이라는 더 강한 구호로 땜질했다.

주거지역으로서는 사치품에 다름없는 강남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거래 규제를 양산하더니 희소가치만 높였다. 그저 해가 바뀌었단 이유로 최저시급을 무려 천원 단위로 일률 인상해 더욱 많은 영세 사업자를 잠재적 범법자로 만들었다. 정권은 시급 인상분 일부를 혈세로 보조하는 걸 완벽한 대안인 양 홍보하고, '양극화 확대 일로' 가짜통계로 분노만 부추기던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일부의 현장방문과 또다른 가짜통계에 의거한 궤변으로 무마하려 하고 있다. 공론화 없이 원전 공사를 멈추던 탈원전은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파견 사실을 하루 뒤에야 공개한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특사 방문 이후 구호가 사라지고 수상한 급전지시 반복 등 '물밑 작업'만이 남았다.

안보주권 포기에 다름없는 3불(不) 약속도 불사하고 애걸복걸한 끝에 얻어낸 '2017년 연내 방중 정상회담'은 대통령이 식사 약속을 바람맞고 10번 중 8번을 '혼밥'하고 수행원 격인 기자단이 중국측 인력에 폭행당하는 수모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임시정부 건국설을 띄우고, "조선 청년이 함께했었다"며 중국공산당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 관영매체들로부터 치하를 받은 걸로 만족한 것 같다.

북한의 '수소탄·ICBM 완성'이 임박한 시점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해 단순 '북한 참가'를 넘어 '남북 단일팀'을 밀어붙여놓고 "평화가 왔다"고 강변한다. 남북대화는 북한의 갑질 받아주기가 그 실상이요, 북측 대표단 모셔오기는 마치 대북제재 깨부수기라는 결과론적 해석을 낳고 있다. 인권변호사를 자임한 대통령이 인류보편적 문제인 북한인권 해결 의지를 천명한 미국과 '100% 함께하지 않는' 통에,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 등 여권 중진들이 "잔칫집에 곡하러 온다"는 비아냥을 혈맹국 2인자에게 보내는 것으로 화답(?)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북한 정권의 붕괴'·'인위적인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며 헌법 제4조가 의무화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아래의 흡수통일을 수차례 부정했고, 최근엔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대통령은 통일이 아닌 평화가 목표"라고 못박았다. 그동안 핵·미사일 고도화를 착착 진행하는 이북에는 아무런 통제 시도를 하지 않았으면서, 비대칭 전력 해소를 위한 '핵 균형'은 사실상 한국만을 겨냥한 '한반도 비핵화' 구호로 포기한 지 오래다. 

반면 대북 옵션 중 하나로 선제타격설이 흘러나왔을 뿐인 미국에는 "한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은 절대 안 된다"고 대통령이 직접 경고해 의문을 자아냈다. 그도 모자라 북한의 평창 참가를 위한 남북대화 재개는 발표 수시간 전에야 미국에 통보, 미국 측에 크나큰 실망을 안겼다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폭로할 만큼 한미간 공조균열도 뚜렷하다. 

덤으로 여권과 발맞춘 극렬 지지자들의 천~만단위 포털 댓글·검색어 조작 행태는 일반 유권자들을 질리게 했다. 서울 지하철역 수십 곳에 도배된 대통령 생일축하 광고영상도 마찬가지로, '북한의 태양절·광명절을 흉내낸 듯하다'는 개인·우상숭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일찍이 투항한 SBS 외에도 MBC·KBS가 잇달아 여권발 방송장악에 함락돼 신선하지도 않은 '땡문·친북뉴스'로, 곳곳에서 정치인과 예능인의 구분을 흐리는 정권영합적 방송으로 일관해 볼 게 없어졌다.

6·13 지방선거 일정에 끼워맞추겠다며 정권이 '헌법 개정 국민투표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레토릭을 남발하고, '고정적 예산확보'에 목마른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권력에서 멀지 않은 농협 등 기관도 합세해 유례없는 관제개헌 양상도 벌어지고 있다. 헌법 전문과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삭제하는 개헌 구상이 두 차례에 걸쳐(여야 동수를 깬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 여당 개헌당론)발각된 여권은 간신히 논란을 진화하는 듯 했으나, 교육부발(發)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내 '자유 삭제'가 뒤이어 발각되는 복병을 만났다.

예삿말과도 같은 단순 친북·좌편향 논란을 넘어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정체성까지 흔들린다는 불안 여론이 확대될 만한 사안들이다.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대북 저자세에 눈을 흘기고 '망국의 초조함'을 호소하는 여론이 '여론조사 국정지지율 70%' 프레임을 해가 바뀐지 한 달도 채 안돼 무너뜨렸고,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 댓글여론 판도도 뒤집었다. 어떤 여론조사업체는 60% 프레임이라도 지키고자 이례적으로 '주간집계로 자사 주중집계를 반박'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또 다른 '초조함'은 친문(親文)이 훈장과 낙인 어느 쪽인지 알기 어려워진 상황에 급(急) 마주친 현 정권과 협력자, 지지자들의 몫이 됐다.

놀라운 것은, 망국의 초조함을 호소하는 여론은 정권의 잇단 자충수에 따른 자생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야당이 역할을 한 게 없다. 제1야당은 탄핵당한 세력임을 자인한 정도를 넘어 모든 중요 이슈에서까지 '찌그러져' 있었고, 이슈를 선도하지 못했으며, 새로움이 없어 이슈의 흐름을 바꾸긴커녕 묻어갔다. 반대파의 지적이지만 오죽하면 '조선일보 앵무새'라는 말까지 나왔다. '협치'·'따뜻함'·'복지확대'·'대화'·'강한안보'·'미래' 등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듣겠다는 군소야당과 그 책임감의 무게가 달라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수시로 흔들리는 이념·정책노선도 심각한 문제였다. 당대표는 제19대 대선후보 시절부터 보편적 복지를 "공산주의 배급제"라고 단단히 선을 그었는데, 최근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복지는 지출이 아닌 투자"라며 복지 확대를 거론해 '여당과 뭐가 다르냐'는 빈축을 산 게 대표적이다. 외부인사로 꾸린 1기 혁신위로 '이승만·박정희 정신'을 부각해놓고는 2기 혁신위는 출범 초기부터 '좌클릭'에도 집권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 보수당과 독일 메르켈 정권 등을 흉내내자는 주장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 당대표가 직접 단속에 나선 전례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후 정치적 책임을 진 적이 없는 친박계발(發) '내부총질'은 당을 더욱 혼란케 했다. 당내 헤게모니 확보에만 골몰한 탓이다. 좌파보다 '인명진 비대위', '홍준표 지도부'와 더욱 시끄럽게 싸우며 "결사반대"와 같은 말도 줄곧 부르짖었다. 공세 대상이 됐다고, 스스로 정권을 무너뜨려 반국가 세력에 상납한 원죄를 인정하기보다 말 폭탄부터 주고받고 나선 탄핵찬성파 주역들도 꼴불견인 건 마찬가지다. 양측은 혁신(革新)을 강변했지만 자기 살가죽(革) 뜯어내는 이 하나 없었다. 도토리키재기나 하다가 탄핵에 찬성 또는 반대한 것을 사죄할지, 탄핵을 허용한 정치적 책임을 사과할지 갈피도 못 잡고 욕만 벌었다.

공동의 적을 외면한 계파 갈등만 길어진 것이 당 지도부의 힘을 빼고, 책임론은 몰아줘버리는 결과를 낳는 것으로 보인다. 계파에 몸담은 적 없이 7할이 넘는 책임당원의 지지로 선출됐음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대표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은 "존재감이 없다" "믿음이 안 간다"는 우파 유권자들의 비난에 시달려 왔다. 홍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 대법원 무죄 확정 이후 각종 현안에 대한 발언 수위를 다시 높이고는 있지만, "김문수 전희경·김진태·심재철 말고 투사가 안 보인다"는 말이 아직까지도 회자된다.

김진태 의원은 탄핵 과정에서 '태극기 투사'로 각인됐으며 국회 법사위 한국당 간사로 활동하면서 거침없는 문재인 정권 비판에 줄곧 앞장서 왔다. 크게 위축된 친박 유권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유일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앞서 지난해 11월 말 현 정부 각 부처에 산재한 '적폐청산위원회' 운영이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초강경 공세를 퍼부으면서 조명받았다.

국회 입성 전부터 역사교과서 논쟁으로 '보수 여전사' 타이틀을 얻은 전희경 의원은 최근 유권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지난 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말꼬리 잡기'식 대응을 일일이 격파하고, 올림픽 북한 선수단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배지 착용'을 공론화했으며, 자유를 삭제한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총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부 입장이 아니다"는 확답까지 받아냈다. 페이스북과 공개적 대외활동을 통해 문재인 정권의 '주사파 운동권적 체질'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자유우파 성향 국민들에게 부각되고 있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투쟁성'도 돋보인다.

이들은 계파정치의 수혜자가 아니며, 피아 구분이 확실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일관된 믿음을 보이는 동시에 이슈를 발굴·선도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무턱대고 '한국당 구성원 모두가 이들같지 않다는 게 죄'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이겠다. 그러나 투사들이 전선에 앞장서고 반대파로부터 비난을 살 때 적극 엄호하거나 드러내놓고 연대·응원하는 이가 없는 건 죄다. 당 전체가 지리멸렬하던 대선 때 '홍준표 단기필마'식 정당 운영이 계속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후보의 선명성 어필로 '박근혜 4% 프레임'을 깨고 24.03% 득표 2위 정당으로까지 살아나고도 원맨쇼를 방치하는 걸 능사로 안다. 투사들의 활약을 보고도 유권자들이 "강한 야당이 절실하다"고 부르짖는 원인이다.

현 여권 비판에 투신하는 동료 정치인과 거리를 두며 "무식한 행동 아니냐"고 하는 기계적 중립론자가 당내에 넘쳐난다는 이야기도 여전히 들려 온다. 공적을 가장 먼저 견제한다는 정치적 투쟁 상의 원칙도 없고, '정치적 결사체'로서 정당다운 행동이 결여됐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본다.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당 자체가 유권자들에게 대안으로 인식되지 않는 비상상황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소멸된다'는 게 아직도 남일로 들리는지.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