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여전히 순한 양처럼 유교적 미덕을 추구하면서 ‘마키아벨리의 국제정치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플라톤의 섬’이었다.”-강성학,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중에서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반일감정은 북한과 그들을 추종하는 국내의 좌익세력들이 오래 전부터 한미일 삼각동맹의 한 축인 한일 관계를 끊어내 불구로 만들기 위한 치밀하고 조직적인 공작의 결과다.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반일감정은 북한과 그들을 추종하는 국내의 좌익세력들이 오래 전부터 한미일 삼각동맹의 한 축인 한일 관계를 끊어내 불구로 만들기 위한 치밀하고 조직적인 공작의 결과다.

러시아·중국 군용기 독도 상공 침공, 북한 SLBM 탑재용 3000톤급 신형 잠수함 공개, 한국 공군기 러시아 군용기에 360발의 경고 사격, 일본 정부는 한국의 경고사격에 대해 “독도는 우리 영토, 한국이 일본 영토에서 경고 사격한 것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경고….

7월 23일 하루 동안 숨가쁘게 일어난 일이다. 이날 사건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한반도 주변국 모두가 한국을 위협했고, 한국은 고립무원 상태에서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 짓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매년 수백 조 원의 국방예산을 지출하여 미국으로부터 스텔스 전투기(F-35)를 도입했고, 미사일 수직발사관을 탑재한 3000톤 급 잠수함 건조 등등 주변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위력을 갖춰 왔다. 하지만 이 정도 투자로는 일본·중국·러시아의 군사력에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수준임을 만천하는 다 알고 있다. 김정은의 핵·미사일·대량 살상무기에 꼼짝 못하고 벌벌 떠는 모습이 그 증거다.

이처럼 약세의 나라들은 앉아서 죽을 수는 없으니 동맹을 통해 안보를 유지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 휴전을 이용하여 미국을 압박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냈고, 1954년 한미합의의사록(Agreed Minute Relating to Continued Cooperation in Economic and Military Matters)을 통해 확고부동한 한미동맹체제를 완성시켰다.

두 가지 외교적 협약을 통해 한국은 육군 66만 1,000명, 해군 1만 5,000명, 해병대 2만 7,500명, 공군 1만 6,500명으로 구성되는 총 72만 명의 한국군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미국이 한국에게 1955년도 회계연도에 4억 2000만 달러의 군사원조, 2억 8000만 달러의 경제원조를 제공하고, 10개 예비사단의 추가 신설, 79척의 군함, 100대의 제트전투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국은 “국제연합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위한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대한민국 국군을 국제연합사령부의 작전지휘권 하에 둔다”는 내용에 동의했다.

한미합의의사록의 핵심 내용을 두고 좌익진영은 이승만이 군사주권을 팔아먹었다고 모욕을 가한다. 지나가던 개가 웃다가 자빠져 뇌진탕을 일으킬 소리다. 이승만은 휴전선 이북의 미수복 지역에서 공산압제에 신음하는 2000만 북한 동포를 구출하기 위해 틈만 나면 ‘북진통일’을 외쳤다. 이 노인네가 만약 이것을 실행할 경우 한국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게 되므로 주변국은 이를 막아야 했다.

그런 행위를 원천봉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유엔이 보유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서 미국은 막대한 예산 지원, 주한미군 2개 사단을 인계철선으로 한국에 주둔시켜 공산군이 또 다시 남침하면 미국 자동개입 등 3중, 4중 안전장치를 이승만에게 내놓았다. 이승만은 미국의 확고한 안전장치와 ‘북진통일’의 꿈을 교환함으로써 오늘과 같은 한미동맹체제가 시동을 걸게 되었다.

반일 선동의 뿌리를 추적하면…

6·25 남침전쟁이 벌어졌을 때 일본은 결정적인 후방 지원기지 역할을 했다. 당시 남한 내에는 공장다운 공장이 없었고, 전력 등 모든 사회간접자본이 파괴된 상태였다. 유엔군과 국군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각종 전시물자 생산은 일본이 담당했다.

전시물자 생산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은 6·25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직간접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연합국총사령부(GHQ)는 일본의 해상보안청에 해상 경비를 명했고, 국철(國鐵)은 유엔군 병력과 물자 운반을 담당했다. 일본 선박 가운데 100톤 이상은 모두 GHQ가 관리했는데, 이 모든 선박을 한국전을 위해 징발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이 동원한 47척의 LST(상륙함) 중 37척에 일본 선원들이 승선하여 배를 운전했다. 또 인천상륙 후 제10군단 병력이 원산항에 상륙하는 과정에서 기뢰 제거작업을 벌였는데, 이때 일본 해상보안청의 소해정이 동원되었다(와다 하루키 지음·송주명 옮김, 『한일 100년사』, 북&월드, 2015, 186~187쪽).

소해 작전에 투입된 30척의 소해정 중 20척과 그 배에 탑승한 수병들은 패전국 일본 해군 소속이었다. 기뢰 제거에 1주일이 걸렸고, 작전을 진행하는 동안 세 척의 소해정이 기뢰와 접촉하여 침몰했다(왕수쩡(王樹增) 지음, 황선영·나진희 옮김, 『한국전쟁』, 글항아리, 2013, 214쪽).

미국은 6·25 전쟁 과정에서 후방 지원기지로서 일본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결과 한미동맹에 일본이 포함되어 해양 동맹 혹은 자유민주 동맹이라 불리는 한미일 삼각동맹체제가 출범한다. 이러한 한미일 삼각동맹은 북한-중국-소련(러시아)의 대륙 동맹(공산전체주의 동맹) 입장에서 볼 때 눈엣가시였다.

이들은 한미일 삼각동맹을 부수기 위해 집요한 선전선동과 대남공작을 개시했다. 이 강고한 한미일 관계 중에서 가장 느슨하면서 균열을 내기 쉬운 곳은 식민지배와 피지배 문제로 감정이 쌓인 한일 관계였다. 북한과, 그들의 사주를 받은 국내 좌익세력들은 한일 관계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여차 하면 촛불 들고 거리로 뛰어나오는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을 정서적으로 이용했다.

급기야 정신대, 위안부, 강제 징용, 학도병 등등의 이슈가 난무하더니 신채호 류의 ‘한놈 정신’에 입각한 무조건적인 항일투쟁이 국민들의 반일감정에 불을 질렀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필두로 전국 곳곳에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졌고,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노동자상을 세우겠다며 난리를 피운다.

한일 관계는 문재인 정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검토” 발언이 제기되면서 도저히 동맹이라 이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일본과 한국 간 외교 파탄이 계속되어 한미일 동맹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한반도 유사시 동맹국인 미국의 원활한 작전 수행은 대단히 어려워진다. 한국 입장에서는 열심히 자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과, 그에 동조하는 국내 좌익세력들의 반일을 통한 노림수는 이것이 전략적·전술적 키 포인트다. 한일 관계는 적들이 깔아놓은 레일 위를, 그들이 의도하고 계획한 대로 진행되었다. 급기야 서로 마주 보고 돌진 충돌하는 기관차 형국이 되어버렸다. 파국을 맞고 있는 한일 관계를 보면서 그 동안 적들의 공작이 얼마나 집요하고 심각하게, 그리고 문화적 감정적 감상적으로 물 흐르듯 진행되어 왔는지를 실감한다.

외교의 노래 vs 새야새야 파랑새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무역보복의 칼을 빼든 것은 문재인 정부의 도전에 대한 일본의 응전이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연일 반일감정을 에스컬레이트 시키는 모습을 분석해 보면, 이 또한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왔던 한일 관계 까부수기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불행하게도 국제관계의 작동원리는 논리나 언변이 아니라 힘, 즉 국력과 국익이다. 영국의 노련한 외교관 파머스턴 경은 “우리에게는 항구적인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항구적이고 영원하다. 그리고 이 이익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설파했다. 어떤 나라와 친구가 되려면, 그 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선물이 필요하다. 선물이 없는가? 그렇다면 머리라도 숙여야 한다. 그게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힘의 논리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 중국으로부터 대만과 요동반도, 2억 냥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이 요동반도를 차지하면 러시아가 만주에서 취하게 될 이익에 방해가 되며, 또 러시아의 운신과 행보에 지장을 받아 불편해진다. 러시아는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에 압력을 가해 요동반도를 반환시켰다. 이것이 삼국간섭이다.

러시아의 말 한 마디에 벌벌 떨며 전략적 요충지인 요동반도를 토해내는 모습을 본 고종과 민비는 잽싸게 러시아에 밀사를 보내 "일본의 압력으로부터 조선을 구해 달라"면서 러시아의 보호를 요청했다. 상국인 청나라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나가떨어졌으니, 러시아를 새로운 상국으로 받들겠다고 새로운 사대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목숨 걸고 전쟁에서 이겨서 획득한 전리품을 국력이 부족해 토해내자 청일전쟁에 참전했던 100여 명의 일본군 장교와 사병들이 자결로 항의했다.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 대중들의 분노가 폭발한 가운데 일본은 큰 교훈을 얻었다. 국제사회에서는 오로지 힘, 즉 국력만이 정의이며, 국가 생존과 구원은 군사력을 통해서만 확보된다는 처절한 교훈 말이다.

일본 정부는 힘으로 작동하는 국제사회의 교훈을 백성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해 ‘외교의 노래’란 유행가를 만들어 퍼뜨렸다. 그 가사 내용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서쪽에는 영국이 있고 북쪽에는 러시아가 있다네/ 동포여 조심하라! 겉으로 그들은 조약을 “맺는다네/ 그러나 그들의 가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네/ 국제법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네/ 그러나 때가 오면 기억하라 강자가 약자를 먹어 치운다는 것을”

일본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군비를 강화했고, 그 결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요동반도 반환의 복수를 실행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배신하고 러시아를 한반도에 끌어들인 민비를 시해하고(을미사변), 한반도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한일합방).

비슷한 시기, 조선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래가 유행했다. 동학 농민운동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처형당한 전봉준을 기리는 노래다. 그런데 그 가사가 눈길을 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어서바삐 날아가라 댓잎솔잎 푸르다고/ 하절인줄 알았더니/ 백설이 펄펄 /엄동설한 되었구나”

일본의 유행가 ‘외교의 노래’를 구성하는 가사와 조선의 유행가 ‘새야새야 파랑새야’의 가사에 담긴 의미와 역사관, 세계관, 가치관과 철학의 깊이와 차이. 그것이 한일 간 문화력, 문명력, 국력의 차이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인사들은 21세기 개명천지에 동학에서나 어울릴 법한 ‘죽창가’를 의도적으로 유행시키고 있다. 죽창가의 가사는 시인 김남주가 썼고, 김경주가 작곡을 붙여 안치환이 노래했다. 1980년대 대학가 시위, 노동운동 현장에서 자주 불렸던 이 노래는 동학 당시 ‘새야새야 파랑새야'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느닷없이 죽창가를 꺼내든 이유

‘죽창가’를 쓴 김남주가 누구인지 모르시는가? 김남주는 김일성에 충성을 맹세한 남민전에 소속되었던 주사파다. 좌익 사상범이었다가 전향한 소설가 김정익은 『수인번호 3179』라는 책에서 김남주로부터 “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히 죽여 없애는 것이다. 그 숫자는 200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위시한 공산주의 사상을 반복적으로 교육받았다고 쓰고 있다.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5년을 살았던 김남주는 민주화보상심의회에서 민주화 투사로 인정받았다. 그(혹은 그의 가족)는 정부로부터 억대의 보상금을 받았을 것이다. 조국이란 사람이 이 시점에 ‘죽창가’를 꺼내든 이유를 이제 이해하시겠는가? 그들의 반일은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듯이 일제 36년 간의 억압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 아니다. 저들의 반일은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로 향하는 움직임을 방해하고, 탄압한 사람들에게 '친일' 딱지를 붙이고, 숙청하고 타도하기 위한 반일이다.

그들의 반일은 자연스럽게 친중, 친북, 친좌익으로 연결된다. 저들의 반일은 일본과의 동맹 고리를 끊기 위한 계획된 거사다. 그 결과 우리 사회를 한미일 동맹체제에서 이탈시켜 자연스럽게 친중, 친북으로 이끌기 위한 노련한 외곽 때리기 공작이다.

문재인을 비롯한 이쪽 진영 사람들은 조선 말기, 나라를 거덜 낸 수구꼴통 위정척사 성리학자들과 정신세계가 완벽한 닮은꼴이다. 이미 120여 년 전 외교 잘못하여 나라를 망쳐먹고, 망국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으니 더 이상 뭘 어쩌겠는가. 이런 정도의 인간을 국가 지도자로 택한 유권자들이 책임을 나눠 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강성학 교수가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소개한다. 러일전쟁의 회오리가 대한제국을 강타할 때 이 나라 지도부 사람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구절이다.

“조선은 여전히 순한 양처럼 유교적 미덕을 추구하면서 ‘마키아벨리의 국제정치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플라톤의 섬’이었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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