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회동과 미북 정상만남, 한 편의 리얼리티 쇼처럼 펼쳐져...트럼프는 해야 할 말 다 해
美가 원하는 빅딜 수용, 평행선 달리기, 하향 조정된 목표 순항 등 세 가지 시나리오 펼쳐질 듯
판문점 회동, 향후 행보 따라 '역사적 사건' '지옥문 연 사건' 될 수 있어...文정부, 正道와는 다른 길 걸어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6월 30일 남북미(南北美) 정상들의 판문점 회동과 미북(美北) 간 ‘깜짝’ 정상만남은 한편의 ‘리얼리티 쇼’처럼 펼쳐졌다. 주연을 맡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연기는 출중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무리없이 조연역을 해냈다. 예상했던 대로 한국의 방송언론과 일부 지식인들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트럼프-김정은 만남에 문 대통령이 불참한 것을 두고 ‘셀프 패싱’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어차피 북핵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적 변수가 미국과 북한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대로 美·北이 ‘실무협상 재개’에 합의한 것이 맞다면 6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머물던 핵대화에 새 동력을 불어넣는 것이어서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판문점 회동이 ‘역사적인 사건’이 될 징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정상들의 만남은 푸짐한 덕담들이 오가는 중에 이루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해야 할 말을 모두 쏟아냈다. “속도보다는 좋은 포괄적 합의가 중요” “폼페이오 장관과 비건 대표가 실무협상을 맡을 것” “대북제재는 지속해야 할 것” 등을 밝힌 것이다. 이는 비핵화를 여러 단계로 쪼개어 매 단계 합의마다 보상조치를 제공받겠다는 북한의 ‘단계적 동시행동’ 방식을 다시 한번 거부한 것이며, 협상팀을 교체해달라는 북한의 요구도 묵살한 것이다. 해서, 향후 북핵 문제의 미래는 세 가지 시나리오로 압축될 수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북한이 ‘단계별 합의 및 매 단계 보상’ 요구를 철회하고 미국이 원하는 ‘빅딜’ 방식을 수용하는 경우이다. 즉, 일괄타결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후 비핵화 조치들을 취해나가면서 핵심적인 보상조치를 유의미한 비핵화 이행시까지 미루는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실무협상 재개 이후에도 양국이 기존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지루한 ‘평행선 달리기’가 이어지는 경우이다. 이 경우, 북핵 게임은 모두에게 엄청난 인내와 고통을 수반하는 장기전이 될 것이며, 결국 미국은 초강력 대북제재와 함께 무력사용, 북한정권 교체 등의 특별카드들을 만지작거리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원하는 ‘단계별 합의’ 쪽으로 선회함으로써 핵대화가 ‘하향 조정된 목표’를 향해 순항(順航)하는 경우다. 이 경우, 단계별 합의마다 요란한 자축행사가 수반되지만 결국은 추가적 핵무기 생산 및 핵확산 포기를 확약하는 ‘무늬만 비핵화’ 선에서 타결하고 한미 양국이 ‘위험한’ 양보조치들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핵동결’이나 ‘부분 비핵화’를 받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항구적 평화’를 선언하는 경우인데, 한국에게는 이것이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북한의 비대칭 위협이나 대남전략이 불변인 상황에서 서둘러 ‘가짜 평화’를 자축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최상 시나리오는 첫 번째이지만, ‘핵보검’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평양정권의 구조적 딜레마들을 감안하면 두 번째의 가능성이 더 높다.

세 번째는 경계해야 할 시나리오이지만, 각국 정부의 ‘정치적 셈법’에 맞아 떨어지는 것이어서 일순간 의외로 탄력을 받을지도 모른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조국을 불패의 핵강국으로 전변(變轉)시킨 지도자”로 추앙받는 쾌거가 될 수 있고, 과거와 다른 방향성을 가진 정책들로 자유우파 국민의 거센 저항을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도 비난여론을 잠재우고 여세를 몰아 2020년 총선까지 거머잡는 ‘북풍(北風)’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재선 경쟁에 돌입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비핵화든 진짜 비핵화든 가리지 않고 ‘외교 업적’을 찾아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판문 회동 직후 미국의 언론들은 ‘핵대화에 새로운 동력 제공’이라는 제목을 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화려한 정치쇼였다”라는 평가를 곁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 의회 및 전문가들의 목소리와 여론동향이 트럼프 대통령의 향후 행보를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요컨대, 향후 어떤 핵시나리오가 전개되는가에 따라 6·30 판문점 회동은 ‘역사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고 ‘지옥문을 연 사건’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에 우선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즉, 최상 시나리오로 가기 위한 대화 노력을 지속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핵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확고한 북핵 억제 태세를 유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 안보역량을 점검하면서 동맹공조와 국제사회와의 외교공조를 챙겨야 한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추구할 대상이 아니라 금기(禁忌)시하고 대비해야 하는 대상임을 유념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정부가 가야 하는 정도(正道)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정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돌이킬 수 없는 평화’가 도래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독자안보태세가 이완되고 동맹 약화와 외교 고립도 심화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 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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