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잊혀질 권리' 말하며 해외로 나간 양정철...귀국하면 청와대 핵심 참모진 만나
'매섭게 권력 멀리하겠다'면서 '최고 실세와 따로 술잔 기울이는 사이'라고 말해
내년 총선 앞두고 올해부터 전면에 나서...국정원과 검찰 양대 사정기관 수장부터 만난 셈
야권 전체가 양정철 행보에 의심어린 시선 거두지 못해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린 지난 8일에도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은 수없이 거명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인사에서 파격 승진을 거듭한 윤 후보자가 문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한 양 원장을 여러 차례 만난 배경이 무엇인지가 쟁점화 됐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여권 실세인 양 원장이 사정(司正) 핵심기관인 검찰 내 실력자를 스스럼없이 만나는 게 적절한 처신도 아닐뿐더러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까지 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10일 펜 앤드 마이크가 양 원장이 그간 만났다는 사람들을 정리해봤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 해외로만 돌았던 양 원장은 여권 정치인들과 만남을 극도로 피하면서도 청와대 핵심 참모진과는 기회가 닿는 대로 만났다. 2017년 추석 무렵 양 원장은 뉴질랜드에서 잠시 귀국해 청와대 참모진을 만나고 돌아갔다고 한다.

양 원장은 2017년 말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일본 도쿄로 거처를 옮겼다. 양 원장은 집필 활동을 하며 언론에는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더 모질게 권력과 거리를 둘 것”이라 발언한 바와 같이 비춰지길 원했다. 당시 양 원장은 "측근들의 퇴진으로 인해 '측근들이 다 해먹는다'거나 '코어 그룹이 다 결정한다'는 프레임이 정권 초에 논란이 되지 않은 것만 해도 성과라고 본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양 원장이 귀국할 때마다 공항에는 취재진들로 가득했다. 이유는 양 원장 자체의 정치적 위상도 있었지만 양 원장 특유의 화술도 있었다. 그는 권력으로부터 ‘잊혀질 권리’를 말하면서도 언론 인터뷰에 “내가 한국에 한번 씩 조용하게 들어가면 다른 이는 안 만나도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는 둘이 만나서 폭탄주도 마시면서 서로 속에 품고 있는 얘기를 하는 사이다”라는 발언도 던졌다.

이런 양 원장이 전면에 나선 시점은 올해 1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제안 받은 민주연구원장직을 수락하면서부터다. 양 원장은 지난 4월 29일 더불어민주당 선거 전략을 총괄하는 민주연구원장직에 공식 취임했다.

양 원장이 누굴 만났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서훈 국가정보원장과의 지난 5월 21일 만찬이었다. 이 자리엔 김현경 MBC 북한전문기자도 있었다. 보수야당은 물론이거니와 정의당도 곧장 비판을 쏟아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5월 27일 논평을 통해 “사실이라면 매우 부적절한 만남이자 촛불의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서 원장과 양 원장의 독대 의혹이 제기됐다”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민주당 선거 전략을 책임질 정도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가 19대 총선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한 바 있는 현직 국정원장을 4시간이나 만난 사실은 ‘국정원 총선개입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이 만남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를 모르지 않는 양 원장이 현직 국정원장을 무리하면서까지 만난 이유가 무엇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인 듯 양 원장은 여권의 유력 정치인들을 공개적으로 잇달아 만났다. 그러자 양 원장의 해당 만남들에 대해 ‘광폭 행보’라 이름붙인 언론 보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양 원장은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를 지방정부와 정당 싱크탱크 간의 업무 협력이란 명분으로 만났다.

그러나 양 원장은 지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통해 또 다시 수면 밖으로 등장했다. 일부 언론은 양 원장과 윤 후보자의 ‘4월 회동설’을 보도했다. 윤 후보자는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의 추궁에 4월이 아니라 올해 2월쯤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양 원장은 사실상 민주연구원장직에 내정된 이후로 국정원과 검찰이라는 양대 권력기관의 수장을 다 만난 셈이다. 윤 후보자는 올해 2월을 포함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며 양 원장을 두 번 만난 사실을 시인했다. 윤 후보자는 가벼운 술자리였다고 해명했지만 총선을 1년 앞둔 2015년 양 원장이 출마를 몇 차례 권유한 적도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정치권에서 내년 총선을 앞둔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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