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첨밀밀>에 담았던 홍콩 반환에 대한 불안이 현실이 된 지금,
자유를 지키려는 홍콩 시민들의 용기를 지지하는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
민주, 평화, 인권을 부르짖으며 무력탄압을 반대하던 촛불족들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홍콩에서 부는 바람이 중국을 쓰러뜨릴 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 “요즘 홍콩 사람들은 모두 이민가야 한다고 말해. 유럽이나 캐나다로. 대륙 사람들은 모두 홍콩으로 오기를 바라고. 하지만 홍콩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기를 원하지.” / 영화 <첨밀밀> 중에서.

1996년에 제작된 영화 <첨밀밀>은 중국 반환에 대한 홍콩인의 불안을 담고 있다. 당시의 홍콩을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주인공으로 설정된 남녀는 중국인이다. 돈을 벌어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홍콩에 온 소군(여명 분)은 낯설고 힘겨운 현실 속에서 우연히 같은 처지의 이교(장만옥 분)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소군에게는 중국에 남겨두고 온 약혼녀가 있다.

소군과 이교가 홍콩에서 행복했다면 중국과 홍콩은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암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다르고, 자본금도 없고 자유 시장경제 체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그들이 복권에 당첨되듯 쉽게 적응하고 성공할 리 없다. 홍콩에서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내내 외로웠고 힘들었고 가난했으며 떳떳하게 하나가 되지도 못했다. 홍콩 드림을 안고 고향을 떠나왔지만 그들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버릴 수도 없었고,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한 홍콩인이 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중국으로 주권이 이양된 지 22년. '범죄인 인도법' 개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 2백만 명이 거리에 나섰다. 중국의 요구가 있을 때 범죄자를 보내야 하는 법안을 시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시국사범이나 반(反)체제 인사의 중국 송환이 가능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시위는 점점 숨통을 조여 오던 중국 공산당 통제에 대한 공포의 표출이자 자유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홍콩인들의 확고한 저항이다.

거센 반발에 놀란 홍콩 정부는 심의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들은 법안 자체를 철회하라며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시위를 폭동으로 간주하겠다고 선포했고 경찰은 무력으로 진압했으며 그 과정에서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지나가면 바다를 가르듯 길을 열어주는 수많은 시민들. 그러나 홍콩 경찰은 병원 시스템에 접속, 시위자 명단을 검색한 뒤 응급실에서 치료받던 부상자들을 체포해가고 있는 형편이다.

제1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전한 이후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아온 홍콩은 1984년에 반환협정을 체결, 1997년 7월 1일 0시를 기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양되었다. 156년 간 영국의 통치를 받는 동안 세계적인 교역지로 성장해온 홍콩이 공산주의 국가의 특별행정구역이 된 것이다. 언제라도 자치권과 자유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이 홍콩인들 가슴에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산혁명이라 불리는 2014년의 대규모 시위도 친중(親中) 인사만을 행정장관에 임명시키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시도를 반대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중국은 그렇게 차츰차츰 홍콩 시민의 자유를 옥죄어오고 있었다.

현재 옥스퍼드대학교의 총장이자 홍콩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이 반환을 앞두고 한 정신병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입원 환자 한 명이 그를 알아보고 질문했다.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민주주의 국가지요? 중국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공산주의 권력을 가진 독재국가구요.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영국이 홍콩 시민들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아무런 선택권도 주지 않고 독재정권에게 홍콩을 넘겨줄 수 있는 거죠?”

영화 <첨밀밀>에 담긴 홍콩 반환에 대한 천커신 감독의 생각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맥도날드에서 처음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중국인 이교와 소군은 홍콩에서 성공도 사랑도 이루지 못한다. 영화는 단 한 장면도 이교와 소군의 고향인 중국을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쪽에 살던 사람들은 홍콩으로 나오게 했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에서는 번번이 그들을 머물게 했다. 꼭 떠나보내야 할 때는 대만이나 미국으로 보냈다. 그렇게 헤어진 이교와 소군은 각각 홍콩을 떠나게 되는데 새롭게 정착하는 곳이 미국이다,

영화에는 중국에 반대하는 중요한 상징이 하나 더 추가된다. 이교와 소군을 운명적으로 맺어주는 등려군의 노래가 그것이다. 중국에서 크게 사랑받았던 그녀는 사실 대만 출신의 가수이다. 홍콩에서 만났으나 실패와 이별을 반복하던 이교와 소군, 그들은 자유의 여신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뉴욕의 한 길모퉁이에서 재회한다.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듯 밝게 미소 짓는 그들 모습 위로 등려군의 노래가 흐른다.

현재의 중국과 홍콩, 대만과 미국의 관계는 22년 전 영화 속에 예언처럼 녹아 있다. 높은 무역 관세로 중국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는 미국은 물론, 일본과 영국 등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은 표현의 자유와 평화롭게 집회할 권리를 옹호하며 홍콩인들의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 중국과 대립하며 친미노선을 분명히 걷고 있는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 역시 "중국의 일국양제 치하에서 홍콩의 자유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자유를 추구하는 홍콩인의 목소리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예전엔 사람들이 떠났는데 지금은 다들 돌아오지. 홍콩 사람들도 본토에 와서 일한다우. 국내에 돈 벌 기회가 더 많으니까.”

홍콩 반환이 이루어지기 직전, 뉴욕에서 관광가이드로 일하고 있던 이교에게 중국 관광객이 콧대 높게 하는 말이다. 홍콩을 돌려받을 당시 중국인 모두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은 비누거품처럼 꺼지고 있다. 체제 위기를 느끼고 있는 중국이 점점 폐쇄사회로 치닫고 있는 사이, 재산을 정리해서 미국으로 빠져나가려다 발각되는 주요 인사들의 기사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만 나 몰라라, 눈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있다. 고무총탄과 최루탄, 물대포로 홍콩 시민들이 강제 진압 당하고 있는데 민주주의와 평화를 외치던 우리나라 정부와 언론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인권과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특히 범죄자 인권을 외치며 공권력에 맞서 경찰버스들을 뒤집던 정의로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홍콩 정부를 규탄하거나 시민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중국에게 항의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침묵은 ‘달리는 말 궁둥이에 달라붙은 파리’로 살아가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소리 없는 함성인 것만 같다.

영화 <첨밀밀>에는 많은 비중을 할애하진 않았지만 우리와 직접 연관되는 부분이 나온다. 소군이 홍콩에 와서 몸을 의탁했던 그의 고모는 사창가에서 매춘업을 하고 있지만 그녀에게도 젊은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 영화 촬영을 위해 잠시 홍콩을 방문했던 배우 윌리엄 홀든과의 짧은 인연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때 언급되는 영화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종군기자와 영국인과 중국인 혼혈 여의사의 사랑을 그린 <모정>(慕情,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이다. 한국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다른 영화도 많은데 감독은 왜 하필 영화 <모정>을 자신의 작품 속에 인용했을까.

올해는 6.25전쟁 발발 69주년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북한의 6.25남침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슴에만 한을 남긴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세계 각국의 군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었고 아버지였다. 그들의 부상과 죽음으로 가슴 아팠을 전 세계의 어머니와 아내와 딸들이 수없이 많았다는 뜻이다. 그들의 도움이 있어 우리가 공기처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70년 간 물 쓰듯 소비했던 자유와 풍요는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홍콩인들처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지켜내지 않는다면 우리가 누릴 자유는 더 이상 없다.

이교와 소군은 재회 이후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뉴욕의 어딘가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올려다보며 홍콩 시민들을 응원하고 있지 않을까. 홍콩에서 시작된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향한 바람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제재, 대만과 홍콩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그에 따라 세계지도가 변화될 것을 모르는 건 민족이니 친북이니 친중이니 하는 우리나라뿐이다.

영화 마지막에 이교와 소군, 두 사람이 재회할 때 흐르는 노래가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다. 내 마음을 대신해준다는 달빛. 밤하늘의 달은 인간 세상의 어둠을 밝혀주고, 자국민의 마음을 달빛처럼 훤히 읽은 세계의 지혜로운 통치자들은 부강하고 안전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데, 추종자들에게 ‘달님’이라 불리는 사람은 우리 국민이 아닌, 대체 어느 누구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는 것일까.

홍콩의 정신이라 알려진 ‘자유, 법치, 안정, 번영’을 위해 싸우고 있는 그곳의 시민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언제까지 당신들의 자유를 남에게 지켜 달라 할 것인가?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자유는 존속할 수 없고 자유를 지키지 못하는 나라와 국민은 생존할 수 없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 힘으로 지킨다. 당신들도 선택하라.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체리 레몬 칵테일>,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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