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前대법원장 입장에 재판부 '묵례'...양은 시선도 안 줘...고영한은 "가슴이 미어진다"
양승태 작심발언 "법관 생활 42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 봐"
"우리 사회, 보잘것 없는 내용물 갖고 포장만 근사하게 하는 경향 있어"
"직권남용죄 적용되면 일 좀 하겠다는 공직자들 나날이 죄 쌓는 중"

법정 향하는 양승태·고영한·박병대 [연합뉴스 제공]
법정 향하는 양승태·고영한·박병대 [연합뉴스 제공]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아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첫 재판이 지난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부(박남천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가운데 양 전 대법원장의 발언과 당당했던 모습이 알려지며 주목을 받고 있다.

재판에 참석한 기자들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께 법정은 참여연대, 민변 등 좌파성향 단체와 취재진들로 가득 찬 가운데 양 전 대법원장이 양복 차림으로 오자 재판부가 먼저 묵례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부에 인사하거나 시선도 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함께 재판에 출석한 고영한, 박병대 전 대법관은 검찰의 발언에 가끔 메모를 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그러지 않았다.

재판장도 사상 첫 전직 대법원장의 재판을 진행했던 터라 긴장한 기색이 드러났다. 재판장은 “일어서라”고 말하지 않고 “피고인들은 일어설 수 있으시면 일어서 주시겠나”라고 물었다. 또 직업과 주소 등을 물을 때도 시선을 못 마주치고 서류만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의 신경전도 있었다. 검찰이 모두진술을 하고 있는 사이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이의를 제기하며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의 모두 진술이 끝나기 전에는 검찰은 모두진술에 공소사실을 말하면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통상 (검찰이)그렇게 해 와도 이의제기들은 안 했는데, 이렇게 이의를 제기하면 어쩔 수 없다”라며 변호인 손을 들어줬다.

현재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부인도 “분위기를 보러 왔다”라며 재판을 방청했다. 이날 현장엔 참여연대와 민변이 사전에 모집한 ‘두눈부릅 시민방청단’ 30여명이 몰려들어 방청석이 꽉 찼다.

양 전 대법원장은 25분간 직접 발언을 하며 검찰 공소사실을 가리켜 “모든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 픽션 같은 이야기”라며 “모든 것을 부인하고 그에 앞서 이 공소 자체가 부적합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관 생활 42년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 본다"며 "법률가가 쓴 법률 문서라기보다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 자문을 받아서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라고 했다.

특히 "법적 측면에서 허점과 결점이 너무 많다"며 "가장 필요한 법원 재판 절차나 법관의 자세, 이런 측면에 관해 (검찰이) 너무 아는 것이 없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장 첫 머리에는 흡사 피고인들이 엄청난 반역죄나 행한 듯 재판으로 온갖 거래행위를 획책했다고 하고는 결론 부분에 이르면 재판거래는 온데간데없고 심의관들에게 문건과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게 직권남용이라고 끝을 낸다"라며 "용은 커녕 뱀도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격"이라고 했다. 

'판사 블랙리스트'의혹에 대해서는 "온 장안을 시끄럽게 하더니 그런 리스트가 없다는 게 밝혀지자 통상적인 인사를 갖고 블랙리스트로 포장하고 있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보잘것없는 내용물을 갖고 포장만 근사하게 해서 내놓는 상품이 꽤 있는데 그런 포장들이 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이라며 사건이 침소봉대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제공]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제공]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장에 온통 '~등'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다면서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뭘 갖고 방어를 해야 하냐. 재판부는 뭘 갖고 심리를 해야 하냐"라며 "마치 권투를 하는데 상대방의 눈을 가리고 두세 사람이 한 사람을 때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재판 심리를 빨리 하자고 재촉하는 것은 "축구장에 금을 그어놓지 않고, 골대도 세우지 않고 경기를 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수사과정에 관해서도 "내 취임 첫날부터 퇴임 마지막 날까지 모든 직무 행위를 샅샅이 뒤져서 그중에 뭔가 법에 어긋나는 것이 없는가를 찾기 위한 수사였다"라며 "심지어 내 전임 대법원장 때까지 들춰냈던 것이 보였는데 이게 과연 수사냐"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사찰"이라며 "어떤 사람의 처벌거리를 찾아내기 위한 수사는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수사이자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그런 수사야말로 권력의 남용이다. 법원에 대해 이런 수사를 할 지경이라면 대한민국 어느 국민도 안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권남용죄 적용대 관해서는 "검찰이 효과적인 무기를 개발했다"면서 "이것이 모두 유죄가 된다면 우리 공직 사회 중 일을 좀 하고 싶어하는 공직자들은 나날이 직권남용죄를 쌓아가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법의 지배가 이뤄지는 나라가 될 것이냐, 아니면 무소불위의 검찰 공화국이 될 것이냐는 이번 재판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대 전 대법관 역시 변호사들의 의견서와 같은 의견이라며 공소사실 일체를 부인했다.

고 전 대법관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일단 전부 부인한다”면서도 “그토록 사랑했던 형사법정에 서고 보니까 가슴이 미어진다. 이유 여하 막론하고 대법관 등이 이 자리에 섰다는 자체만으로 송구스럽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소사실 보면 그토록 노심초사하면서 직무 수행한 부분들이 모두 직권남용한 것이라고 기재돼있다”며 “법률해석 둘러싸고 헌법적 긴장상태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건지 했던 것은 반헌법적 재판개입으로, 국민 신뢰 회복하기까지 대응한 조치들은 부당한 조직개입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또 “어느 조직이나 있을 수 있는 자료와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들은 인사탄압으로 기재했다”며 “법관 재판과 달리 사법행정 담당자들은 사후에 보기에 다소 부적절한게 있더라도 이를 곧바로 형사범죄에 이를 정도로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고 전 대법관은 “판사님께서 유감스럽게도 일방적 시각에서 한 언론 보도를 접하며 갖게 됐을지도 모를 선입견 걷어낸 상태에서 저의 간절한 말에 귀기울여 주시고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신중하고 냉철한 판단을 부탁한다”며 “과도한 업무 속에서도 심리에 만전 기하는 재판부에 감사들 드린다”고 말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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