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소설 <위대한 유산>
정의롭고 민주적인 국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장난에 속아선 안 돼
자유와 풍요야말로 우리가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자 물려주어야 할 유산
다시 한 번 신바람 나게 일하는 희망과 기회의 땅, 그런 한반도가 바로 포스트 코리아!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 똑바른 길을 통해서 비범한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면, 굽은 길을 통해서도 그곳에 도달하지 못 헤. 그러니까 거짓말은 하지 마, 핍. 잘 살다 행복하게 죽으라고.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중에서.

핍은 일찍 부모를 잃고 누나와 대장장이 일을 하는 매형, 조와 함께 살았다. 모자라게 보일 정도로 착하고 정직한 조는 그 어떤 아버지보다 핍을 사랑했고 그 누구보다 좋은 친구였다. 그러나 지역 유지의 집에서 아름답고 도도한 소녀, 에스텔라를 만난 뒤 핍은 처음으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익명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후원받게 되고 핍은 혼자 집을 떠나 런던에서 폼 나게 살게 된다. 에스텔라와 어울리는 신사가 되어 결혼할 수 있으리라, 꿈꾸는 핍은 비루했던 과거를 잊고만 싶다. 그래서 자신이 보고 싶어 런던까지 찾아온 조를 반가워하기는커녕 귀찮아하기도 한다.

희망은 머지않아 산산이 부서진다. 에스텔라는 집안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고귀한 신분일 거라 생각했던 후원자는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나 빵을 가져다준 적 있는 탈옥범, 매그위치였다. 대장장이 조의 신분도 부끄러웠는데 전과기록이 주렁주렁 매달린 죄수가 보낸 돈으로 먹고 입고 흥청거렸다니. 핍은 토할 것처럼 충격을 받는다. 몸에 붙은 벌레를 떼어내듯 핍은 또다시 지난 시간을 모두 다 털어내고만 싶다.

꼭 지금의 우리를 닮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자유 대한민국을 부정하려고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를 부정하려고 친일이다, 독재다 오명을 씌워 위대한 업적들을 끌어내리고 있다. 그러나 빵 한 조각이라도 훔쳐서 부끄러운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었다. 칼 들고 남의 것 빼앗는 강도짓을 해서 이룬 풍요도 아니었다. 내 국민 자유롭게 살게 하려고 온갖 반대와 어려움을 이기고 세계 속에 떳떳하게 세운 나라였다. 내 국민 배고프지 않게 하려고 다른 나라에 가서 허리 굽혀 빌려온 돈으로 세운 공장들이었다. 그런 깊은 뜻을 이해한 국민들이 한마음 되어 머리카락 팔고 재봉틀 돌리고, 전쟁터와 사막과 광산을 뛰어다니며 죽을 각오로 일으킨 나라였다. 그렇게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아끼고 아껴서, 자기들처럼 고생하지 말라고 가르쳐놨더니 민주주의도 모른다고, 제거해야 할 적폐이고 처단해야 할 죄인이란다.

- 나는 거칠게 살았다. 너를 편히 살게 하려고, 나는 열심히 일했어. 네가 일 따위는 안 하고 살게 하려고. 무슨 보상을 바라고 그랬느냐고? 얘야,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야. 천만에. 시궁창에서 쫓기는 개 같던 내가, 신사를 키웠다고 자긍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래, 핍. 네가 바로 그 신사란다.

고국으로 돌아오면 사형이라는 조건으로 추방당했던 매그위치는 머나먼 유형지에서 피땀 흘려 돈을 벌었지만 자기를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핍이 가난한 환경에서 범죄에 물들지 않기를, 풍족하고 자유롭고 근사한 생을 살았으면, 그것이 매그위치의 유일한 소망이자 보람이었다. 그렇게 멀리서 키운 핍을, 신사로 잘 자랐을 모습을 보고 싶어 죽음을 각오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대장장이 조에게 무엇이 바른 인생인지 보고 듣고 느끼며 자란 핍은 근본까지 배은망덕하지는 않았다. 핍은 어떻게든 그를 살릴 방안을 모색한다. 그러나 경찰 추적 끝에 붙잡힌 매그위치는 사형선고를 받고, 체포 과정에서 당한 부상으로 끝내 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핍은 그의 거친 손을 꼭 잡고 ‘사랑하는 아저씨’라고 부르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매그위치는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핍의 곁에서, 슬프고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인생을 마감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고질이 고쳐지지 않는 한 오히려 독재자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진짜 국민여러분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말이다. 독선의 정치가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를 독재자로 부르는 게 적당한가 하는 것부터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독재자라 불린 모든 통치자가 공포 정치를 했다거나 학살자나 폭군이 된 것은 아니었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달아난다."는 말처럼, 국민의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문화 수준은 국가 안보와 부의 정도에 비례한다. 국방과 경제가 탄탄하게 뒷받침 되지 않으면 국민의 삶은 빈곤과 질병, 범죄와 전쟁의 위험 속에서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뜻을 가진 독재자가 좌고우면 하지 않고 강력하게 통치할 때 문화가 번성하고 국민들은 안전하고 배부르게 살았다. 반대로 다수가 주도하는 민주정치가 복지정책을 남발할 때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혼란과 빈곤뿐이었다.

독재를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제 맘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잠재적 독재자들뿐이다. 대한민국의 훌륭한 지도자들을 칼리굴라와 네로, 히틀러와 마오쩌둥, 스탈린 같은 광기어린 학살자들과 동급으로 내몰아 선동한 장본인이 바로 그들이다. 진정한 영웅들을 나락으로 밀어 떨어뜨려야 오매불망 바라던 권력을 나누어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기리고 우러러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 대신, 1980년의 광주가 지상최고의 성지聖地인 양, 실체가 없는 민주화란 것이 높이 숭배해야 할 신神인 양, 이 나라 정치인들이 경주하듯 달려가 머리 조아리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죽었다. 국민이 사랑했던 대한민국은 ‘헤어 롤 헌재’가 헌법을 짓밟고 무죄한 대통령의 파면을 선언한 날, 사라졌다. 눈앞에 있는 건 최악의 실업률과 마이너스 경제성장, 감당할 수 없는 국가부채뿐이다. 돈도 자유도 주권도 없는 민주주의를 유산으로 남겨주면 미래 세대는 고마워할까. 무엇보다 저들이 거짓 평화로 국민을 속이는 동안, 북한은 우리가 어찌해볼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갔다. 북한은 미국에 의해 개방될 것이고 반미와 반일을 주구장장 외쳐온 이 땅에 ‘통일은 대박’이란 열매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다시 자립할 때까지는!

좋은 것을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모든 생명의 본능이다. 노력한 만큼 부가 쌓이고 능력에 따라 지위와 신분이 높아질 수 있다면, 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김 씨 일가에게 착취당하며 살아온 북한 주민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희망과 자유와 풍요를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며 1960~70년대 선배세대가 힘든 줄 모르고 일했던 것처럼, 북한 주민들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세계사의 물결과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고 있는데도 좁은 우물마저 사라진 줄 모르는 정치인들과 그 추종세력은 서로 더 큰 밥그릇을 차지하겠다고 이전투구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매그위치의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달았지만 핍의 현실은 암담했다. 죄수였던 매그위치의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어 핍에게 돌아갈 유산은 한 푼도 없었다. 무한하리라 믿고 미래를 담보 잡혀 쓴 빚도 많았다. 부자가 되었다며 떠받들던 사람들은 가난으로 다시 추락한 핍을 비웃었다.

- 몇 년 뒤 나는 클래리커 상사의 동업자가 되었다. 나는 행복하고 검소하게 생활했고 빚도 다 갚았다. 우리 회사가 거대한 기업이 되었다거나 떼돈을 벌었다거나 하는 말은 결코 하지 않겠다. 거창하게 사업을 벌이진 않았지만 우리는 좋은 평판을 얻었으며 이익을 내기 위해 일했고 꽤 잘해 나갔다.

심하게 앓고 난 핍은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마주한다. 불노소득을 당연하게 여기며 가난을 부끄러워하던 나약한 인간에서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혼자의 힘은 아니었다. 매그위치의 후원으로 한동안 품위 있는 신사적 삶을 배우고 경험해본 덕분이었다. 런던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사업을 배울 기회, 동업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무식하다며 멀리했던 조가 대장장이 일을 하며 평생 모은 돈으로 핍의 빚을 어느 정도 갚아준 덕분이었다. 그래서 경제사범이 되지 않고 떳떳하게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도 뼈아프게 깨달아야 한다. 상실감이 너무 심해서, 핍이 그랬던 것처럼 오래 앓아누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핍을 다시 일어서게 했던 위대한 유산이 우리에게도 있다. 폐허에서 나라를 일으켰던 선배들의 지혜, 미래세대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주겠다던 뜨거운 사랑과 열의, 그들 덕분에 우리가 누렸던 자유와 풍요에 대한 경험이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명언 한 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포스트 코리아를 준비하며 제일 처음 해야 할 일은 대청소다. 쓰지 않는 과거의 유물들과 소용없는 과거의 방식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진 자들과도 깨끗이 이별해야 한다. 그렇게 텅 비워 넓어진 땅, 제로베이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게 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것이 두려워 과거를 놓지 못한다면 새로운 도약은 불가능하다. 분명한 건 버리고 비운 자리에 더 좋은 것을 채우려는 욕망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믿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지혜를 짜내고 계획해야만 한다. 이것이 과거의 잘못을 파묻고 갈 수 없는 이유이다. 사기 탄핵의 잘잘못을 가려서 놓을 사람은 놓고, 버릴 사람은 버리고 가야 하는 이유이다.

거짓을 혐오하고, 남 탓하지 않고, 공짜 바라지 않고, 선택에 책임지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미래, 건강하고 풍요롭고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사람들로 북적이는 세상을 우리가 열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계에서 모여드는 곳, 또 한 번 신바람 나게 일하는 기회의 땅 한반도.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포스트 코리아의 모습이다.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에단 호크와 기네스 펠트로가 주연하여 현대적으로 각색된 1998년 작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으나 핍과 에스텔라와의 사랑에만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추었다. 원작과 가깝게 만들어진 것은 1946년에 제작된 흑백영화다. 이 작품은 유튜브에서 무료료 시청할 수 있다.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체리 레몬 칵테일>,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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