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1970년대 초 국민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던 나에게는 위대한 지도자, 철이 들면서는 침을 뱉어 주고 싶었던 무자비한 독재자, 세상을 알만한 나이가 된 지금은 존경하는 지도자로 거듭난다. 내 인생에서 박정희 평가가 그랬듯이 지금도 그에 대한 평가는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는다. 박정희는 가난을 증오했다. 가난이야말로 인간성을 파괴하는 악의 근원이라 지목했다. 그는 가난을 물리치고 살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의 통치 기간은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는 국민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었고, 한일청구권 협상을 마무리 지으면서 식민지 배상금으로 경제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경제개발에 성공한 나라로 만들었다. 우리가 일본을 깔보고 박정희를 친일파라 비난하며 퇴행적인 반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경제력이 그만큼 성장했기에 가능했다. 

가난이 전염병처럼 퍼져 있었던 시절 일본인들이 경제력을 내세워 한국에 단체로 기생관광을 오곤 했다. 그들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유린하고 현지처로 삼았다. 나라가 가난하면 여성들은 몸을 파는 일에 내몰린다. 향락산업이 급증하자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납치와 인신매매가 성행하기도 했다. 납치와 인신매매는 일제시대 위안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부 재주있는 사람들은 암울한 이 땅보다는 더 좋은 기회를 찾아 해외를 떠돌았다. 주한미군을 이용해서 미국으로 떠나기도 하고 일부는 일본으로 밀항하여 식모살이 갔던 기억도 선명하다. 못살고 힘없으면 그렇게 된다.

고종이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겁하게 뒤로 모사나 꾸미지 말고 정면으로 도전하라. 받아주겠다"고 말이다. 고종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알렌은 자신은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고종같은 왕은 처음 본다. 조선사람들이 불쌍할 뿐"이라고 했다. 몰락해 가는 왕조를 붙들고 제 아무리 용을 써도 미래로 나갈 힘도 비전도 없다면 망국의 길을 피할 수는 없다. 비록 나라는 망해도 지배층은 살아남지만 민초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국가는 강해야 한다. 친일파라 비난받는 사람들이 극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부강한 나라를 건설했다. 민초들이 살만한 터전을 일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세상은 온통 아이러니가 판을 치는 연극 무대 같은 곳이다. 

필자가 학창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존경하는 리영희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대단한 열정을 갖고 수업을 했기에 학생들에게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다. 책과 잡지, 복사물 등을 두 손이 부족할 정도로 들고 강의실을 들어오곤 했다. 열강을 하다보면 예정된 수업 시간을 한 두시간 넘기는 것은 예사였다. 그러던 어느날 리영희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북한은 당시 한반도의 모든 인재들이 모여 만든 나라인데 어찌하여 저 모양이 되었고,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친일, 친미파로 지칭되는 소위 쓰레기들이 만든 나라인데 어떻게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며 한숨을 지었다. 분명히 쓰레기라고 했다. 이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조상대대로 당해왔던 철천지 원수 이웃 건달에게 당한 무자비한 폭행에도 불구하고 이웃집 피해자는 푼돈만 받고도 합의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말도 못하게 심했다. 자존심도 없느냐, 당신들이 그동안 당한 것을 생각해 봐라 등등... 

몇 푼 안되는 합의금을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사업은 무럭무럭 성장해서 기업이 되었다. 이젠 조상대대로 멸시하던 그 놈도 그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자식의 취업을 부탁하려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굽신거리다 겨우 용건을 말하기도 했다.

누가 진정한 승자인가.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 미래를 꿈꾸며 과거를 잘근잘근 씹어 삼키는 사람에게 미래는 있다. 박정희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낸 사람이다.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미래의 희망을 얘기했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지도자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박정희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장면 정부에서도 경제개발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방학 때 큰 결심을 하고 계획서를 만들어 본 적이 있다. 동그랗게 시계 모양으로 원을 그리고 야심찬 계힉을 세운다. 공부, 공부, 독서, 휴식, 공부 등등...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실천이다. 실천이 없다면 계획은 공허할 뿐이다. 계획은 누구나 세울 수 있고, 실천할 수 없는 계획일수록 더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계획의 속성이다. 계획을 하나하나 현실화 해 나가는 능력과 힘은 아무나 펼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에게 박정희는 축복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박정희를 넘어서야 한다. 다시 그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물론 박정희의 대척점에 있었던 민주화의 성역도 넘어야 한다. 민주화는 산업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박정희를 찾고 부르짖게 만든다. 현실은 고단해도 미래가 있었던 바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신봉했던 민주화가 변질된 것도 박정희 향수를 자극한다. 대한민국에서 오늘의 민주는 더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민주가 아니다. 

박정희를 부정하는 1987년 체제가 만든 오늘의 대한민국을 진단해 보면 현실은 고달프고 미래는 어둡다. 성장보다 분배 위주의 정책을 펼친 당연한 결과다. 성장이 지체되면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불확실한 미래는 오늘을 규정한다. 미래가 없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역경과 고난은 피하고 싶은 대상일 뿐이다. 미래를 위한 어떤 투자도 무모해 보인다. 당연히 도전은 위축되고 변화를 혐오하는 불행의 싻이 튼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만 파먹는 퇴행적 행위가 우리의 미래를 저당잡혔다. 

이제 늦었지만 대한민국은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토대를 기반으로 미래를 얘기하고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가 만든 경제 체제도 그 결과로 나온 재벌도 우리 모두의 것이다. 대한민국의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부를 창출했고 축적했던 간에 그 정당성을 갖고 밤을 새워서는 안된다. 이젠 그것을 어떻게 잘 활용해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과거를 부정하면 현실도 없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미래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를 지배한다"고 조지 오웰은 말했다. 반일종족주의로 과거사를 재단하는 세력이 대한민국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고 그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민족주의, 종족주의의 끝은 암흑이다. 민족주의는 반역일 뿐이다.

누가봐도 한강의 기적을 일궜고,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된 대한민국은 이제 박정희도 넘어서고 민주화의 성역도 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소위 자칭 진보를 내세우는 좌파는 민주화라는 도그마에 결사적으로 매달리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송두리째 거부한다. 그러다보니 자유우파는 그들이 피땀으로 건설한 대한민국의 가치와 성공신화를 내세울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6. 25를 불러왔던 이념의 격전장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이 전쟁이 마무리 될지는 알 수 없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지 아니면 변증법적 귀결에 따라 새로운 대안 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다. 총성 없는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 되던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상징되는 철벽을 넘어야 한다. 그 안에 묶여서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죽이지 못해 안달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민주를 내세우며 산업화 세력으로 간주되는 자유우파를 적폐로 몰아 극악스럽게 탄압하는 사람과 세력은 이 나라를 회복 불능의 내전 상태로 몰고갈 뿐이다. 산업화 세력은 더욱 악다구니 쓰며 와신상담해서 더 독하게 민주세력을 압살해 버릴 것이다. 파시즘은 이같은 악순환의 원리에 따라 등장한다. 끔찍하지만 이 땅에서도 파시즘이 도래할 여건이 갖춰져 가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이념과 리더십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민주화의 도그마가 성역과 원리주의라는 거대한 절벽에 막혀 있다. 국정은 급속하게 균형을 잃고 한 방향으로 쏠리고 있다. 국가가 전복될 절박한 상황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단호한 의지로 인기 없는 정책을 밀고 나갔던 한 지도자의 가치는 더욱 빛날 수 밖에 없다. 그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대중과 영합하여 극단으로 치닫는 변질된 민주화 원리주의자들의 망국적 패악질이 장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암흑속에서 별처럼 빛날 수 밖에 없다. 

이젠 역사속으로 물러나 휴식을 취하고 있어야 할 박정희와 5.16을 여전히 맹렬하게 활동하는 활화산으로 만들고 있는 장본인은 민주화의 악령들이다. 놀라운 역설이다. 그 화산이 터지는 날 이 땅에서는 역사상 처음 겪어보는 불의 심판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덤속으로 사라진 파시즘이 관뚜껑을 열고 맹렬한 기세로 우리를 덮칠 수도 있다. 미움과 증오를 부추겨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만든 자들은 이 죄과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이자성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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