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
혁명가라 자처하는 가장 불완전하고 가장 탐욕스러운 사람들
빼앗고 흔들고 파괴하던 공산주의 악령의 전성시대가 종말을 고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상을 따르는 대중 심리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는 것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 “독이고 전염병이고 하나같이 불결한,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우글거렸던 온갖 마귀들과 마귀의 새끼들! 어쩌면 내가 그 우두머리인지도 모르지요. 우린 완전히 무엇에 홀린 듯 광포하게 날뛰면서 절벽에서 바다로 돌진하는 겁니다. 모두 빠져 죽을 거예요. 우리는 그래도 싸요.” / 도스토예프스키 <악령> 중에서.

1872년에 출간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은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가로 불렸던 네차예프와 그의 조직원들이 동료를 살해, 유기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혁명조직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주인공 스타브로긴은 냉혹한 심장을 가진 지성인으로, 사람들은 그의 카리스마에 굴복, 숭배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병든 스타브로긴의 주변에 쌓여가는 것은 수많은 죄악과 시체들뿐이다.

미래를 모르는 청년들은 자력에 이끌리듯 스타브로긴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단번에 이상세계를 만들어보겠다고 인격 모독과 자살 방조, 방화, 살인 등 극악한 사건들을 모의, 획책하며 기존 사회를 끊임없는 혼란으로 몰아간다. 그러던 중 샤토프는 자신의 활동에 회의를 느끼게 되는데 이를 눈치 챈 동료들은 그가 배신할지도 모른다고 판단, 숲으로 유인하여 총살한 뒤 수장시킨다. 살인에 참여하지 않았던 다른 조직원을 찾아가서는 샤토프를 죽였다고 자백하는 거짓 유서를 쓰게 하고 자살시킨다. 하지만 연못에서 시신이 발견되고 조직원들이 하나둘 체포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살인과 스캔들과 추잡한 짓을 자행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럄신은 극도로 허둥대며 대답했다. “사회 기반을 체계적으로 뒤흔들고, 모든 토대를 조직적으로 해체하기 위해서. 사회 구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극도의 혼란으로 몰아넣은 뒤 불신 사회를,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단숨에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

왜 그토록 미친 듯 촛불을 켜들고 광장으로 뛰쳐나왔던 것일까. 왜 그토록 집요하게 마녀사냥하고 옷 벗겨 조리돌림하고 발길질하고 침 뱉으며 아무 죄 없는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것일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더니, 세상을 홀랑 뒤집어 움켜쥔 권력으로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공유경제와 소득주도 성장론을 앞세워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꾸준히 시행해온 결과 최고 실직률, 최대 취업난, 수출실적 급락으로 경제는 끝없이 침몰 중이다. 감비아나 투르크메니스탄 수준의 교류 말고는 대한민국의 외교는 뇌사 상태다.

국가 안보도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지뢰는 제거하고, 전방초소들은 폭파하고, 전국 해안과 강변의 철책 284Km를 제거했다. 질주해 내려올 수 있는 4차선 넓이의 도로를 활짝 열어준 것도 모자라 유엔 제재에도 불구, 대북지원을 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전국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때조차 인명 피해가 나고, 국토는 잿더미로 무너져 내리고, 국민들 속은 새까맣게 타고 있는데 “산불이 북쪽으로 계속 번지면 북한과 협의, 진화 작업하라.”며 뒤늦게 나타난 이 나라 최고 권력자는 북한에 대한 뜨거운 사랑만 또 한 번 고백했다.

부동산 투기와 독립유공자 부정 선정 의혹의 손혜원, 그의 아버지에게 전례 없는 특혜를 주고도 모자라 흥행했으니 영화 속 실제 인물인 공산주의자를 독립유공자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훈처 피우진, 청문회의 내로남불 여왕으로 등극한 박영선과 김정은 찬양에 앞장 선 김연철의 장관 임명, 부동산 투기와 불법 대출은 아내가 저지른 죄라며 줄행랑 친 청와대 대변인 김의겸과 법조인 윤리강령에 위배되는 35억 주식투자를 남편 탓으로 돌리고도 헌법재판관이 된 이미선. 손가락으로 세기에도 모자라고 말로 하자니 숨이 찬다. 오로지 국민만 위해 봉사하는 정치인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이토록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인물들로 충만한 정권은 보다보다 처음이다.

촛불혁명을 했다는 저들의 목적은 우리나라를 일으키고 세우고 건설하고 드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대한민국을 손아귀에 넣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오직 흔들고 해체하고 무너뜨리고 파괴할 뿐이다.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때까지, 다른 사람이 가질 만한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모든 건 그들 마음대로다. 어디에도 법이 없고 공정이 없고 자유가 없다. 그들이 법이고 진리이고 길이며 생명이다. 그들을 따르지 않으면 꼰대가 되고 적폐가 되고 반동이 되고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지난 4월16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 기한 만료일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그럴 듯한 이유 하나 대지 못하면서도 석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불법 대선 댓글을 조작한 드루킹의 공모범이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김경수는 수감 77일 만에 석방했다. 구치소를 나서며 그는 영웅이나 된 것 같은 얼굴로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돌아온다, 뒤집힌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큰소리쳤다.

말이면 다 말이 되는 세상이다. 대체 진실이 무엇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혹시 저들 사전에는 ‘진실이란 내 편이 하는 모든 거짓말’, ‘거짓이란 내 편 아닌 자들이 말하는 모든 진실’이라 적혀 있는 것 아닐까.

- “난 평생 동안 거짓말을 해왔어요. 진실을 말할 때조차 진리를 위해서 말한 건 절대 아니었어요.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 한 거였지요. 난 지금도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 큰 문제는 거짓말을 하면서 나 자신이 그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거지요.”

혁명이라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며 세상을 휘저을수록 사회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불완전해지고 혼란스러워지며 부패가 만연하게 된다. 그들이야말로 불평불만이 가장 많은 사람, 작은 고통에도 크게 비명 지르는 나약한 영혼의 소유자, 한없이 변덕스럽고 끝없이 위선적이며 그 누구보다 탐욕스러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베네수엘라 정권을 비판하며 “사회주의는 죽었다.”고 선포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언어로 바꿔 말한다면 “악령은 죽었다!”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달 초, 동맹국의 관례를 깨고 문제아를 학생부 상담실로 부르듯 文을 호출, 왕복 서른 시간의 비행 거리에도 불구하고 1박2일의 체류만 허락했다. 당장 눈에 띄는 체벌은 없을지라도, 달랑 2분 단독회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소설 <악령>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살해당하고, 자살당하고, 체포당하고 두려움에 떨다 자수하여 수감된다. 사건에 직접 연루된 적 없다고 조직원들의 비호를 받은 스타브로긴조차 세상에 대한 환멸이든 자기 분열이든, 사랑이나 종교적 구원을 마다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반성이나 후회는 아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틀렸든 비뚤어졌든, 최소한 자기 생각을 갖고 살아왔음을 고집하는 유서까지 남긴다.

“아무도 탓하지 말라. 나 스스로 한 일이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남은 공산주의자들의 새드 엔딩도 머지않았다. 그들 또한 스타브로긴처럼 뒷모습이나마 폼 나게 사라져갈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우리들 자신이다.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 불리던 사람과 그 무리들이 떠나고 남은 자리, 그들이 무너뜨린 폐허 위에서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것인가?

비관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의 현실이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법치를 근간으로 박 대통령의 탄핵 무효와 즉각 석방, 명예 회복을 주장했어야 할 야당의 마음은 처음부터 영구 권력 내각제라는 콩밭에만 가 있었다. 단순히 ‘반문연대’의 세력 확장을 주장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생각이 좀 깨어 있나 싶은 지식인들도 진보니 중도니 하며 사회주의 의식이 배어 있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알게 모르게 국민정신 속에 파고든 비뚤어진 이념의 뿌리가 그만큼 깊고 질기다는 뜻이다. 그러니 답답한 마음에 이 사람이 한 소리 하면 와, 저 사람이 한 마디 하면 와, 오랜 갈증에 시달려온 국민은 환호하게 된다.

강하려 들면 한없이 강해질 수 있지만, 나약할 때는 한없이 나약한 게 인간이다. 사회가 혼란의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기득권 세력은 스스로 우상이 되거나 그럴싸한 모조품을 내세워 대중을 끌어 모으려 하고, 군중은 만능 해결사 같은 영웅을 갈망한다. 적당한 인물이 없을 때조차 사람들은 악령이나마 앞세우고, 추앙하고, 숭배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일으킨 것은 우리 국민이다. 하지만 공산주의 악령과 그 졸개들을 키워온 것도, 말 한마디에 환호하며 과거 잘못을 눈감아주곤 했던 우리들 자신이다. 포스트 대한민국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러한 반성과 절박한 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으로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서 듣기 좋은 사이다 발언만 하면 영웅시 하는 대중, 그렇게 문제의 본질을 잊는 어리석은 군중의 속성부터 벗어던지는 게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청소가 된다 해도, 새로운 시대의 문이 운 좋게 열렸다 해도 탐욕에 찌든 이기주의 악령, 사회주의와 공산전체주의 악령은 언제든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체리 레몬 칵테일>,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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