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에 한 부대에서 복무했던 선배와 만나 점심을 들었습니다. 군복 입었을 적 얘기를 하느라 정작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해서 아쉬웠다면서, 글을 보내왔습니다. ‘태극기 집회’의 성격에 대한 통찰이 담겨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복형. 제가 처음 한 겨울 아스팔트 위에 섰을 때, 저는 심장 수술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려웠지만, 차라리 길바닥에서 쓰러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자식들도 극좌로 돌아서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깃발 주변에서 만난 분들이 서로 인사하면 인연이 모두 닿아 마음을 터놓는 것이 신기했지요. 고향, 학교, 군대, 직장을 매개로 서로 얽혀 있는 사회란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모두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분들이었습니다만 자신이 시대착오적 인물로 비춰질까 두려웠는데, 집회에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순수한 그들과 쉽게 교감하며 대화를 가져보니, 10인 10색이라 오히려 적대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점심 모임에 전문가를 초청해서 대화를 나누니 조금 방향성이 정렬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공부모임의 강의를 들으며, 역시 우리가 너무 사상적으로 안이했고 무지했으며 그 무지를 틈타 좌익 세력이 활개치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교 동창 단위에서라도 포럼을 만들자 하여 시행하니, 저녁 늦은 시간에 많은 분들이 모여 강의를 듣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정기적 모임이 되었습니다……

탄핵 직후, 나라가 무너졌다 월남화의 길을 가고 있다며 불안해 하는 주변에 적극적으로 낙관론을 폈어요…… 걱정되면 집회에 나와서 세력에 보태고 성금을 내는 게 이민 궁리 하는 것보다 싸게 먹힌다고 역설했지요.

요즈음은 제게 그때 불안감을 없애주어서 고맙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도 불안으로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집회에 참가한 날은 이상하게 숙면을 해요. 군중의 열띤 기를 받는지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집회에서 뜻밖에도 막내 여동생을 만났습니다. 교사로 봉직하다가 결혼 후에 해외에 근거를 잡고 국내를 왕래하며 사는데, 전형적50대 386세대라 전혀 예상치 못한 조우였습니다. 그녀는 촛불 시위에 참가하여 탄핵을 주장했었습니다.

생각을 바꾼 이유는 당시 선동하던 매체들의, 특히 인터넷 동아리 매체들의, 주장에 거짓이 많다는 것을 느꼈고, 특히 작년 여름부터 휴전선 방책을 제거한다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하고 느꼈고, 우익 유튜브 방송을 보니, 신뢰성이 있고 사리에 맞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탄핵을 주장한 일들이 너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 속죄라도 하고픈 마음에 우익 집회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집회가 대한문, 서울역, 광화문 등지에서 제각기 열리니, ‘왜 우익은 뭉치지 못하느냐’며 비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집회에 직접 나와서 잘 관찰하면 보일 것입니다. 집회마다 운영하는 주최측의 주요 이슈가 있고 그 조직과 자금의 문제도 있습니다. 오히려 뭉치면 이런 사소한 차이로 분열할 위험이 더 크지요. 수도 서울의 요소요소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항의 집회를 하며 행진 시에 서로 격려하며 대오를 합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우익 내부의 반목? 그것은 대부분 이해 충돌이 아니라 관점의 다름에서 오는 것입니다. 시민운동의 성격상 컨트롤 타워가 있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정당과는 다릅니다. 우익 인사, 자유한국당도 가차없이 비판하는 시민들, 이런 백가쟁명 속에서 방향을 찾고 단단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승영 드림.”

박승영씨는 저의 한 해 선배로 1960년대 후반에 금화 지역 포병대대에서 전포대장으로 복무했고 뒤에 크고 오래된 화학 회사의 공장장으로 일했습니다. 그 분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모이시는 분들을 생각하노라니, 메이 스웬슨(May Swenson)의 ‘어떻게 늙는가 (How to Be Old)’가 떠올랐습니다.

젊기는 쉽다. (모두 젊다,

처음엔.) 쉽지 않다

늙기는. 그것은 시간이 걸린다.

젊음은 주어진다; 늙음은 이루어진다.

늙기 위해선

세월에 섞을 마법을 만들어내야 한다.

It is easy to be young. (Everybody is,

at first.) It is not easy

to be old. It takes time.

Youth is given; age is achieved.

One must work a magic to mix with time

in order to become old.

 

양자 역학(quantum mechanics)에 대하여

이번 글은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를 다룹니다. 미래의 컴퓨터로 여겨지는 기술입니다. 이름이 가리키듯, 양자 컴퓨터는 양자 역학 지식을 이용한 기술입니다. 당연히, 양자 역학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 그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양자 역학 지식은 그것이 너무 어려운 학문이라서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는 분야라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래도 남들이 양자 컴퓨터에 관해서 한 얘기들을 그저 요약해서 옮긴다는 노릇이 마음에 걸려, 친절하다는 평을 받은 해설서를 한 권 구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양자 역학 해설서를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40대였을 적인데, 그 동안 양자 역학이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제가 읽은 해설서는 영국 과학평론가 필립 볼(Philip Ball)의 <기이함을 넘어서 (Beyond Weird)>인데, 양자 역학에서 최근까지 나온 발전들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했습니다. 양자 역학을 다루었지만, 수식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누구라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렵사리 읽고 나니, 모르는 것들만 더 많아졌습니다. 하긴 그것도 향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을 ‘모른다는 것은 아는 것(known unknowns)’으로 만드는 것이, 개인이든 사회든, 지식의 첫걸음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모아서 체계화한 방대한 지식들 가운데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분야가 양자 역학입니다. 실은 그 학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1965년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이 말했습니다, “아무도 양자 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바로 그 해에 그는 양자 역학에 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양자 역학이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근본적 이유는 그것이 수학으로만 나타낼 수 있는 지식이라는 사정입니다. 양자 역학에서 쓰이는 수학은 물론 어렵습니다만, 어려운 수학이 쓰인다는 사실 자체가 넘기 어려운 장애는 아닙니다. 난해한 고등 수학이 필요한 학문들은 이미 많습니다. [경제학만 하더라도,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과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의 유명한 ‘내기’에서 드러나듯, 이미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물리학과 비슷한 수준의 수학을 쓰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수학으로 풀어낸 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파인먼이 얘기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엔 특별한 재능이, 우리가 너무 흔히 쓰는 ‘천재’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생각 하나가 떠오를 것입니다 - ‘수학으로 나타낸 것들이 궁극적으로 실재(reality)와 관련이 있을 터이니, 실재와 비교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실제로 경제학에서 어떤 모형이 나오면, 이내 경제 현실과 비교해서 검증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검증엔 특별한 수학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수학 모형을 만들기 위한 단순화 과정에서 거의 언제나 문제가 일어나니, 그 부분을 먼저 살피면 됩니다.

그러나 양자 역학에선 수학적 추론 말고 따로 실재가 없다고 합니다. 양자 역학에선 형이상학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절실한 논점들로 부각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이런 상황이 양자 역학을 어려운 지식으로 만듭니다.

수학으로만 나타낼 수 있는 지식을 그래도 말로 나타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자 역학의 감춰진 모습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일컬어지는 닐스 보어(Niels Bohr)는 “원자에 대해서 얘기할 때, 언어는 시처럼 쓰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을 묘사하기보다 심상(image)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젊었을 적에 처음 접한 보어의 얘기는 늘 제 마음에 박혀서 서걱거렸습니다. 아쉽게도, 보어는 자신이 엿본 양자 역학의 매혹적 자태를 시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을 쓰면서, 제가 눈감땡감으로 그럴 듯한 시를 골라보았습니다.

양자 역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개념은 중첩(superposition)입니다. 관측되지 않은 상태의 양자 입자(quantum particle)는 ‘동시적으로 둘 또는 그 이상의 상태들(two or more states at once)’을 지닌다’는 얘기입니다. 시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선택을 강요 받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죠.

이런 상태를 잘 표현한 시로는 황인숙의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가 먼저 떠오릅니다.

보라, 하늘을.

아무에게도 엿보이지 않고

아무도 엿보지 않는다.

새는 코를 막고 솟아오른다.

얏호, 함성을 지르며

자유의 섬뜩한 덫을 끌며

팅! 팅! 팅!

시퍼런 용수철을

튕긴다.

“아무에게도 엿보이지 않고/ 아무도 엿보지 않는다”는 구절은 ‘중첩’을 더할 나위 없이 잘 묘사합니다. 이 멋진 시는 1988년에 나온 그녀의 첫 시집의 표제시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저도 첫 시집을 냈습니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는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69번이었고 졸시집 <오장원의 가을>은 70번이었습니다. 자연히, 문단의 눈길은 그녀에게로만 쏠렸죠. 자기보다 나은 사람 바로 곁에 서는 것보다 큰 불운은 드뭅니다.]

양자 역학에서 또 하나의 근본적 개념은 얽힘(entanglement)입니다. 제가 이번에 읽은 해설서는 “얽힘(entanglement)이 무엇인지 나타낼 독특한 길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의 본질은 “양자 사물은 그 사물에 전적으로 국한되지 않은 특질들을 지닐 수 있다 (A quantum object may have properties that are not entirely located on that object)”입니다. 이런 특질은 비국지성(non-locality)이라 불립니다.

제 느낌으로는 불가의 ‘인연(因緣)’이란 개념이 ‘얽힘’에 가장 가까울 듯합니다.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도 인연’이라는 바로 그 인연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우연히 길에서 지나치는 사람들로부터도 생각보다는 훨씬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2016년에 나온 황인숙의 일곱째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에 실린 ‘그림자에 깃들어’는 자유롭게 하늘을 풀어놓던 새도 언젠가는 인연의 실타래에 끌려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얽힘’을 이만큼 잘 그린 시도 드물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보면

왠지 슬프다

한 아낙이 오뎅꼬치를 문 금발 어린애들을 앞세워 지나가고

키 작은 서양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회색 양복 서남아 청년이 지나간다

먼먼 땅에 와서 산다는 것

노인과 어린애

어느 쪽이 더 슬플까

슬픈 건 내 마음

고양이를 봐도 슬프고 비둘기를 봐도 슬프다

가게들도 슬프고 학교도 슬프다

나는 슬픈 마음을 짓뭉개려 걸음을 빨리한다

쿵쿵 걷는다

가로수의 담벼락 그늘 아래로만 걷다가

그늘이 끊어지면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림자도 슬프다

이 세상엔 ‘자신이 보살인 줄 모르는 보살’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왜 늘 슬픈지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중생이 모두 구제된 뒤에야 나도 성불하겠다”는 비장한 서원(誓願)을 한 보살은 자신의 고귀한 목표에 고양되어 활기차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서원을 한 기억도 없는 보살은 그저 중생의 괴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슬픔이 가득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슬픔’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 그녀의 시들을 읽다 보면, 그녀의 슬픔이 세상으로, 이웃들을 넘어 이방인들로 다시 사람들을 넘어 고양이들과 비둘기들로, 가게들과 학교들로 그리고 그림자들로, 점점 널리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면서, ‘자신이 보살인 줄도 모르는 보살’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가 있습니다.

적어도 고양이에 관한 한, 그녀는 보살입니다. 세상의 모든 길고양이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을 때까지 쉬지 않겠다고 서원한 것입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가 쓰러질 때까지?

그 뒤에는?

고양이들은 계속 슬픈 새끼를 치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다

(옆에도 없다, 앞에도 없다)

‘길고양이 밥주기’의 첫 연

언젠가 인사동 술집에서 나오다가, 어둑한 골목에서 그녀가 고양이를 용케 알아보았습니다. 고양이도 그녀가 누군지 아는 듯 다가와서 그녀 앞에 얌전히 앉았습니다. 그녀가 가방에서 고양이밥을 꺼내서 그 고양이에게 내밀던 순간은 제 마음에 ‘마법의 순간’으로 각인되었습니다.

몇 해 뒤 신인들을 위한 문학상 시상식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녀는 가방 속을 뒤졌습니다. 그러고는 아쉽게 말했습니다, “드릴 게 고양이밥 밖에 없네요. 선생님 고양이 키우시죠?”

“나 고양이 안 키우는데…”

“고양이 키우신다고 하던데…” 단단히 나무라는 투였습니다.

‘고양이 키우지 않는 잘못’에 대한 변명을 찾는데, 그녀가 가방에서 무엇을 꺼내 내밀었습니다. “이것밖에 없네요.”

얼결에 받고 보니, 담배갑과 라이타였습니다.

덕분에, 합정동의 목로주점에 혼자 앉아, 맥주 한 잔 청해 놓고 오래간만에 맛보는 담배를 즐기며, 말기암 환자에게 스스럼없이 담배를 건네는 글벗을 둔 것이 유쾌해서, (따지고 보면, 그게 그거지만, 그녀 자신도 모르는 그녀의 정체를 저는 알아보았다는 것이 흐뭇해서), 지나가는 연인들에겐 축복의 눈길을 보내고 엄마 손을 붙잡고 가는 꼬마들에겐 손을 흔들면서, 속절없이 지나가는 한 철의 끝물을 시리게 맛보았습니다.

양자 역학은 ‘얽힘’이 우주의 피륙을 이룬다고 합니다. 가장 미세한 입자들이 서로 얽히고 그 얽힌 입자들이 다시 얽히는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어 우리가 보는 이 고전적 세계(classical world)가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그 얘기를 읽으면서, 저는 여린 목숨을 지닌 존재들이 인연으로 얽히고 다시 얽혀서 거대한 생태계를 이룬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 양자 컴퓨터

성능이 보다 뛰어난 컴퓨터에 대한 수요는 상시적이므로, 슈퍼컴퓨터의 성능은 꾸준히 향상될 것이다. 몇 해 뒤면 현재 기종보다 10곱절 뛰어난 100경 FLOPS로 향상된 기종이 나오리라 예상된다.

그런 점진적 향상과는 별도로, 컴퓨터의 성능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이어진다. 현재 광학 컴퓨터(optical computer), DNA 컴퓨터, 신경 컴퓨터(neural computer) 및 양자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들 가운데 기능과 실용성에서 가장 큰 기대를 받는 것은 양자 컴퓨터다.

반도체에 바탕을 둔 고전적 컴퓨터와 달리, 양자 컴퓨터는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 같은 양자역학적 현상들(quantum-mechanical phenomena)을 이용한다. 고전적 컴퓨터에선 자료들이 2진수(binary digits; bits)로 코드화되어 두 개의 확정된 상태들 (0 또는 1) 가운데 하나에 속하지만, 양자 컴퓨터에선 상태들의 중첩들이 가능한 양자 비트(quantum bits; qubits)를 사용한다. 그래서 양자 컴퓨터에선 자료들이 동시에 두 상태들에 속할 수 있다.

이런 특질은 양자 컴퓨터가 엄청난 기억을 지닐 수 있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n qubit 양자 컴퓨터는 2n 상태까지 지닐 수 있다. 예컨대, 64 qubit 컴퓨터는 18 quintillion(1018) 개의 숫자를 기억할 수 있다.

이런 양자 효과들을 계산에 쓰는 방안은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1959년에 처음 제시했다. 뒷날 그는 양자 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자연은 고전적이 아니다, 제기랄, 그리고 만일 당신이 자연의 모의 실험을 하고 싶다면, 당신은 그것을 양자 역학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게다가 그것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이니, 정말로 멋진 문제가 될 것이다 (Nature isn’t classical, dammit, and if you want to make a simulation of nature, you’d better make it quantum mechanical, and by golly it’s a wonderful problem, because it doesn’t look so easy)”라고 말했다.

1980년 미국 물리학자 폴 베니오프(Paul Benioff)가 튜링 기계의 양자역학적 모형을 제시하자, 양자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양자 컴퓨터의 개발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많은 방안들이 실험되고 투자가 활발해서, 진화의 속도가 빠르다. 비록 양자 컴퓨터가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을 할지 아직 확실치 않지만, 그것의 잠재적 가능성은 빠르게 구체화된다.

고전적 컴퓨터는 양자역학적 현상들을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수학 모형을 만들 때, 많은 단순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 컴퓨터라면, 자연스럽게 양자 현상들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파인먼이 한 얘기다. 그리고 많은 양자 역학 연구자들이 양자 컴퓨터에 그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그런 학문적 고려는 보다 빠른 계산을 추구하는 상업적 고려에 밀린다. 그래서 양자 컴퓨터 연구자들은 그저 가장 빠른 계산을 추구한다. 이 분야에 가장 먼저 진출한 기업인 IBM은 2016년에 5qubit 양자 컴퓨터를 온라인으로 제공해서 일반인들이 이용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했다. 2017년엔 20qubit 컴퓨터를 개발했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다.

양자 컴퓨터가 지닌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한 강대국 정부들은 다투어 투자를 늘리고 있어서, 성취는 가속될 것이다. 양자 컴퓨터가 고전적 컴퓨터보다 특정 분야에서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가 곧 실현되리라고 예측하는 연구자들도 많다.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되는 과정에서 만나는 가장 큰 기술적 어려움은 컴퓨터 내부를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격리하는 것이다. 초미세 수준에서 이루어지므로, 아주 작은 외부 영향도 qubit들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실은 qubit들을 만들어 유지하는 물질들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결잃음(decoherence)을 통제하는 기술의 발전이 양자 컴퓨터의 진화를 결정할 것이다.

컴퓨터의 빠른 발전과 보급에 제약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은 에너지의 소비다. 컴퓨터가 슈퍼컴퓨터 수준으로 커지면, 막대한 에너지를 쓰고 거기서 나오는 열도 따라서 커진다. 따라서 소요 에너지를 줄이고 열을 외부로 발산시키는 일이 무척 중요해진다.

이 문제의 해결에서 큰 몫을 하리라고 기대되는 기술은 가역적 계산(reversible computing)이다. 에너지가 들고 열이 발생하는 것은 정보를 처리할 때가 아니라 정보를 지울 때다. 따라서 가역적 계산을 통해서 정보를 되도록 지우지 않으면, 이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앞으로 양자 컴퓨터가 발전해서 실용적 기술이 되려면, 양자 컴퓨터가 보이는 효율의 원천을 밝히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필립 볼은 “양자 계산(quantum computing)은 원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왜 가능한지 모른다”고 말한다. ‘얽힘’이나 ‘간섭(interference)’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지만, 이 문제는 양자 역학이 지금보다 훨씬 발전한 뒤에야 풀릴 것이다.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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