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2월 27~28일 베트남 2차 미북정상회담은 공동 기자회견도 없이 결렬되었다. 북한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유예 등 기존 조치에다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 및 폐쇄를 추가하는 선에서 유엔 안보리의 제재 ‘해제’와 종전선언을 포함하는 반대급부를 받아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제재 ‘완화’만을 허용하면서 영변 이외 핵시설에 대한 신고와 사찰도 필요하다는 ‘영변+α’를 고수함에 따라 하노이 선언은 무산되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외에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비밀 고농축우라늄시설 등 핵시설에 대한 비핵화 요구를 거부했다. 이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근본적으로 의심받게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북한은 유엔제제완화와 남북경제협력을 통해 유엔의 제재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경제는 살리면서 핵은 그대로 보유하겠다는 그들이 주장해 오고 있는 「핵·경제 병진정책」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긴급 식량구호를 요청한 것은 정확한 통계는 오리무중이지만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고난의 행군’이 코앞에 닥쳤던 1995년이었다. 당시 김영삼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 15만 톤을 지원했지만 식량을 싣고 갔던 선원들이 억류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부차원의 지원은 중단되고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 들어 ‘햇볕정책’으로 대대적인 대북지원이 실시되었다. 이어 노무현정부 들어 대북지원은 절정에 이르렀다. 김대중정부에서 8543억 원, 노무현정부에서 1조 8908억 원을 지원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한 대북지원에 힘입어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경제성장이 플러스로 돌아서자 북한은 1980년대에도 개발해 왔던 핵과 미사일 실험에 가일층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2006~9년 중 1차 2차 핵실험과 1차 2차 미사일발사실험이 완료되자 2010년에는 천암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어서 핵실험과 미사일발사실험은 계속되어 마침내 2017년에는 수소폭탄 실험과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ICBM) 실험도 성공했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북한이 2016년 들어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자 유엔 안보리는 2006년 7월(1695호)부터 2017년 12월(2397호)까지 총 11건의 대북제재결의를 하였다. 종전엔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물품 수입금지 같은 '한정적 제재'에 머물렀지만 북한의 핵 미사일실험이 연이어졌던 2016년부터는 북한 경제 자체를 봉쇄하는 '포괄적 제재'로 강력한 제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채택된 안보리 결의 2270호(2016년 3월)에선 북한의 최대 수출 품목인 석탄을 비롯해 철·철광의 수출이 '민생 목적'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5차 핵실험 후 채택된 2321호(2016년 11월)에서는 석탄 등 수출 제한을 대폭 강화했고, 2371호(2017년 8월)에서 이를 전면 제한했다. 6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2375호(2017년 9월)는 대북 유류 공급 30% 감축과 함께 대북 투자·합작사업을 금지했고, 북한의 화성 15호 시험 발사 후의 2397호(2017년 12월)는 대북 정유 제품 공급량의 연간 상한선을 20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감축하고, 해외 파견 노동자의 24개월 이내 송환도 강제했다. 이번 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위 5개의 제재조치 해제를 요구했다. 

이와 같은 유엔 안보리의 강화된 대북제재와 금강산관광객 피살, 천암함 폭침,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경협도 사실상 중단되어 북한경제는 다시 추락해 2017년 부터는 북한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중국 수출이 88% 급감하는 등 마이너스 3.5% 역성장으로 곤두박질쳤다. 2018년에는 성장률이 마이너스 8%까지 더욱 추락하면서 심지어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북한으로서도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와 남북경협이 절실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던 2차 미북정상회담이 소득 없이 결렬됨으로써 한반도의 운명은 다시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2차 미·북 정상회담 합의를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남북경협을 준비해 온 문재인대통령은  미북정상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3월 1일 3·1절 기념사를 통해 남북 경협과 '다자 안보체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한반도 체제' 구상을 밝혔다. 남북경협의 전제조건인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신한반도 체제는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새로운 경제협력 공동체"라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 하겠다"고 말하며 남북경협을 위한 '남북 경제공동위원회'까지 제안했다. 이념과 진영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치 않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1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선 "남북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 경협을 요구한다면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있다"고도 했다. 그런가 하면 미북정상회담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회담결렬 사흘만인 지난 3일에는 한미연합훈련을 폐지하는 발표를 해 국민들을 다시 한번 당혹하게 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볼 때 북한의 핵을 그대로 둔 채 추진하는 남북경협은 오히려 북한의  핵개발만 도와주는 등 위험한 측면이 적지 않다. 북핵을 그대로 두고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해제되기 어려울 것은 자명하다. 설혹 남한이 북한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개혁개방 없이 지원만으로는 경제성장이 불가능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1978)과 베트남의 도이머이(1986) 정책이 도입된 후 중국과 베트남 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 좋은 예다. 최근에는 쿠바도 사유재산 인정과 개인사업활동 허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을  했다. 현재 동북아정세는 일본의 정상국가화, 중국의 G1을 향한 중국몽 정책, 러시아의 재반등으로 군비확장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속에서 한반도는 북한핵으로 인한 남북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큰 불행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하루 빨리 세계사적인 흐름에 부응해서 북한의 비핵화 개혁개방이 추진되어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으로 다시는 한반도에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북한 비핵화 개혁개방만이 남북공존공영 상생의 길이다. 몇 가지 남북경협 원칙을 정리해 보면 첫째, 북한 비핵화에 대한 검증 가능한 핵리스트와 추진과정 점검 가능한 비핵화 로드맵 및 점검을 위한 워킹그룹 창설 정도는 제시 될 때 남북경협을 시작해야 한다.  둘째, 북한의 완전검증가능 불가역적인 비핵화 (CVID) 단계별로 상응하는 제재완화와 남북경협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독일식 단기보다는 선전홍콩방식의 장기계획 하에 추진되어야 한다. 단기간으로는 한국의 과중한 부담으로 한국을 재정위기와 장기침체로 몰고 갈 우려가 크다. 넷째,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고 결국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되어야 하므로 남북경협 소요비용과 조달방안 강구해서 국민동의 하에 추진되어야 한다. 다섯째, 정부 국제기구 민간의 담당과 역할 구분하여 추진해야 한다. 여섯째, 사용처가 검증 가능하고 투명한 절차에 의거 추진되어야 한다. 블록체인 기반 프로그램된 암호화폐 통해 정해진 목적에만 사용 가능하도록 투명하게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검증가능 불가역적 비핵화를 할 경우 모바일 기반 핀테크나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시티 건설을 지원하는 등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지원으로 경협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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