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정상회담 전후에 좌익과 우익이 보인 반응은 내용은 달라도 종류는 동일한 정신승리

홍지수 객원 칼럼니스트
홍지수 객원 칼럼니스트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에 마침내 평화가 도래한 듯 문 정권을 비롯한 좌익 진영은 희망에 가득해 흥분의 도가니였고 우익 진영은 트럼프가 “ICBM만 빼고 우리 으니 맘대로 해.”라고 할 거라며 정수리 바로 위까지 핵폭탄이 도달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가 트럼프가 회담을 결렬시키자 좌익과 우익은 희비의 쌍곡선을 교차시키며 천당과 지옥을 맞바꿨다.

좌익은 부풀어 오른 풍선 바람 빠지듯 풀이 죽어 망연자실했고 우익은 조마조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좌익 진영은 2차 회담 전에 김칫국을 양동이로 들이키고 올리브가지를 흔들어댔다면 우익 진영은 회담이 결렬되어 불길한 확신이 무산되자 환호하면서도 죽어도 트럼프의 결단이라고는 인정하기 싫은지 회담을 결렬시킨 외적 요인을 찾아내느라 분주했다. 좌익 진영이야 본래 정신승리 빼면 시체이니 그렇다고 치고 회담 결렬 후에 나온 우익 진영의 반응도 탁월한 정신승리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싱가포르 1차 회담이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속은 완전한 실패라며 펄쩍펄쩍 뛰었던 우익 진영은 2차 회담 후에는 미국의 집단지성이 스몰딜을 막았다느니 트럼프가 1차 회담 실패로 비등해진 국내외 압력에 굴복해 다행히 협상이 결렬됐다느니 하며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을 능가하는 판타지 소설을 써댔다. 심지어 트럼프가 협상준비를 제대로 안 해서 결렬됐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번에는 작동한 미국의 집단지성이 싱가포르 1차 회담 때는 가출했었나? 트럼프가 정말 오로지 압력에 굴복해서 회담을 결렬시킬 만큼 자기 생각이 없을까? 트럼프가 협상준비를 제대로 했는지 따라다니면서 확인이라도 했나? 정신승리도 이 정도면 좌익 못지않은 심각한 중증이다.

좌익은 위장평화로 트럼프를 속일 수 있을만큼 자기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우익은 트럼프가 위장평화에 속을 만큼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아무 생각 없는 미치광이 또는 멍청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좌우를 막론하고 언제쯤 인정하게 될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혹자는 트럼프가 중학생 수준의 어휘를 구사한다며 깔보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복잡한 내용을 쉬운 말로 전달하기가 훨씬 어렵다. 트럼프가 협상의 귀재라고 생각하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곁에 유능한 참모들을 둔 여느 미국대통령과 다르지 않다고만 생각해도 좋겠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북핵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회담 한두 번으로 해결될 만큼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가짜뉴스 살포의 선봉에 선 미국 주류언론을 아직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트럼프의 탄핵이 임박했다느니,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가 국회 청문회에서 폭로한 내용 때문에 재선은 물 건너갔다느니, 국내에서 궁지에 몰려 급히 돌파구를 마련하느라 어설프게 북핵문제를 매듭지으려 한다느니 등등 여드레 낮밤으로 푹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들 좀 그만 했으면 한다.

전례 없이 집권 세력에게 적대적이고 선동적인 주류언론에 둘러싸여 꼭두새벽까지 트위터를 날리고 공격적으로 맞서는 트럼프의 “대통령답지 않은” 언행에 대한 경멸과 불편함이 드리운 편견의 장막을 걷어내고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볼 때다. 좌우 양쪽 진영 모두 지난 2년 동안 그 정도로 헛발질들을 해댔으면 이제 트럼프가 나름의 전략을 통해 막강한 패권국가의 국익을 추구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통수권자임을 인정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북핵문제를 미국이 어떻게 풀어갈지 가늠하고 우리 나름의 대책과 입장을 정리하려면 트럼프가 정상적인 통치자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홍지수 객원 칼럼니스트('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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