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당시 김대중 국민연합 공동의장, 서울 YWCA 강당에서 '민족혼과 더불어' 연설
"하느님은, 6․25 때 공산당 감옥에서 학살 직전에 나를 살려 주셨고, 1971년 선거 때 자동차로 나를 치어 죽이려고 할 때 살려주셨으며, 1973년 바다 속에서 살려주셨습니다. 그 분이, 김대중이가 뭔가 자기 도구로 필요하니까 살려주셨지 그렇지 않으면 살렸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이 나를 대통령으로 써먹을 생각이면 만인이 반대하더라도 대통령을 시킬 것이고…"

[편집자 주] 이 글은 1980년 사면 복권된 김대중 당시 국민연합 공동의장이 1980년 3월26일 서울 YWCA 강당에서 연설한 '민족혼과 더불어' 연설 전문으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재판 당시 증거물로 제출됐다. 이 연설은 김대중 의장이 1975년 이래 처음 공개된 장소에서 갖는 대중연설이란 의미와 함께 1980년의 시국을 바라보는 김대중 의장의 시국관과 정치참여 의지 등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이 연설문 원고엔 몇 년만에 처음 대중연설을 시작하는 흥분된 분위기, 그리고 과열된 청중들의 반응 등이 느껴진다.
김대중 의장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조사과정에서 "연설문 서문은 고은씨가, 나머지 대부분은 본인이 구상하여 작성했다"고 진술했다. 계엄사 검찰부는 이 연설 내용 중 “민주주의란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 “장관, 총리, 대통령 한 사람이 몇백 억, 몇천 억 부정축재를 하고 반공법을 악용해 엉뚱한 사람을 공산당으로 만들었다”는 부분을 문제삼았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사면복권 된 김대중 당시 국민연합 공동의장은 YWCA 초청을 받아 '민족혼과 더불어'라는 선동적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김대중 의장은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치지 않은 민주주의는 진짜가 아니다"라고 연설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사면복권 된 김대중 당시 국민연합 공동의장은 YWCA 초청을 받아 '민족혼과 더불어'라는 선동적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김대중 의장은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치지 않은 민주주의는 진짜가 아니다", "이승만 박사는 항일독립운동을 함께 한 애국자들을 모조리 판자촌에서 추위와 굶주림 속에 죽어가게 만들고, 친일파들만 모조리 끌어다가 자기주변을 쌌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 나라 민족정기는 훼손되었다고 연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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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혼과 더불어' 1980년 3월26일 YWCA 초청 김대중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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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여기 YWCA 강당에 모이신 여러분! 그리고 4층과 2층 복도와 밖에 모여 계신 여러분! 여러분께 진심으로 반갑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제가 10월 유신 이후 1975년 이래 처음으로 이와 같은 공개 장소에서 여러분께 말씀드리게 된 이 날이, 바로 제가 얻은 '민족혼'이라는 제목에 알맞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위대한 혼인 안중근 의사께서 지금부터 70년 전 여순 감옥에서 이 민족을 위해 순결한 그 날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 이 위대한 민족혼에 대해서 그 명복을 비는 마음에서 묵념을 잠시 올리고자 합니다.

지금 이 시간 1980년 3월26일, 세계 도처에서는 많은 민족들이, 많은 민족의 혼들이 자기들을 엄습한 시련과 대결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민족은 소련제국 침략의 시련에 대결하고 있고, 아랍과 이스라엘 민족들이 평화와 해방을 위해서 혼신을 다 바쳐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남미는 자유와 빈곤의 타파를 위해, 아프리카는 후진의 굴레를 벗기 위해, 유고슬라비아는 티토가 죽은 이후 소련의 제국적 침략 위험에 대결하기 위해, 지금 모든 민족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10․26 사태 이후 우리 국민이 처음으로 얻은, 국민의 힘에 의한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서 여러분과 우리가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나는 유신체제 7년 동안, 혹은 망명생활에서, 혹은 납치를 당하면서, 혹은 3년의 감옥생활에서, 혹은 병중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연금생활에서, 공민권을 박탈당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아픔을 같이 해 왔고, 여러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10․26 사태 이후 오늘, 이 사람이 독재자의 칼날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병신이 돼다" "식물인간이 됐다" "머리가 돌았다"라고 하던 그 김대중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여러분의 힘에 의해서 공민권을 부활해서 오늘 여러분 앞에 나오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환호, 박수, 만세).
이것은 오직 내가 믿는 하느님의 덕이요, 우리 조상들의 덕이요, 국민 여러분의 덕입니다. 김대중이가 오늘 여기에서 건강하게 여러분 앞에 다시 나타날 수 있었다는 것은 김대중 자신의 승리나 기쁨이 아니라 독재와 싸운 우리 모든 국민의 위대한 투쟁과 승리의 하나의 증거로서 내가 여기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옳소, 박수).
그러나 가슴 아픈 것은, 아직도 우리 민족시인 김지하 동지를 위시해,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 피고들과 양순식, 박종태, 백기완 등 여러 동지들이 옥중에서 아직 못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복권이 못되고 있습니다. 많은 언론인들과 직장인들이 아직 복직이 안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이 하루속히 석방되고 복권되고 복직되도록 여러분과 같이 당국에 대해서 요구하고 투쟁하면서 마음으로부터 그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건투와 건강을 빌어마지 않는 것입니다(박수, 환호).

죽지 않는 민족의 혼

여러분! 오늘 YWCA에서 저한테 '민족혼'이란 제목으로 말을 하라고 했는데, 나같이 본시 정치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말은 대단히 어려운 제목으로서, 아닌 게 아니라 고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요약해서 문장으로 몇 마디 말씀을 드리고 그것에 근거해서 강연을 진행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여러분께 나누어드린 전문을 여기서 제가 먼저 낭독을 하고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①민족혼은 그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단련되고 발전된 가운데 형성된 민중의 마음이다. 우리 민족은 수난의 민족이다. 대륙으로부터, 바다로부터, 안에서의 지배자로부터 시달리고, 찢기고, 짓밟히는 가운데 용케도 견디어 오면서 다져지고 발전되어 온 우리 민족이다. 그들의 '다친 혼', '억눌린 혼', '신음한 혼', '견디어낸 혼', '일어선 혼', '싸운 혼'이 한데 어울려 응결된 것이 우리 한민족의 혼이요,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가슴속에서 고동치고 있다.
②민족혼의 개념은 고정개념, 권위개념이 아니다. 운동의 개념이다. 민족혼은 민족의 역사와 삶의 변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민족혼은 이미 만들어진 신성불가침의 절대적인 상수가 아니라, 시대를 따라 발전하는 변수이다. 그러나 민족혼은 결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존엄성, 정당성을 옹호하는 역사적 원천으로서 민족의지의 일관성을 가진다. 말하자면 민족의 주체적 선율이다.
③민족혼은 우리 민족의 낙관적 보장에도 작용해 왔지만, 그러나 민족의 위기에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어 민족의 실체로 肉化되어 왔다. 고려의 항몽(抗蒙)운동, 조선의 임진왜란, 한말의 동학농민혁명, 의병운동, 그리고 독립협회운동, 일제하 3․1 운동, 해방 후 6․25 공산침략의 극복, 4․19 학생혁명, 그리고 유신체제 아래서의 반독재 민권투쟁과 부마(釜馬)사태 등이 민족혼의 역사적 소재를 밝히고 있다. 민중의 비극, 위기, 고통을 통해서 민족혼은 기왕의 민족정신의 관성을 넘어서 혁신한다. 역사적 발전법칙에 의해서 새로운 민족혼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④민족혼의 형성에 있어서 원시 시대의 샤머니즘, 고대 중세의 불교, 근세의 유교들이 상층구조의 환경이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족혼 자체는 아니다. 민족혼은 지배사상이나 지배논리에 있지 않고 그것들과 대응하는 민족 내부 대다수 민중에 의한 총화적 염원이 형상화된 것이다. 따라서 민족혼은 민족의 실체인 민중의 소리다. 민족혼은 반봉건, 반외세, 반독재의 절규다. 따라서 민족혼은 우리 근대 민족주의의 바탕이다.
⑤민족혼은 투혼이다. 민족의 전투적, 적극적 의지의 경험에서 민족혼은 과시된다. 침략자와 싸워야 하고 깊은 잠과도 싸워야 한다. 모순과 싸워야 하고 깊은 잠과도 싸워야 한다. 악 앞에서 용기 없는 민족혼은 또 하나의 악이다. 그러나 민족혼이 투혼이라 해서 무조건 타자를 적대시하는 것은 아니다. 싸운 혼만이 전우를 안다. 투혼은 동시에 전우애, 동지애, 형제애, 선린애의 혼이다.
⑥민족혼은 다른 민족의 혼에 대한 적대개념이 아니다. 배타주의는 민족혼을 타락․멸망시키는 아편이다. 발전하는 민족혼은 인류가 하나라는 개념을 수용한다. 모든 민족과의 연대화, 형제화를 실현코자 한다. 민족혼은 스스로의 독창적 발전을 고집하면서 동시에 각 민족과의 공동체적 상호존립을 추구한다. 한국 민족의 위대성이 전 세계 위대성의 바탕이며, 전 세계의 위대성이 한국 민족의 위대성과 밀접히 관련되기 때문이다. 세계를 향해 발전하는 민족혼은 영원한 생명이요, 평화의 원천이요, 친교의 바탕이다"
이상입니다.
여러분! 우리 민족은 참으로 세계 각국의 역사에 없을 정도로 위대한 저력과 독자성을 보였습니다(박수).
내 민족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과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4천년 전 중국 황하 중류에 한족(漢族)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동서남북을 모두 동화시켜가면서 중화사상으로 지배해 갈 때, 마침내 1230년대에 정복해 온 몽골족에게 1백년간이나 지배받으면서 오히려 몽골족을 모조리 동화시키고, 1630년에 침략한 총족(淸族)에게 3백년간이나 지배받으면서도 결국은 만주를 모조리 삼켜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서만은 기원전 1세기에 한무제가 한사군을 설치한 이래 4백만 한사군 지역에 계속적으로 한민족을 종속시켰지만 우리 민족은 결코 중국화되지 않고, 우리의 독자적인 언어와, 의복과, 음식과, 생활습관이 분명히 중국화되지 않은 한민족의 본질을 이어왔습니다(박수).
화교들이 인도차이나의 3국, 타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까지 상권 및 경제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만은 실패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항몽투쟁, 임진왜란, 동학혁명, 의병투쟁, 독립협회운동, 3․1 운동, 6․25, 4․19, 반유신투쟁, 부마사태 등 일련의 민족주체성과 민족혼을 수호하는 가운데, 중국에도 일본에도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자성을 유지해 온 이 위대한 민족에 태어난 것을 우리는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우리는 조상들에 대해서, 우리들의 할아버지와 우리들의 먼 조상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혼백을 이어받은 우리 국민에 대해서, 자랑과 감사의 뜻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박수, 옳소!).
여러분! 여러 사람은 말하기를 민주주의는 한국 민족에게는 적합치 않다고 그럽니다. 과연 민주주의가 우리 민족에게 적합치 않은가? 우리 민주주의가 이 땅에서 뿌리박을 수 없는가? 양자강의 柚子가 북방으로 가면 탱자가 되듯이 민주주의는 여기에 자리 잡을 수 없는가?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의 역사에 나타나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민족이고, 우리 민족의 내부에 민주주의의 씨가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서구 민주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 의지-예수가 예루살렘의 십자가에 못박히러 올라가면서…(청중들의 열띤 환호로 강연이 일시 중단되었음)
여러분!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 말씀을 계속하겠습니다.

"우리의 근대화의 길을 연 위대한 동학혁명!"

우리 역사에 단군은, 하늘의 환인이 그의 아들인 환웅을 이 땅에 내려 보낸 것은 홍익인간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민본주의, 즉 '백성이 주(主)'라는 사상은 그때 이미 싹터 있었던 것입니다. 가락국의 수로왕은 자기 왕비에 대해서 자식 하나를 그쪽으로 점지해 주면서 왕비의 성으로 許씨를 주었습니다-여권사상과 통하는 것입니다.
신라시대의 6부 부족들이 모여서 하던 직접민주주의 형태인 화백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제도와 상통하는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에서 하던 임금을 중심으로 한 회합의 남방제도, 백제와 고구려의 도당제도, 여기에도 민주주의의 흔적을 찾아보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조 유교통치의 기초를 세운 정도전은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원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율곡과 조광조는 언로대계(言路大計)로서 언론의 자유를 열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옳소! 박수).
실학을 최초로 체계화시킨 유형원 및 이익 등 실학의 대가들과 박지원, 박제가 등 북학(北學)의 대가들은 국민을 위한 실천적 학문의 중요성을 주장했습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도 계급타파와 부패된 정치에 대한 민중의 반항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춘향전'에서 춘향이는 "정조를 지키는데 양반과 상놈의 차이가 있느냐?"고 하면서 인권과 계급타파를 주장했으며, '춘향전'에 나온 민중들은 그 당시의 무도한 지배계급에 대한 규탄과 반부패 투쟁의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옳소! 박수).
동학의 창시자인 최수운 선생은 마침내 '사람이 즉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위대한 민주주의 사상과 의심없는 민중의 이념을 주장하고 있으며, 2대 교주인 최해월 선생은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 섬기길 하늘 섬기듯 해야 한다'는, 하늘과 사람을 똑같이 보는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주장할 수가 있습니다(박수).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대화의 길을 연 위대한 동학혁명! 독일 사람이 자랑하는 1530년대의 '뮌쩌'의 농민혁명보다 몇 배나 위대한 이 동학혁명! 전봉준 장군은 이 혁명을 통해서 노비 해방과, 과부의 해방과, 토지개혁과, 탐관오리의 징계처분과, 민중의 직접통치와, 반제국주의 투쟁과, 이러한 위대한 근대화와 반외세의 민주주의의 문을 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박수).
기독교와 서구 민주주의가 들어온 이후에 이것은 더욱 발전해서 독립협회의 반외세 근대화운동, 3․1 운동의 반제국주의 민주화운동, 또한 4․19의 민주주의와 연결이 되고, 박정희 치하의 반유신투쟁과도 연결이 되고, 부마사태와도 연결이 되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사상이요, 민본사상인 것입니다(박수).
여러분! 민주주의가 우리 풍토에 적합치 않다고 하는 사람은, 수천년 전 단군 때부터 이미 싹튼 이 민주주의 싹, 적어도 1894년 동학혁명 이래 이 나라의 근대화와 민족 자주독립 정신이 백년 이상 우리 민족에 뿌리박아 온 사실을 무시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우리 민족과 조상에 대한 모독이요, 역사에 대한 무식이요, 자기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민족 현혹의 궤변이라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지적하고 싶습니다(옳소! 박수).
10․26 사태 이후 나는 한국에 와 있는 거의 모든 외국 대사들을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제는 우리 민족이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민족이고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서는 이 나라의 국민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민족으로 세계 공인을 받고 있습니다(박수).
여러분! 오늘 YWCA 강연은 비정치적인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현 정부나 특정 정당에 대해서 직접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 우리 민족혼의 최대의 부르짖음은 무엇인가? 그것이 자유와 평등이 구현된 민주주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성장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두 번 실패했습니다. 8․15 이후의 민주주의는 미국이 주었지만 우리 힘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승만 박사가 이것을 짓밟았습니다. 4․19 후의 민주주의는 국민 전체가 아닌 학생이 중심이 되었다가 혁명 후에 학원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혁명주체 없는 민주주의이므로 박정희 장군이 이것을 쉽사리 박탈해 버렸습니다. 우리 모든 국민은 유신치하에서 마침내 반성하고 깨달았습니다. "내 힘으로 하지 않은 민주주의는 진짜가 아니다.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치지 않은 민주주의는 진짜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사, 신부님들을 앞세우고 감옥에 가고, 밖에서 기도회로써 싸우고, 직접 참여하지 못한 국민들은 마음으로부터 이것을 성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응결해서 폭발한 것이 부마사태요, 따라서 10․26 사태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어떤 분이 말한 바와 같이 '사고'가 아니라 10․26 사태는 7년간의 우리 민족의 끈질긴 반유신․반독재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옳소! 환호, 박수).
그런데 아직도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 의욕과 역량을 무시하고 이것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전시하에서, 국민소득이 50불밖에 안 될 때도 공산당과 싸우면서 직접선거를 하고 지방선거를 해낸 우리 국민을, 30년 전에도 그것을 해낸 국민을, 지금. 우리에게 직접선거가, 지방자치가, 민주주의가, 안보와 경제 건설을 위해 부적당한 양 데마고기(demagogy)를 퍼뜨리는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용기와 결심만 보인 게 아니라, 10․26 사태 이후도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자제를 해서 질서를 지키고, 어떤 혼란을 구실로 새로운 독재를 하려는 자들에게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현명하게도 자제한, 그러한 책임감도 가지고 있는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용기와 책임감, 이 양면에서 민주 국민으로서 성숙을 보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인이 1971년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여러분에게 "이번에 정권교체가 안 되면 총통제의 시대가 온다"고 말을 했고 또 그것이 불행히도 적중했지만(박수), 이제 1980년대의 문턱에 서서 여러분이 내게 다시 한번 "70년대를 네가 어떻게 보느냐?"를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의 이 위대한 지금의 성숙도로 봐서(우리의 목전에 여러 가지 난관이 있고 파란곡절이 예상되지만) 80년대에는 국민이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어서,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대접을 받는, 자유와 정의가 실현되는 민주주의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여러분에게 단언합니다(옳소! 환호, 박수).
그러나 여러분! 민주주의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옛날에 기하학의 선생인 유클리드는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가 기하학을 배우다 너무 어려우니까 "좀 쉽게 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기하학에는 왕도(王道)가 없습니다"라고 그랬습니다. 왕이라고 해서 특별히 봐줄 방법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민주주의에도 왕도가 없고 쉽게 얻는 방법이 없습니다. 헌법의 금언에 "모든 국민은 자기 능력 이상의 헌법을 가질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아무리 헌법이 민주적이고 훌륭해도 국민이 이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국민이 이것을 지키려고 결심을 하지 않고, 국민이 이것을 가지기 위해서 싸우지 않고, 국민이 여기에 희생과 땀을 바치지 않으면, 그런 국민은 좋은 헌법을 가질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민주주의는 우리들의 계속적인 희생과 노력과 투쟁을 요구한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면서, 여러분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독재에 진정으로 몸서리친다면, 앞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민주주의의 대열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간곡히 호소하는 것입니다(옳소!).

국민의 편에 서서

존경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자랑스런 민족혼을, 여러분과 똑같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나아가는 나의 길을 여러분께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나는 내 일생의 교훈으로써, '어떤 경우에도 국민을 배반하지 말고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국민의 편에 서라'는 것, 이것이 내 인생과 정치의 신조입니다. 우리집 가훈이 세 가지 있는데 그 중 첫째가 '하느님과 국민에게 충실하라'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둘째는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야 된다'이며, 셋째는 '절대로 부자가 되지 마라'는 것입니다(박수, 옳소! 환호).
나는 내 자식들에게 말하기를 "돈과 하느님은 같이 섬길 수가 없고, 돈과 양심을 같이 섬길 수가 없다. 돈은 먹고사는 데 부족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 이상의 부를 가지게 되면 부의 노예가 되고,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고, 국민으로부터 격리되고, 그리고 교만해지고 타락한다. 따라서 만일 너희들이 경제계에 나가서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는 등등 경영자가 되는 것은 좋지만, 만일 부자가 되면 아버지와 너희들과는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을 나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국민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을 정치인으로서의 최대의 기본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신문에는 대통령 후보 운운하지만)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둘째, 셋째입니다.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내 양심에 충실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옳소! 박수).
국민과 하느님이 주신 내 양심에 충실하다가 기회가 있어서 대통령을 맡게 되면 봉사할 것입니다(박수, 환호).
그러나 국민과 양심을 버리고 '무슨 수단을 쓰든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 이것은 내가 죽으면 죽었지 추구할 수 없는 길입니다(옳소! 박수).
여러분! 무엇이 된다는 것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완용은 영의정이 되었고 총리대신이 되었고 한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서른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완용이가 위대하고 현명했고 청춘에 목숨을 버린 안중근 선생은 실패했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얘기한다면, 나는 다음 정권, 그렇게 대단한 매력이 없습니다. 왜? 첫째, 경제만 보더라도 박정희씨가 아주 망쳐 놓았습니다(박수, 옳소! 환호).
이것을 맡아놓고 수습한다는 것은 마치 다 파 먹은 김칫독에다 머리를 집어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옳소! 박수).
4년 동안 겨우 뒤치다꺼리나 하고나면, 그것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뒤치다꺼리 하고나면 4년은 끝나는 것입니다(웃음, 박수).
남북문제, 노동문제, 청년․학생문제, 군대를 통솔하는 문제 등등 다음 대통령의 짐이 여간 무겁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내 개인적인 생각을 하면, '누가 한 4년쯤 해서 실컷 고생하고 난 뒤 그때쯤 내가 맡는 게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박수, 환호).
뿐만 아니라 나는 여러분에게 말씀했듯이 국민을 위해서 내가 싸워오다가, 바다에서 水中孤魂이 되려다 살아 왔습니다(박수).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것만도 감사합니다. 이 나라에 민주주의만 될 수 있다면, 우리 국민에게 자유와 정의가 회복되어서, 또다시 눈물과 한숨과 비통의 생활을 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확고히 뿌리박아 국가의 안보가 튼튼히 되고 통일의 문이 열려서 나의 사랑하는 젊은 자식들이 동족상쟁의 총탄 앞에 서지 않을 수가 있다면, 나는 金九 선생이 말한 대로 총리는커녕, 국회의원은커녕 중앙청 정문의 문지기가 되더라도 한이 없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합니다(박수, 옳소! 환호).

가장 작은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지난 2월29일자로 복권이 됐지만, 법적으로만 복권이 되었지 정치적으로는 아직 제대로 복권이 되지 않았습니다(옳소).
텔레비전 회사, 신문사 등에서 나한테 인터뷰나, 수기를 요청했다가 전부 캔슬당했습니다. 어떻게 남하고 같이 어울려서야 조금씩 기사가 나가지 단독으로 얘기하면 제대로 나가지 않습니다(박수).
김대중의 납치사건은 쓰지도 못하게 하고, 김대중을 찬양하는 것은 쓰지도 못하게 하고, 심지어 1970년, 지금부터 10년 전에 낸 책을 출판사에서 인쇄해 놓고 팔려고 해도, 3金씨 중에서 내 책만 못 팔게 합니다(박수).
여러분! 나는 아직도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여기서 공개할 수 없는, 그동안 많은 치욕과 고통과 괴로움을 당했지만 그러나 나는 믿습니다. 나를 바닷속에 상어밥이 되게 던지려고 할 때도,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국민은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으며, 내가 법정에 섰을 때도 판사를 향해, 검사를 향해, "당신들이 나를 지금 재판하지만 역사와 국민은 내 편"이라는 것을 얘기했습니다(옳소! 박수).
누구에게 천대를 받건, 누구에게 멸시를 받건, 누구에게 박해를 받건, 아니 오늘 생명을 잃건, 내 국민만 나를 버리지 않고, 내 국민만 나와 같이 있고, 내가 내 국민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한은, 김대중에겐 불행이 없고 김대중에겐 슬픔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박수, 옳소!).
따라서, 나는 지금 게딱지 같은 국민주택에 살고 있지만(웃음), 국민을 배반하면서 부를 얻는 것보다는 하느님과 우리 국민을 택했습니다. 국민을 배반하면서 안전을 택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이 신념은 내가 죽는 그 날까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박수).
나에게 이와 같은 신념을 준 근원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물론 위대한 우리 국민의 성원입니다. 그러나 한 발자국 더 들어갈 때, 그것은 내가 믿는 하느님의 덕택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 신자도 있고 아닌 분도 계시겠지만, 신자든 아니든 간에 내 말씀을 들어주시는 것이, 혹은 여러분에게 참고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절대 다른 종교에 대해서 어떠한 배타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나는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입니다. 예수는 내 스승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예수는 나의 형님입니다. 나는 그의 제자이기 때문에 스승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유대나라 중에서도 제일 천대받는 갈릴리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지배계급이 사두가이파, 당시의 엘리트인 바리사이파를 다 버리고, 저 소작인, 날품팔이, 창녀, 문둥병 환자, 稅吏, 이런 인간 취급받지 못한 소위 히브리 말로 '암 할레스(땅의 백성들)'를 찾아가 일생 동안을 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인간적 자각 및 권리의식을 고취했기 때문에 마침내 로마 제국으로부터 민중선동죄의 정치범에 몰려 골고다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는 돌아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죽어서 다시 부활하여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겠다. 그때 산 자와 죽은 자를 모두 앞에 놓고 심판하되, 너희들 중에 의로운 자는 바른편에 앉히고, 죄 있는 자는 왼쪽에 앉히겠다… 이 의로운 양들에게는 내가 말하기를, '너희들은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 배고플 때 밥을 주고, 목마를 때 물을 주고, 추울 때 옷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잠재워 주고, 감옥에 갔을 때 찾아주었고, 병들었을 때 간호해 주었기 때문에 하늘에 올라가서 천국의 영복을 누리리라'…
그러나 왼쪽의 염소들에 대해 즉, 나쁜 무리들에 대해서는 '너희들은 나에게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서 영겁의 유황불 속에서 고통을 받아라' 그러면 너희들은 말할 것이다. '주여! 내가 언제 그렇게 당신께 도와준 일이 있습니까?', '주여! 내가 언제 그렇게 당신께 안 도와준 일이 있습니까?' 그러면 내가 말할 것이다. '너희 옆에 가장 작은, 가장 못나고, 어리석고, 약한 그 작은 자에게 밥 주고, 물 주고, 재워주고, 도와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일이고, 그 사람들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라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나의 스승 예수는 우리에게 이와 같이 우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 싸운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의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박수).

"목욕탕에서 나를 토막살인해 배낭에 담아 나가려고 시도"

나는 망명생활 속에서도 매일 기도를 하고,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기를 바라고, 나를 지켜주기를 바라고, 밤마다 일기장에다 우리 조국과, 가족과, 내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나는 1973년 8월8일 일본 그랜드 파레스 호텔에서 납치됐습니다. 그 사람들은 복도에서 나를 끌고 옆방으로 가서, 목욕탕에서 나를 토막살인 해 배낭에 담아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여의치 않아 나를 마취시켜 끌고 엘리베이터로 지하 차고까지 가서 차에 태워 대여섯 시간 달린 후, 어느 항구 가까운 도시의 건물 3층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또 나를 다시 묶고, 얼굴에 코만 빼놓고 포장용 테이프를 붙이고, 이렇게 해 가지고 나를 다시 끌고 바다로 가서 란치(Launch)에 태워서 큰 배에 실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에 나를 마침내 물에 던지기 위해서 내 팔을 이와 같이 해서 뒤로 묶고, 입에다 나무토막을 물리고, 붕대로 감고, 양눈에 다섯 개씩 붕대를 감고 양발을 묶고, 뒤에다가 판자를 붙여서, 목을 세 군데나 묶고, 바른 팔과 왼쪽의 발목에다 약 3~4kg의 물체를 달고, 그래도 부족해서 솜이불을 다시 붙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나는 '이제 내가 죽는구나…! 그까짓 거 한 1~2분 물 속에서 허우적대면 죽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인간은 천박한 것이어서 '상어에게 반 토막을 물리더라도 반 토막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그런데 갑자기 그때 예수님이 옆에 섰습니다(내가 예수님을 생각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의 옷소매를 붙잡고, 두 손으로 이와 같이 붙잡고 '나를 살려주시오! 우리 민족을 위해서 아직도 할 일이 있는데 내가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나를 살려주시오!' 이와 같이 예수에게 매달린 그 순간에 "펑!" 소리가 나면서 눈에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섰던 사람들이 "비행기다!" 하고 뛰어나갔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그것이 나의 생사의 갈림길이었습니다.
나는 분명히 믿습니다. 옥중에서 나는 병에 걸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치료도 못 받았습니다. 나는 마지막에 우리 주님께 매달려서 내 몸을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원을 했습니다. 마침내 1년 후에 나는 몸이 회복되었고, 3년 전에 들어갈 때는 지팡이를 들고 절뚝거리며 들어갔는데 3년 후에는 지팡이를 던지고 건강한 몸으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박수, 환호, 옳소!).
하느님이 나와 같이 계신 것을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동안 연금생활에 있을 때 도처에서 말하기를, "김대중이가 폐인이 됐다더라" "반신불수가 됐다더라" "머리가 좀 이상해져 버렸다더라"고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다 들었을 것입니다. 요사이 내가 신문에 가끔 나도 "정말로 건강해졌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여기 나온 것은 이 강연이 첫째 목적이지만 또 하나 부대적인 목적은 내 '현품'을 여러분에게 보이고(웃음, 박수), 정말로 내가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 여러분이 확인해 주십사 하고 온 것입니다(웃음, 박수).

하늘의 큰 뜻에 따라

여러분! 기독교에는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 구원'이고 하나는 '사회 구원'을 말합니다. 영국의 존 번연이란 사람이 쓴 '천로역정'이란 소설을 보면, 거기 주인공이 가족 및 무엇이나 다 버리고 자기 혼자만 천국에서 살려고 막 도망쳐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직도 우리 敎界에는 "개인만 구원되면 이웃이야 어떻건, 사회야 어떻건 그것은 크게 관심할 바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반면에 "기독교는, 예수의 뜻은 가난하고 억눌린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내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 두 가지가 다 옳고, 다 필요한 것입니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은 마치 손뼉의 앞과 뒤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아들로서 바르게 살지 않는 사람이, 훌륭한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이웃을 위해서 훌륭한 봉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웃을 위해서 훌륭한 봉사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느님의 아들로서 올바르게 살게 됩니다. 이 두 가지는 떼어놓을 수 없는 앞과 뒤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 더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혹시 여러분 중에서 종교를 믿는다는 것을 마치 미신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20세기의 최대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도, 과학을 무시하는 종교는 미신이지만 종교를 무시한 과학은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실존주의에는 유신론과 무신론의 계통이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무신론 계통입니다)는 말하기를 "인간은 아무 목적과 이유 없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활 가운데서 이 세상에 던져졌다. 가만히 보니까 이 세상은 모순과 부조리 투성이다. 그러나 이왕에 나왔으니 살지 않을 수 없으니까, 살아 있는 동안만은 힘차게 자기 생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지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러나 죽으면 그대로 그만이다"고 했는데 이것이 그 사람의 실존주의 철학의 줄거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1956년 뉴욕에서 돌아가신 불란서 출신 테이야르드 샤르뎅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은 자기의 신학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진 않았지만 만일 굳이 붙인다면 '진화론적 신학'을 말했습니다.
그분의 얘기를 내가 아는 고고학이든가 인류학 같은 분야에서 얻은 지식과 합쳐 추리해 얘기하면, 이 지구는 지금부터 약 40억년 전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 지구에 생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약 20억년 전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원조인 먼 옛날의 인간과 비슷한 원숭이 같은 존재가 나온 것은 약 3백만년 전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 후로 쭉 계속 되어서 50만년 전에는 북경원인 혹은 네안데르탈인, 이런 것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와 같은 호모 사피엔스, 지성을 가진 인간이 나온 것은 지금부터 3만년 내지 5만 년 전밖에 안 됩니다. 아주 최근입니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이전까지 해서 지금부터 1만년 내지 5만 년 전까지 구석기시대였습니다. 돌을 있는 그대로 썼습니다. 그러다 약 1만 년 전부터 돌을 여러 가지로 갈고, 모양을 닦아서 쓴 신석기시대로 들어왔습니다. 7~8천 년 전부터 청동기시대로 들어왔습니다. 약 5천 년 전부터 철기시대로 들어왔습니다. 오늘날은 아직도 철기문명입니다.
이 지구상의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식물은 다 진화되고 발전되어 옵니다. 지금도 진화되고 있고 내일도 진화되어 갑니다. 이것은 과학입니다. 샤르뎅 신부의 말은,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이 이 세상을 만들 때 완전한 것만 만든 게 아니고, 이 세상을 만들어서 인간에게 맡기면서 이것을 다스리고 '개량․발전시키라고 우리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이 세상에 나올 때 하느님이,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때까지, 그때를 촉진시키기 위해 이 세상을 더욱 진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그 임무를 띠고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나온 이상은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돈 열심히 벌고, 그림 열심히 그리고, 운동 열심히 하고, 정치도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자기 이기적 목적을 위해서 하지 말고 이 사회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돈을 벌고, 운동을 하고, 정치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이 세상을 진화시키는 그 일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죽으면 예수의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희망을 갖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르트르의 말과 같이 목적 없이 나왔고, 희망 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어 나왔고, 의의 있게 살고, 희망 있게 죽는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하나도 하느님의 길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중세에 지동설을 탄압하는 등의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른 것, 그것은 교회의 과오지 하느님의 과오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여러분께 내가 믿는 이 기독교에 대해서 그것이 바로 오늘, 내가 이렇게 지금까지 약간의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는 근거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지난번에도 어떤 성직자 여러분하고 말씀을 나눌 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나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했겠지만, "당신이 아무래도 대통령이 돼야 할 텐데…"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내가 말했습니다. "그런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내가 6․25 때 공산당 감옥에서 학살 직전에 나를 살려 주셨고, 1971년 선거 때 자동차로 나를 치어 죽이려고 할 때 살려주셨으며, 1973년 바다 속에서 살려주셨는데 그 분이, 김대중이가 뭔가 자기의 도구로 필요하니까 살려주셨지, 그렇지 않으면 살렸겠습니까?(박수)
따라서 하느님의 뜻이 나를 대통령으로, 심부름꾼으로 써먹을 생각이면 만인이 반대하더라도 나를 대통령으로 시킬 것이고, 하느님의 생각이 나를 다른 일에 써먹을 생각이면, 만인이 찬성하더라도 나를 안 시킬 것이니까 나는 모든 것을 그분에게 맡기고 하느님과 국민에게 오직 충성할 뿐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박수, 옳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다

나는 이 나라의 진정한 반공과 안보를 위해서, 그리고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제 자신을 몸 바치겠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공산주의는 이념이 전체주의고 집합주의입니다. 전체를 위해서는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괴테도 간파했다시피 휴머니티는 국가를 위해 있는 것이며, 전체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과 자유, 그 창조적 권리가 중요한 것이지 개개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전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념적으로만 우리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 공산당이 주도하고 있는 '남조선 해방노선', 요새도 저렇게 남북대화를 하면서도 간첩선을 내려보내는 짓들,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기들의 이념을 주장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무력을 통해서 남한을 뒤집어 엎겠다는 소위 '남조선 해방전략'을 공산당이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국가의 안보와 반공의 태세를 조금도 늦출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강조합니다(박수, 옳소!).
그러나 우리의, 이 공산당과의 싸움은 임진왜란 때 일본 사람과의 싸움 같은 민족간의 싸움이 아니라 민족 내부의 내전입니다. 2차대전 후에 아시아에서 중국과 월남과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의 전쟁, 그리고 한국의 6․25 전쟁, 이 모든 것의 공통된 성격이 민족 내부의 내전이란 것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어느 쪽의 체제가 더 좋은 정치를 하느냐 하는 경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총칼을 가지고 대치하고 싸워도 우리의 이 공산당과의 전쟁은 정치전쟁입니다. 무력전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많이 국민에게 자유와 정의를 주어서 이것을 내편으로 만드느냐 하는 경쟁입니다. 월남에서 독재자들이 입으로는 자유를 부르짖으면서 국민을 짓밟고, 착취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마침내 월남이 망할 때 3대 1의 군대수와 7대 1의 화력을 가지고도 한달 만에 마치 태산이 무너지듯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국민이 생각하기를 이 싸움은 우리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저 위에 있는 독재자 몇 놈들의 자기 영화와 이익을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싸우지 않겠다고 자빠져 있으니까, 싸움이 안 됐던 것입니다.
지난 18년 동안 박 대통령은 반공과 안보를 금과옥조로 주장했습니다. 나도 그 원칙에는 동조하지만 그분이 했던 방법은 대단히 많은 과오를 범했습니다. '유신체제가 안보와 반공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입니다(환호, 박수, 옳소!).
처음에는 통일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더니 어느새 백팔십도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산당이 독재를 하니까 우리도 좀 독재를 해야만 된다니 이게 무슨 소립니까?(웃음) 공산당은 독재의 대선수입니다(웃음). 공산당은 독재의 프로 이상 가는 선수이며 우리가 아무리 독재를 잘한다 해도 아마추어밖에 안됩니다(웃음).
우리가 유도시합을 할 때도 업어치기를 잘하는 사람은 자기의 업어치기 가지고 이기려고 해야지, 상대방이 발걸이를 잘한다고 발걸이를 흉내 내면 어떻게 이기느냐 이 말입니다(박수). 독재의 왕초인 '프로 독재'에 대해서 얼치기 유신 독재를 가지고, '아마추어 독재'를 가지고는 이길 수가 없다 이것입니다(옳소, 박수!).
뿐만 아니라 안보의 목적이고 반공의 목적인 자유를 짓밟고, 몇 사람을 위한 부익부 빈익빈이 사회정의를 짓밟고, 장관, 총리, 대통령을 하는 사람들이 몇백 억, 몇천 억의 부정축재를 하고, 반공법을 악용해서 엉뚱한 사람들을 공산당으로 몰고, 심지어 어떤 목사가 "월남의 호지명이가 비록 공산당이지만 청렴결백했다고 하니, 공산주의한테 이기려면 우리는 더 청렴결백해야 되지 않겠느냐?" 했더니 그를 월남 공산당을 찬양했다고 몰아서 반공법에 걸어 징역 살렸다 이 말입니다(박수).
이렇게 자유를 짓밟고, 정의를 짓밟고, 반공법을 악용하고, 안보를 악용하고, 부정부패를 조장하는 그런 정치는 반공이 아니라, 공산당을 기르는 양병(養共)이란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박수, 옳소).
나는 반공주의자입니다. 그러나 국민에게 넘치는 자유와 정의와 안정을 줌으로써 국민들이 이 땅에 정을 붙이고, 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이 나라를 지키려 하는, 공산당 침투가 여지가 없는 반공과 안보를 주장하는 것이 나의 정책이요 박정희씨와 다른 점인 것입니다(박수).

"민주주의의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

나는 10․26 사태 이후 우리 국군과 미군이 보여준 국가안보에 대한 노력에 대해서 여러분과 더불어 심심한 감사를 표시하고자 합니다. 나는 우리 국군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또한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러나 軍은 절대적으로 정치에 중립해야 합니다(박수, 옳소!).
만일 군대가 정치에 개입하면 군대를 망치고, 나라도 망치고, 안보도 망치고, 반공도 망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말입니다(환호, 박수).
그러나 우리가 냉정히 생각할 때, 군대의 정치개입을 운운하기 전에 먼저 과거 정치인들이 군대를 정치에 악용한 사실을 반성해야 합니다. 이승만씨는 군대를 자기 정치목적을 위해서 두파 세파 갈라놓고, 조종하고, 군대를 정치적으로 괴롭혔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박정희씨가 군대를 마치 국가보다도 자기 정권에 대해서 더 충성을 하도록 끌고 왔다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런 집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군대의 악용 때문에, 우리의 선량한 국군들이 얼마나 많은 괴로움과 피해를 입었는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박수). 그래서 여러분에게 호소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는 군대의 정치개입도 반대하지만, 어떤 정치인도 또다시 군대를 정치에 악용하려 하는, 그와 같은 일은 우리 민주주의의 대적으로서, 우리가 단호히 규탄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환호, 옳소! 박수).

나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이 나라 민주주의의 화신이 되어 가지고 이것을 지켜나가겠다는 것입니다. 토머스 제퍼슨이 말한 "민주주의의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이 말은 결코 하나의 슬로건이 아니라 진실인 것입니다. 과장이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2차대전 후에 불란서에서 국장(國葬)까지 받은 폴 발레리란 상징주의의 세계적 대시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독일 국민은 아주 미덕이 많다. 용감하고, 규칙적이고, 애국심이 강하고, 과학적이고, 여러 가지 우수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 전쟁을 도발했을 때는 그 많은 도시를 파괴하고, 그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많은 죄악을 저지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가 어떤 미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기 전에 내가 갖고 있는 미덕이 내가 속한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그 행방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라고.
여러분,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 '나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여, 이것을 마치 자랑같이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도, 교육도, 법률도, 종교도, 그 어떤 분야도 정치가 바로 되지 않고는 결코 바로 될 수 없습니다! 정치에 관계없다지만 정치의 밀접한 영향하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정치를 외면할 때, 나쁜 정치는 그것을 악용해서 프리패스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내가 외면하기 때문에 외면하지 않고 싸운 사람까지도 희생되는 것입니다.
열 사람 국민 중에 열 사람이 다 반대하면, 집권자는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만 반대하고 나머지 여덟 사람이 모른척하면 집권자는 그 둘만 차버리면 되기 때문에 탄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항상 여러분께 말합니다. 우리는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사회가 어떻게 되어 가느냐?', '정부가 무엇을 하느냐?', '정부가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어떠한 정책을 가지고, 어떠한 음모를 가지고 우리에게 임하고 있느냐?' 이것을 항상 감시하고 옳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반항하고 싸우는 '행동하는 양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박수).
요새 10․26 사태로 우리 국민은 많은 충격을 받았고 교훈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과거에 유신체제를 지지한 분들이 교훈을 받았고, 그 충격은 더 컸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새 하는 소리를 보면 무슨 '박정희 대통령의 유업 계승'이니(웃음), '유신체제가 나쁜 것이 아니었다'느니 이런 소리가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나서 불과 5개월이 못 되어서 귀신같이 다시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었으면 유신헌법 그대로 가야 될 것 아닙니까? 유신헌법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바꾸자는 것이 아니냐, 그 말입니다(옳소! 옳소! 박수).
이 사람들은 18년 동안 호의호식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도 우리 국민들이, 관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반성만 하면 용서하겠다는 너그러운 태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앞에 반성하고 회개하기는커녕, 다시 자기들이 가졌던 그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 온갖 궤변을 동원하면서 10․26 사태로 겨우 열린 이 바람구멍을, 민주주의를 위한 돌파구를 다시 막으려고 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고, 10․26 사태로부터 아무 교훈을 배우지 않는 일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옳소! 박수).
이 땅에는 아직도 유신과 반유신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는 유신체제에 참가했던 분들에게 경고하고 충고합니다. 박정희씨는 이미 죽었습니다(환호, 옳소!).
 박정희씨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지금 찬양하고 나서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네로를 찬양하고, 진시황을 찬양하고, 연산군을 찬양했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 역사는 항상 제대로 평가했다, 이 말입니다.
또한 옛날에 영국에서는 토머스 모어가, 중국에서는 문천상이, 우리나라에서는 성삼문이 역적으로 몰렸지만 그러나 역사는 그 사람들을 충신으로서 평가했다, 그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박정희씨에 대한 옳고 그른 평가는 역사에 맡겨라! 다시 박정희씨를 찬양하고 유업 계승 운운해서 국민을 자극시키는 것은, 모처럼 관용을 베풀려는 이 국민을 자극해서 박정희씨에 대해 또 한번 큰 불명예와 지장을 가져온다는 것을 나는 그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싶습니다(환호, 옳소! 박수).
여러분! 나는 질서와 안정을 존중합니다. 혼란을 원치 않습니다. 과도기가 할 수 있는 대로 무사히 넘어가기를 바랍니다. 최규하 대통령이 제2의 '허정 내각'을 계획한다면, 그래서 과도정부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한다면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의 순조로운 발전을 위해서 나는 그를 도와줄 용의가 있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되어가고 있는 일이 너무 걱정되므로 국민 여러분과 나는 계속 주시하고 감시해, 파수병으로서의 자세를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여기서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습니다(환호).

일곱 번의 일흔 번까지 용서하며

이 자리를 빌어서 내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미 우리 민족혼의 위대한 전통과 오늘의 존재를 말했지만 고칠 점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민족의 세 가지 결함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우리 민족이 힘만 가지면 남용한 것입니다. 권력만 쥐게 되면 쥐뿔만한 권력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태산같이 여깁니다. 이조시대의 저 말단관리들도 얼마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까? 5급 공무원도 그렇습니다(웃음).
모든 회사에서도 조금 높은 자리에만 앉으면 권력을 남용합니다. 권력은 봉사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지 자기의 권세와 남용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권력을 잡은 사람이 보복을 하는 것, 그 중에도 정치보복을 한다는 것은 최대의 악입니다. 나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어지간히 정치보복을 당해 본 사람입니다(웃음).
참으로 이 보복을 당하는 것은 못할 일입니다(웃음). 가족 전체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자식들의 취직길이 막히고 심지어 혼인까지 막힙니다(웃음, 박수).
집안사정이니까 내가 그 이상 말씀은 안하지만, 사실 있었던 일입니다. 일가친척들은 직장서 모조리 쫓겨나고, 우리집을 연금해서 약 2~3백 명의 경찰이 포위하고 있을 때 그 인근 일대의 사람들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웃음). 누구도 찾아오려 하지도 않고, 집값이 다 폭락해도 누가 보러 오지 않습니다(웃음).
이러한 정치보복으로 인하여, 우리 집에 한번 찾아왔다가 경찰이나 정보부에 끌려가서 경을 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웃음).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김대중이가 여당이 되면 정치보복을 할 것이다!"(웃음) 제가 워낙 당했기 때문에 정치보복을(웃음) 하지 않고 가만 두겠느냐, 하는 말인데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웃음).
그런데 여러분! 요새는 시어머니의 며느리 구박이 좀 적지만 옛날에는 시집살이가 여간 고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집살이를 고되게 하던 며느리가 나중에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 자기가 당한 만큼 자기 며느리한테 시어머니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당해 보니까 천하에 시집살이 고되게 하는 걸 못 당하겠더라 해서, 오히려 자기 경험 때문에 며느리에게 잘한 시어머니가 있습니다(옳소! 웃음, 박수).
김대중이가 반드시 전자만 되고 후자가 되지 말란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웃음, 박수) 나는 기독교 신도입니다. 예수는 자기 제자가 "자기에게 잘못한 자를 일곱 번까지 용서할 것입니까?"라고 물으니까, "일곱 번의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도 지금 이렇게 말이 쉽게 술술 나오지만 감옥에 있을 때 이 여러 가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이놈도 밉고, 저놈도 밉고, 이놈도 한 번 해보고, 저놈도 한 번 해보고… 그런 생각이 굉장히 있었습니다(웃음). 그런데 앉아서 보복할 사람들을 세어 보니까 수십 명, 수백 명이 되겠습디다(웃음).
그래서 제가 옥중에서 생각했습니다. 내 믿음을 기초로 해서 굳게 결심했습니다. 나를 납치사건으로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 나를 자동차로 깔아뭉개서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 무모하게 법정으로 끌고 갔던 사람들, 내 가족과 내 친척과 내 친구들을 괴롭힌 사람들, 이 모든 우리 민족이 이조 이래 내려온 이 보복, 이것을 만일 김대중이가 용서한다면 이것은 김대중의 대로서 정치보복을 끊는 단호한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박수).
그래서 이미 나는 지난 3월1일 기자회견을 통해서, 납치사건을 중심으로 나에게 가해한 자들을 모두 전적으로 용서하고 불문에 부치겠다고 전 세계와 국민에게 선포했습니다(박수).
그 다음에 나는 우리가 이 나라에서 기회주의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간신 같은 기회주의자들(웃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는 변신의 천재들, 일제 시대에는 일본 사람에게 붙고, 해방 후에는 미군에게 붙고, 그 다음에는 이 박사한테 붙고, 그 다음에는 박 정권에 붙었습니다. 이 기회주의자들이 우리 민족정신을 얼마나 더럽혔습니까?

해방 이후 정신사에서 가장 불행한 것 중의 하나가 기회주의

우리나라의 정신사에서, 해방 이후의 정신사에서 가장 불행한 것 중의 하나가 기회주의입니다. 이 박사는 항일독립운동을 자기 일생의 철학으로 삼고 입국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항일독립운동을 한 이 박사는, 항일독립운동을 함께 한 애국자들을 모조리 판자촌에서 추위와 굶주림 속에 죽어가게 만들고, 친일파들만 모조리 끌어다가 자기의 주변을 쌌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 나라 민족정기는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이 박사의 최대의 과오를 지적하라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박수).
박정희씨는 5․16 혁명의 공약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구악일소라고 공공연히 떠들어 놓고, 구악 중의 구악인 자유당 사람들을 전부 끌어다가, 그 중에도 '과오를 범한 자들'을 끌어다가 자기 주위를 쌌습니다. 부정부패를 일소한다고 하더니 자기들은 그 몇백 배, 몇천 배의 부정부패를 저질렀습니다. 민생문제를 쉽게 해결한다고 하더니 자기들 민생문제만 해결하는 짓을 했습니다(웃음).
다음에 들어서는 민주정부는 절대로 정치보복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과오를 반성하고 시정한 사람은 다 포용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공무원은 장관과 차관을 남겨 놓고, 아니 필요하다면 차관까지도 전부 등용을 해야 할 것입니다(박수, 옳소).
직업공무원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이것을 좌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관용을 베풀고 포용을 하더라도 다음 민주정부는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민주주의를 지지해 온 민주세력이 중심이 되어 민주정통성만은 보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옳소! 박수).
힘의 남용과 기회주의의 배격과 더불어 우리는 지방색이란 못된 정치풍조를 배제해야 합니다. 도대체 이 지방색이란 못된 귀신은(웃음) 통일신라시대 이래 1천3백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말짱히 다 없애버렸는데, 그런데 朴정권 18년 동안에 이 죽었던 귀신이 다시 나와가지고(웃음) 우리들 마음속에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의 하나, '내 나라가 여기 있다'고 하니까 찾지(웃음), 그렇지 않으면 아프리카의 차드를 찾아라, 봉고를 찾아라 하는 것같이 한참 찾아야 할 나라입니다(웃음).
그것이 두 쪽으로 갈라진 것도 서러운데, 이제 東으로 갈라지고 西로 갈린 이 지방색―이런 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조상들이 1천3백 년 걸려서 아물게 만든 이 지방색, 머리 속에서 까마득하게 사라진 지방색, 이것을 박 정권이 다시 불러일으켰는데, 대한민국 사람이 피가 다릅니까? 말이 다릅니까? 여기 서 있는 김대중이도 동서남북 관계가 안 된 데가 없습니다. 낳기는 전라도에서 낳고, 살기는 서울에서 살았고, 국회의원은 강원도에서 했고, 처가는 충청도고, 며느리는 이북서 얻고, 경상도? 내가 김해 金씨니까 진짜 경상도 사람입니다(웃음, 박수).
왜 우리에게 지방색이 필요합니까? 나는 작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 때, 지방으로 말하면 경상도 출신인 김영삼 총재를, 같은 전라도 출신인 이철승 대표를 반대하면서, 여러분도 아다시피 적극 지지해서 당선시켰습니다(박수, 옳소).
그 결과 김영삼 총재는 10․26 사태까지 5개월 동안에 여러분이 보다시피 위대한 민주투사로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박수).
나는 내가 지방색을 초월해서 그분을 도운 것을 지금도 자부하고 있습니다(박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기에는 경상도 분도 있고, 전라도 분도 있고, 여러 분이 있겠지요. 나는 대통령이 못 되고 국회의원이 못 되어도, 지방색 때문에 지지하고 지방색 때문에 반대한, 그런 저열하고 망국적인 동족애에 절대로 동조할 수 없고, 절대로 반대한다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옳소! 박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앞으로 1년, 우리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고비를 넘겨야 할 것입니다. 지금 민주헌정시켜 줄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내년 봄의 선거가 과연 있을지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국민이 민주주의의 감시병으로서 지금처럼 철통같이 단결해 나간다면, 우리 모두 우리의 의사를 숨기지 않고 주장해서 국정에 반영시킨다면, 그 누구도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을, 우렁찬 민중의 전진을, 하늘도 땅도 바다도 울부짖는 민주주의의 함성을 누구도 감히 막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박수, 옳소).
여러분!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이 자랑스런 민족혼을 깨우치고 앞세워, 이 80년대에는 반드시 민주주의를 이룩하여, 이 나라에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그런 민주주의 선진 국가를 여러분과 우리가 합심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박수).
여러분! 우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우리들의 자랑스런 '민족혼'을 지킵시다. 우리들의 자랑스런 민족혼을 키웁시다. 우리들이 이 자랑스러운 민족혼에 영광을 바칩시다. 그래서 발전하는 민족혼과 더불어 세계에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발전을 과시할 것을 여러분에 호소합니다(옳소! 박수).
국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이 있는 곳에 김대중이가 있습니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데 김대중이는 있습니다. 김대중이는 천 번 죽어도 국민을 떠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필요로 하면, 우리 민족의 혼이 내게 명령하면, 나는 다시 열 번 납치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백 번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천 번 연금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여러분에게 봉사할 것을 다짐합니다!(옳소! 환호, 박수)
내가 이 강연을 마치면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이와 같이 거룩하고 위대한 민족혼을 남겨주신 우리 조상들에게 감사하면서, 또한 나를 그동안 지켜주시고, 격려하고, 도와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하면서, 우리가 오늘 같이 이런 좁은 장소에서, 더구나 4층에서는 제 얼굴도 못 보고 밖에서는 들어오지도 못한 이런 장소가 아닌, 저 여의도 광장이나, 장충공원이나, 이런 데서 1971년 같이 다시 한번 백만, 2백만이 모여서 여러분과 같이 나라 일을 상의할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여러분께 작별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환호, 박수).
그리고 여러분께 특별한 부탁은 질서를 지키고 혼란을 일으키지 말고 돌아가 주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혼란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질서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녕히 돌아가십시오(만세! 만~세!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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