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살기(殺氣)를 미꾸라지 은유에서도 느낀다”
"청와대가 인간성을 부정한 대상을 검찰이 어떻게 요리할지 눈에 선하다"
"이제 우리 사회에 비인간화까지 덧씌우려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 전 특별감찰반원의 폭로에 대해 청와대측이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라고 비유한 것과 관련해 선우정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이제 우리 사회에 비인간화까지 덧씌우려 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선우정 부장은 19일 <스탈린의 '개', 나치의 '쥐'>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현 정권에서 개인을 겨냥한 ’적폐몰이‘나 ’미꾸라지‘ 등 강압적인 언행과 관련해 과거 자신들의 권력에 비협조적인 이들에 대해 비(非)인간화시키고, 광기(狂氣)로 이어졌던 스탈린과 나치 시대의 ’전략적인 은유‘에 빗대어 비판했다.

선우 부장은 이날 권력이 특정 정적(政敵)들을 겨냥해 타자화(他者化), 비인간화(非人間化)한 뒤 숙청했던 스탈린과 나치의 시대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에) 소련에서 특정 정적을 가리켰던 ‘버려진 개’는 점점 범위가 늘어나 권력 냄새도 맡은 적 없는 보통 지식인까지 개처럼 끌려가 죽었다”고 전했다. 또한 “'살찐 돼지'로 지목된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엔 '쿨라크'라고 부르는 부농(富農)을 가리켰다”며 “하지만 '버려진 개'처럼 '살찐 돼지'의 범위도 가축 몇 마리, 땅 몇 평을 소유한 자영농으로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 땅' '내 가축'이라며 소비에트 권력의 사유재산 강탈에 반항하는 모든 사람이 돼지로 찍혔다”고 부연했다.

선우 부장은 “스탈린의 '버려진 개'와 '살찐 돼지'는 세 갈래 길을 걸었다. 학살당하거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시베리아에 버려졌다”며 “얼마나 죽었는지 모른다. 10만, 100만이란 주장도 있고 1000만이란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단야·박진순 등 공산혁명을 동경해 소련에 머물던 한국인 사회주의자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그들은 권력의 눈에 개였을까, 돼지였을까. 광기(狂氣) 이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중에게 광기를 끌어낼 때 권력은 상징 조작을 동원한다”며 “먼저 '그들은 우리와 다르고 영원히 같아질 수 없다'는 타자화(他者化) 조작이다. 스탈린은 정적과 계급에서 시작해 모든 비협조자를 타자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다음은 비인간화(非人間化) 조작”이라며 “그들은 타자일 뿐 아니라 사람도 아니다. '버려진 개' '살찐 돼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죄책감을 싫어하는 대중은 이런 은유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상대를 인간으로 보면 손에 피를 묻힐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나치가 만든 '영원한 유대인'은 악마의 기록 영화로 역사에 남아 있다”며 “영화는 게르만 문명사회와 다른 유대인의 야만적 특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방랑하는 유대인을 기생할 인간을 찾아 떠도는 쥐로 은유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쥐는 인간에 기생해 살다가 병균을 퍼뜨려 인간을 파괴한다. 그러면 다른 인간 군락으로 옮겨 기생하다가 또 인간을 파괴한다”며 “고향을 잃고 유럽에 붙어살면서 부를 쌓는 유대인을 쥐의 습성과 일치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유대인의 가축 도살 장면과 질서 정연한 독일 민족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끝난다. 유대인은 쥐다! 병균을 퍼뜨리는 쥐다! 이런 조작으로 600만명을 쥐잡듯 죽였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20세기 말 르완다 내전이나 21세기 일본 등에서 나타났던 타자화-비인간화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러면서 선우 부장은 “청와대 문제를 폭로한 김태우 수사관에 대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했다”며 “권력이 한 인간을 '미꾸라지'라고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인을 향한 은유가 집단을 향한 스탈린과 나치의 은유와 같다고 보지 않는다. 권력이 '미꾸라지'라고 했다고 대중이 달려들어 도륙 내는 시대도 아니다”면서도 “다만 개 은유, 쥐 은유에서 느끼는 권력의 살기(殺氣)를 미꾸라지 은유에서도 느낀다”고 지적했다.

선우 부장은 “정도만 다를 뿐 분노가 이성을 삼켰다. 그 후 배신자와 조력자를 향한 청와대의 반응도 살벌하다”며 “청와대가 인간성을 부정한 대상을 검찰이 어떻게 요리할지 눈에 선하다. 권력 주변에서 쏟아내는 비방은 그의 인간성을 파괴한 지 오래”라고 진단했다.

이어 “문재인 정권만큼 노골적으로 타자화에 골몰한 경우가 없다. 촛불혁명 깃발 아래 이질적 타자로서 '적폐(積幣)'를 개념화했다”며 “여기에 속하면 걸릴 때까지 수사를 받는다. 죽을 때까지 모욕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 사령관이 적폐로 몰려 목숨을 끊어도 현역 후배가 빈소에 오지 않는다. 찍히면 자신도 타자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며 “정권의 타자화는 갈 데까지 갔다. 이제 우리 사회에 비인간화까지 덧씌우려 한다”고 강하게 우려했다.

이번 칼럼을 쓴 선우정 사회부장은 조선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권오기 전 동아일보 사장과 함께 과거 일본 언론계 및 지식인 사회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대표적 한국 언론인이었던 선우휘 전 조선일보 주필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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